“구석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는 자리였다!”
궁지에 몰린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펼치는 시간
삶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 같을 때, 우리는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모든 것이 가장 크게 흔들리던 시기, 저자가 펼친 그림책 속에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인물들이 있었다.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은 사람, 상처 때문에 누구에게도 곁을 내주지 못하는 존재, 남들의 평가에 움츠러든 아이, 홀로 길을 걷는 사람…. 그런데 이들은 잃어버린 자리를 억지로 되돌리려 하지 않았다. 대신 뜻밖의 길로 떠나 보거나, 홀로 머무는 자리를 자기만의 공간으로 가꾸며 새로운 세계를 열어갔다. 그림책이 마치 ‘너도 네 안의 이야기를 꺼내 드러내도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는 저자는, 자신이 겪은 고통에 대해 말하기를 덜 부끄러워하게 되었다. 부정적인 상황과 감정에 매몰되기보다 그림책 속 인물들처럼 자신이 겪은 일들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소망하게 되었다.
이 책에는 20년 가까이 그림책을 만들어 온 저자가 캄캄하고 낯선 가장자리로 몰렸을 때 읽은 35권의 그림책이 담겨 있다. 여기 소개된 그림책들의 주제는 상실과 슬픔, 외로움과 회복, 가족과 우정, 사랑과 연대까지 다양하지만, 이 책들을 통해 저자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누구나 저마다의 이유로 구석에 웅크리는 시간을 보내지만, 그 시간은 실패가 아니며 오히려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자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에서
‘이 모양도 나구나’로, 고통을 흘려보내고
나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
누군가와 계속해서 어긋난다면, 그 이유가 나한테 있는 게 아닐까? 계속되는 나쁜 일에 자책하던 저자는 빈구석에 숨어든 까마귀가 그곳을 자기만의 공간으로 가꿔가는 그림책 《나의 구석》을 읽으며, 구석에 머무는 시간이 실패가 아니라 자신을 들여다보고 다시 일어설 힘을 모으는 시간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를 시작으로 저자는 그동안 외면했던 자신의 모습을 하나씩 마주하고 받아들인다. 동굴 밖으로 나오지 않은 채 그저 뱀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 세상을 이어 주고 있던 뱀을 그린 그림책 《내가 여기에 있어》를 읽으며, 저자는 남들이 권하는 행복의 모양을 따르지 않아도 지금 자기 자리에서 자기 모습 그대로 충분하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살만 빠지면 예쁠 텐데”라는 말을 들으며 미워해 온 몸은, 풍만한 몸으로 손자의 꿈을 응원하는 할머니가 등장하는 그림책 《인어를 믿나요?》를 만나며 사랑스러운 몸으로 다시 보인다.
가족 안의 자신도 다시 바라본다. 이른바 ‘K-장녀’로서 부모의 슬픔을 보상하고 동생의 실수를 대신 감싸야 한다는 책임감을 품어왔지만, 홀로 남겨진 아이가 칼과 거울을 들고 어두운 바다를 건너는 그림책 《거울을 든 아이》를 읽고 그 역할을 내려놓을 용기를 얻는다. 엄마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나처럼 살지 마라’와 ‘나같이 살아 봐라’ 사이에서 엄마를 사랑하는 만큼 힘들어했던 저자는, 바닷속 가죽을 되찾아 떠나는 엄마와 남겨진 아이를 그린 그림책 《난 커서 바다표범이 될 거야》를 읽으며 엄마를 한 사람의 여성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엄마와 자신 사이에서 흔들리던 딸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인다.
이렇게 저자는 ‘나는 왜 이럴까’라고 묻는 대신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분열과 수치심, 열등감마저 오래된 짝꿍으로 끌어안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그 끝에서 ‘내 삶을 내가 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다. 구석에서 자신을 마주하고 받아들이기까지의 이 과정은, 스스로를 미워하며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는 독자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줄 것이다.
웅크려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구석에 한 줄기 빛이 될 위로
깊은 구석에 웅크려 있던 저자가 몸을 일으킨 뒤 바라본 곳은 결국 주변의 사람들이었다. 저자가 구석에서 충분히 자신을 돌아보는 동안, 그들은 그래도 괜찮다며 지지를 보내주고 곁을 내어주었기 때문이다. 이별 후 새벽 청소 일을 하던 시절에는 묵묵히 곁을 지켜준 동료들이 있었고, 가장 힘든 시기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집과 밭을 내준 친구들이 있었다. 저자는 자신이 받았던 그 다정함을 이제는 구석에 있는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외눈 고양이 탄게》, 《나를 봐》 같은 우정의 그림책과 《첫사랑》,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 같은 사랑의 그림책을 읽으면서는 상처 입은 이의 곁에 머무는 법과 다채로운 사랑의 모양을 배우고 생각한다. 나아가 《사랑하는 고양이가 죽은 날》, 《점옥이》처럼 사과와 애도를 다룬 그림책을 통해 사회에 어울려 사는 사람이자 어른으로서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 태도를 갖추려 하고, 내 일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겪고 있는 아픔에 관심을 가지려 한다. 예를 들면 상처 입은 사람을 함부로 이해하거나 치료하려 들지 않고 적절한 거리에 계속 있기, 누군가의 집이 되어 주려 애쓰기보다 그가 스스로 길을 찾도록 길목의 의자나 다리가 되어주기 등이다.
저자는 이별이나 실직, 관계의 갈등으로 삶이 흔들리고 있는 사람, 힘든 시기를 지나며 스스로를 탓하거나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느끼는 사람, 가족이나 가까운 이들과의 거리 때문에 지친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그림책은 어느 시기에 읽느냐에 따라 새롭게 해석된다. 아이들의 책으로만 여겼던 그림책이 어른의 일상을 돌보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함께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에서
몇 번째여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이별들이, 좀처럼 오해가 좁혀지지 않는 우정들이 잘 회복되지 않는데, 그 역시 모두 나의 잘못인 것만 같아서 울고 싶던 때였다. 그즈음 그림책 《나의 구석》을 만났다. 모든 책이 그렇지만 그림책은 특히 독자가 누구인지, 언제 어떻게 읽는지에 따라 의미와 해석이 다채로워진다. 회복탄력성에 대한 반감과 삐뚤어진 시선에 사로잡혀 있던 봄에 다시 읽은 이 책은 회복과 상상력에 대한 이야기로 다가와서 큰 위로를 건넸다. 혼자만의 시공간이 필요해 구석으로 찾아왔지만, 고립되고 싶지 않은 마음, 세상과 연결되고 싶다는 욕구와 상상! 회복탄력성이란, 타인에게 사랑받고 지지받는 경험에서뿐만 아니라, 헛헛함을 느끼고 더 연결될 수 있다는 상상력과 연결감을 만들어 가려는 의지에서 자라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_63~66쪽, 〈인생이 뒤집힌 것 같을 때 새로운 세계가 열린 건지도 몰라〉
아직도 나는 종종 숨길 수 없을 정도로 고통과 비탄에 빠진다. 그럼에도 동굴에 웅크리던 시간을 이제는 꽤 사랑한다. 동굴에 익숙해진 이의 나른한 변명과 위안이라기보다, 이제 내가 살아온 삶의 몸통과 기억을 부정하지도, 억지스러운 안전과 행복의 세계에 데려가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씩씩해진 탓이다. 언젠가 동굴의 시간을 회상할 때, 맘껏 버둥거린 날들로 기억하고 싶을 뿐이다. 난감한 불행을 행복하게 맞기 위해서, 동굴 속에서 오래 버둥거렸다고.
_77~78쪽, 〈‘동굴’에서 웅크리고 있는 시간도 괜찮아〉
인생에 한 번쯤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면, ‘예쁜 존재’로 거듭나서 진짜 나와 가짜 나의 합일을 이룬 채 살아갈 수 있었을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초등학교 4학년 때 신체검사에서 통통한 아이로 판정받은 이후 지금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덕분에 나를 이루는 여러 마음속 사회의 시선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고, 나는 나 스스로와 어떻게 줄타기하며 타협하고 있는지 종종 탐구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의 게으름과 불안함을 세상 탓으로 돌리려는 건 아니다. 다만 나를 운영해 가는 데, 더 이상 타인들의 시선과 가부장적인 시선에 시달리면서 휘둘리고 싶지 않다. 그 대신 내 마음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탐구하고 싶을 뿐이다. 내가 나를 멸시하는 건 그만 멈추어야 하니까. 지금 오늘, 내가 먹는 밥, 내가 입는 옷, 내가 쓰다듬는 고양이, 내가 하는 일, 만나는 타인에게 충실하고 싶으니까.
_83~84쪽, 〈내 안의 투쟁과 환희를 타인의 평가에 맡기지 않을 거야〉
나는 어느 입장이든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무엇이 되지 않기를 바라기보다는 필요한 때 내가 소리치기를, 슬픔에 빠졌더라도 정확하게 보고 말하는 용기를 잃지 말기를, 그리고 ‘인간 된 도리’라는 말로 피해자에게 화해를 강요하는 악은 범하지 않기를 바라기로 한다. 혹시 내가 가해자가 된다면 고통스럽더라도 내가 그것을 제대로 책임지기 바란다. 그러나 그 전에, 내가 가해자가 되지 않을 경계와 긴장을 갖기를 바란다. 내가 속한 사회가 내게 경계와 긴장의 메시지를 충분히 알려주기 바란다. 혹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가해자가 된다면, 내가 눈감지 않기를 바란다. 괴롭고 불편한 채로 그 가해와 피해를 정확히 바라보는 것이 사랑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_137~138쪽, 〈사과를 요구하는 마음은 다정함의 다른 이름이기에〉
사랑이라는 감각과 감정, 관계의 모양은 다채롭고, 다채로운 것이 자연스럽다. 사회가 정해 놓은 똑같은 모양, 한 가지 감정, 감각, 형태로 사는 건 가능하지도 않지만 아름답지도 않다. 나는 이것을 너무 늦게 알아가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내가 나를 무시했던 시간, 동시에 타인을 무시했던 시간이 미안하고 부끄럽다. 이제라도 나는 내 사랑이, 우정이, 세상이 강요하는 기준과 말들에 갇히지 않기를 바란다. 앞으로 올 내 여러 사랑들을 모르는 척하지 않을 것이다. 눈감지 않아야지, 내 마음과 욕구들을 사랑해야지, 그래서 아무도 혐오하지 않아야지, 생각하며. 내 고양이의 고르릉 소리를 듣는다.
_154~155쪽, 〈당신도 사랑이 두려웠나요?〉
작가 우르슐라 팔루신스카는 이 환상적인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 잉크, 콜라주, 컴퓨터 그래픽 등을 섞어서 그렸다고 한다. 이 아름다운 빛과 쉼의 기쁨을 지하 4층에 있는 주차 관리실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는 이웃집 할아버지도, 요양원에 가신 큰엄마도, 창문이 없는 일터에서 날마다 10시간 넘게 일하는 당신도, 눈물이 많은 당신도 만났으면 좋겠다.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당신도, 수업 시간 내내 외톨이가 될까 두려워 내내 신경이 곤두선 학교에서의 당신도, 이 쉼을 누렸으면 좋겠다. 이 책이 고된 노동과 삶에 지친 이들에게 적절한 순간에 찾아가서, 그이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잠시 맑은 공기를 마시는 기운이 되기를. 당신에게 주고 싶은 건 그런 순간이다.
_187~188쪽, 〈당신에게 주고 싶은 풍경〉
가끔 이렇게 정처 없이 살아도 되는 걸까 불안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노를 든 신부》가 걸었던 길들의 색감을 떠올리기로 한다. 오소리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기승전결의 문법에서 벗어난 작업’이라고 표현한 바 있는데, 우리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꼭 목적지를 향해, 어떤 결말을 향해 갈 필요는 없지 않을까. 길 위에서 살아가는 일은 외로움과 불안 사이에서 떠도는 일일 수도 있지만, 곧 새로운 여행지에 닿는 일이기도 하다. “신부는 그렇게 새로운 곳으로 떠났습니다”라고 노를 든 신부가 걸어갔던 것처럼! 우리는 모두 새로운 곳으로 떠나간다. 이야기를 만들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_196쪽, 〈나가며_내 삶을 내가 구할 수 있다는 믿음〉
들어가며│때로는 구석에서 슬퍼해도 괜찮아
1장. 캄캄하고 낯선 가장자리로의 방문
언니들과 보낸 사계절
누군가가 제 상처에 놀라 우둘투둘하게 굴더라도
길 떠나온 이에게 환대의 밥을 내줄 수 있다면
초여름 밤을 걷고 또 걸었던 우리
생의 맛을 맛보게 해준 할머니의 디저트
인생이 뒤집힌 것 같을 때 새로운 세계가 열린 건지도 몰라
2장. 언젠가 볕 들 날을 기다리는 동안
‘동굴’에서 웅크리고 있는 시간도 괜찮아
내 안의 투쟁과 환희를 타인의 평가에 맡기지 않을 거야
당신이 홀로 떠나는 길을 걱정하지 않을게
보이는 것 너머의 새로운 해석을 한다는 것
삶은 이야기를 통해 진화할 수 있다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이제라도 너를 알아갈 자세가 나에게 있을까
3장. 나를 구할 멋진 구석의 이야기들
사과를 요구하는 마음은 다정함의 다른 이름이기에
어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당신도 사랑이 두려웠나요?
신데렐라의 해방이 이끈 몸의 해방
연결을 말하는 그림들
사랑은 낯선 길을 떠나는 것이야
나의 야생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다면
당신에게 주고 싶은 풍경
나가며│내 삶을 내가 구할 수 있다는 믿음
부록│한 줄기 빛이 되어줄 그림책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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