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여 년간 아이들의 아픔과 회복을 지켜본
소아과 의사가 기록한 삶의 가장 평범하고 소중한 순간들
소아과 의사 강두철의 첫 에세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내일이 되길》이 출간됐다.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소아청소년과와 소아신경과 의사로 일하고, 이후 지역 의료 현장에서 아이들을 진료해 온 저자는 진료실 안팎에서 오래 마음에 남은 이야기들을 기록해 왔다. 이 책에는 아이들의 탄생과 성장, 아픔과 회복, 때로는 이별의 순간까지 함께 지나오며 한 의사가 마주한 삶의 장면들이 담겨 있다. 아이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 밥을 먹고 잠들고, 다음 날 다시 평범한 하루를 시작하는 것. 저자에게 그런 하루는 결코 당연하지 않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없이 마주하며 저자가 깨달은 것은 아무 일 없이 하루를 살아 내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누리는 가장 소중한 일상이라는 사실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내일이 되길》은 무언가 대단한 일이 일어나야만 좋은 삶이라고 믿어 온 우리에게 아무 일 없는 하루의 가치를 되묻는 책이다. 별일 없이 하루를 마치고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내일을 맞는 것. 우리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그 평범한 기적을 오래 바라보게 한다.
아이들을 돌보며 오히려 위로받은 시간
진료실에서 주고받은 작고 따뜻한 마음들
진료실에서 오가는 것은 처방전과 진단만이 아니다. 자지러지게 울던 아이가 그려 준 웃는 얼굴 그림, 세 살배기 환자가 건넨 쿠키 하나처럼 아이들이 건넨 작은 마음은 의사에게 오래 남는다. 의사 역시 자신의 방식으로 그 마음에 답한다. 긴 치료 끝에 완치 판정을 받은 아이에게 자신이 읽던 시집을 건네고, 발달이 늦거나 예상하지 못한 병을 진단받은 아이의 부모에게는 “엄마 탓 아닙니다”라고 다독인다.
물론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순간이 언제나 따뜻한 것은 아니다. 생사를 오가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온 힘을 쏟아야 하는 날도 있고, 끝내 아이를 떠나보낸 뒤 남겨진 가족의 슬픔을 바라봐야 하는 순간도 있다. 생명을 살리는 직업을 가졌지만 언제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오랜 시간 의사로 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별이 있음을 저자는 담담하게 기록한다. 그럼에도 다 죽어 가는 모습으로 병원에 왔던 아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방긋 웃으며 돌아가고, 한때 아팠던 아이가 훌쩍 자라 다시 찾아오는 순간이면 저자는 자신이 왜 소아과 의사로 살아가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아이들을 돌보며 살아온 시간이지만 돌아보면 오히려 그 작은 환자들에게 위로받고 살아갈 힘을 얻은 순간도 많았다. 이 책에는 그렇게 의사와 아이가 서로의 삶에 남긴 작고 따뜻한 흔적들이 곳곳에 담겨 있다.
“사직서는 늘고 이력서는 없다”
그럼에도 소아과 의사로 살아가는 이유
이 책에는 아이와 보호자의 이야기뿐 아니라 오늘날 소아과 의사로 살아가는 한 사람의 현실도 담겨 있다. 저자는 달라진 의료 환경과 소아과의 현실, 의사라는 직업을 둘러싼 기대와 오해를 솔직하게 풀어 놓는다. 소아과를 지원하는 의사는 매년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 지역 의료 현장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워지고 있는지도 이야기한다. 그런 현실 속에서도 저자는 여전히 자신의 자리에서 아이들을 만난다.
한편 책 곳곳에서는 ‘의사 선생님’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인간적인 모습도 드러난다. 주사 앞에서는 겁을 내고, 예전 같지 않은 몸을 실감하며, 가족이 아플 때면 여느 사람처럼 마음을 졸이는 일상의 모습도 솔직하게 담았다. 무거운 의료 현실과 생명의 문제 사이사이에 놓인 유머와 일상의 장면들은 책에 또 다른 온기를 더한다. 그가 여전히 진료실을 지키는 이유는 거창한 사명감에 있지 않다. 눈앞의 아이가 조금 덜 아프고, 조금 더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저자는 그렇게 아이들 곁을 지키며 오늘도 소아과 의사로 살아간다.
“여름이 가고 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당신이 걸어갈 다음 계절의 길목마다, 상하지 않는 다정한 온기가 늘 함께하기를 소망합니다.”
―「에필로그: 계절의 뒷면을 아끼는 당신에게」 중에서
추천사
행복과 가장 먼 장소에서 간절하게 행복을 구한 적 있다.
병원 밖에서 나는 수술 중인 아이를 기다리며 우리가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평범한 하루를. 살면서 사무치게 깨달았던 행복은 그랬다.
세 살배기 환자가 준 쿠키 하나에 살아갈 이유를 찾고, 완치 판정을 받은 환자에게 자신이 읽던 시집을 건네고, 아이가 아픈 건 절대 부모 탓이 아니라고 위로하는 의사는 말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하루는 실은 기적이라고. 끝내 살리지 못했던 아이들을 마음의 빚으로 간직한 채 오늘도 그는 청진기를 든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행복과 기적을 간절하게 구하는 이들의 이야기. 이 모든 이야기를 나는 희망이라고 읽었다.
―고수리(에세이스트, 《선명한 사랑》 저자)
소아과의 여러 분과 중에서도 특히 ‘소아신경’은 오랜 시간 환아와 보호자의 염려, 그리고 기쁨을 함께 나누는 곳입니다. 더욱이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의료의 최전선을 묵묵히 지키고, 오랜 시간 그 일을 감당하시는 강두철 선생님의 노고와 책임감에 깊은 존경의 마음을 전하게 됩니다. 강두철 선생님의 이야기가 환아의 부모님들에게는 깊은 안도와 위로를, 현장을 지키는 동료들과 이제 막 현장의 입구에서 합류를 고민하는 소아과 선생님들에게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 또한 이 글들에 큰 힘을 얻어 오늘도 아이들을 만나러 진료실로 향합니다.
―정인희(소아과 전문의, 드라마 작가)
책 속에서
이십여 년 전, 잡지 속 젊은 나는 아이들을 위해 의술을 펼치는 삶을 꿈꾸었다. 수많은 아이와 부모의 아픔과 안도를 함께 지나온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은 오히려 소박해졌다.
아이가 아프지 않은 것, 부모가 가슴 졸이지 않는 것. 진료실을 나선 작은 생명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 밥을 먹고 잠들고, 다음 날 아침이면 다시 일어나 평범한 하루를 시작하는 것.
하늘의 빛나는 별이 된 아이들과 환하게 웃으며 집으로 돌아간 아이들을 기억한다. 그 아이들에게서 나는 평범한 하루가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이 작은 기록이 오늘 밤에도 아픈 아이를 살리기 위해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동료들에게, 그리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애태우고 있을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와 힘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진료실에서 만난 아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부디 오늘 밤도 무사히 지나가기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내일이 되기를.
―〈프롤로그〉 중에서
거울 앞에 섰다. 오늘만 해도 수십 번 닦은 손을 한 번 더 닦으며 거울 속 내 얼굴을 보았다. 아이들 눈에 나는 어떤 얼굴로 비칠까? 도윤이가 그려 준 그림 속 의사처럼,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 앞에서도 늘 한결같이 웃는 얼굴일 수 있으면 좋겠다.
―〈36색 웃는 얼굴〉 중에서
다 죽어 가는 모습으로 들어왔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방긋 웃으며 나가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내가 왜 소아과 의사로 살고 있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계단을 내려가며 가운 주머니 속 쿠키를 한입 베어 물었다. 아이가 가장 아끼는 보물이었을 작은 선물에 가슴이 온기로 가득 채워졌다. 삼십 년 전 사량도의 밤바다를 보며 울적해하던 청년 의사에게도 이 쿠키 한 조각 건네주고 싶다.
죽음이 늘 곁에 있을지라도, 결국 우리를 살게 하는 건 이런 작고 따뜻한 온기가 아닐까. 쿠키를 다시 베어 물었다. 아니마면 어떻고 아니무스면 어떤가. 나의 작은 ‘광팬’이 건네준 선물 하나에 온종일 이렇게 마음이 뜨뜻한데.
―〈쿠키와 쿡쿡〉 중에서
사는 동안 언젠가 그리고 누구든 그런 날을 맞닥뜨리게 된다. ‘잘못한 것 없어도’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 순간을. 이십 년 전 아이가 태어나던 날의 나처럼, 동생을 위해 입원해야 했던 민호처럼, 오늘 아픈 아이들을 돌보는 진아 씨처럼. 나는 앞으로 부딪히게 될 그 ‘어쩔 수 없는 날’들 앞에서 어떤 마음으로 서 있어야 할까. 지금 당장 대답할 수는 없지만 ‘잘못한 것 없는데’란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쩔 수 없는 날〉 중에서
그때, 진료실 입구 계단 앞에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 있는 젊은 엄마가 보였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노란 옷을 입은 병아리 같은 아이가 네발로 낑낑대며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혹시나 아이가 넘어질까 싶어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지켜보았다. 그 순간, 아이가 고개를 돌려 엄마와 눈을 맞추더니 세상을 다 가진 듯 환하게 웃었다. 나를 향한 웃음이 아니었지만, 그 빛나는 얼굴 하나에 내 아침이 환하게 열리는 기분이었다. 진료실 의자에 앉아 욱신거리는 발을 내려다보았다. 내 아픈 아킬레스건 위로, 조금 전 힘차게 계단을 오르던 아이의 작고 튼실한 발이 겹쳐 보였다.
아마도 아이의 작은 아킬레스건은 계단을 신나게 오르는 자식을 말없이 지켜보던, 엄마의 포근한 사랑이 한껏 감싸고 있었을 것이다. 두 손 두 발로 계단을 오르던 저 아이가 두 다리로 걷게 되고 학교에 가고 또 험한 사회에 나서더라도, 언제까지나 엄마의 따듯한 그 눈길이 항상 함께하기를.
―〈아껴 쓰자 아킬레스〉 중에서
나이 들수록 잃어 버리고 사라져 가는 것들이 많아진다. 한편으론 세월과 함께 감정들이 뭉툭해지는 것 같아 나이 듦이 싫기도 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세월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니. 가게 안을 흘끗 바라본다. 한차례 따뜻한 바람이 불어온다. 문득 봄이 아직은 다 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남은 봄을 조용히 아껴 걷는다.
―〈남은 봄을 아껴 걸으며〉 중에서
프롤로그
1부 아이들이 내게 알려 준 것
엄마 탓 아닙니다
완치가 됩니까?
쿠키와 쿡쿡
빛나는 쪽으로
가벼워지지 않는 마음
36색 웃는 얼굴
온전히 안녕한 상태
어쩔 수 없는 날
별이 된 이별
진료실 데시벨
앰뷸런스를 보내고
그 아이는 좋은 곳으로 갔을까
살리고 싶지 않은 의사는 없다
바람 한 조각
2부 그래도 의사로 살아간다
먼 것은 가까운 것이 쌓인 것이다
진료실에서 챗지피티
명의십니다
버스비 대신 건넨 신문 한 부
처음 맞는 어린이날
벗이 있어 즐겁지 아니한가
아껴 쓰자 아킬레스
양귀비꽃을 놓으며
불인비인
의사도 주사 앞에서는 눈물이 찔끔 난다
사직서는 늘고 이력서는 없다
당일치기 서울행
120에 80입니다
떨어지지 않는 잎새
소아과 의사의 숙명
나이는 모르겠고, 잔나비띠야
남은 봄을 아껴 걸으며
서로 곁에 있어 더 좋은 오늘
오늘도 무사히
강두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소아신경과 전문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에서 소아청소년과와 소아신경과 의사로 일했다.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에서 십 년 가까이 근무한 뒤 거제에 정착했다. 지역 아동병원에서 아이들을 진료하고, 아동발달센터와 수면센터를 운영하며 성장과 발달 과정을 함께 살피고 있다.
이십 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아이와 부모를 만나며 아픔과 회복, 때로는 이별의 순간을 함께 지나왔다. 코로나 시기 한동안 한산해진 진료실에서 그간의 시간들을 돌아보게 되었고, 그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돌보는 의사이자 그 곁에서 마주한 삶을 기록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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