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지 않아도 오고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어디 뻘밭 구석이거나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지쳐 나자빠져 있다가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흔들어 깨우면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너를 보면 눈부셔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나는 아무 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가까스...
햇살 한 줌 주세요 새순도 몇 잎 넣어주세요 바람 잔잔한 오후 한 큰 술에 산목련 향은 두 방울만 새들의 합창을 실은 아기병아리 걸음은 열 걸음이 좋겠어요 수줍은 아랫마을 순이 생각은 듬뿍 넣을래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마음을 고명으로 얹어주세요. 정애정 1971년생으로 문만 열면 산과 강이 보이는 강원도 영월에서 속기사로 일하며 시를 쓰고 있습니다. 가만히 누워 빗소...
낮달-중년의 비애 한 걸음 더 내디뎌 곁불을 쬐려거든체면은 벗어 들고 헛웃음만 입에 걸어기쁜 듯 슬퍼 보이는 그런 표정 짓지 마 여환탁 (대구시 동구) ㅡ 초경(初經) 발끝으로 걷지 않아도 키가 크는 날이 올까요나의 밑은 홀로 먹는 점심처럼 허전해지고샅에서 붉게 피어난 목향장미의 속울음 백들 (경기도 안성시) 뽑는 말자신만의 경험과 감각이 새로운 시를 낳...
우리가 오늘 비탈에 서서 바로 가누기 힘들지라도 햇빛과 바람 이 세상맛을 온몸에 듬뿍 묻히고 살기는 저 거목과 마찬가지 아니랴 우리가 오늘 비탈에 서서 낮은 몸끼리 어울릴지라도 기쁨과 슬픔 이 세상 이치를 온 가슴에 골고루 적시며 살기는 저 우뚝한 산과 무엇이 다르랴 이 우주에 한 점 지워질 듯 지워질 듯 찍혀있다 해도 김현숙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경북여고, 이화여대 ...
그녀의 누름돌 씨오쟁이 좇아서 가뭇없이 전전했다언제나 누름돌은 발치를 비껴갔다한뉘를 떠다닌 물은 소금쩍 낀 길이었다박한규 (포항시 남구) ㅡ 고시원함박눈 내리는데 환하게 내리는데한 평 독방 불을 끄고 스스로를 위로한다조용히 홀로인 어둠, 오르가즘과 슬픔 사이변선희 (대구시 북구) 뽑는 말시는 사물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새롭지 않은 표현은 설득력이 없다. 설득...
가로등 밑 들깨는올해도 쭉정이란다.쉴 틈이 없었던 거지.너도 곧 좋은 날이 올 거여.지나고 봐라, 사람도밤낮 밝기만 하다고 좋은 것 아니다.보름 아녔던 그믐달 없고그믐 없었던 보름달 없지.어둠은 지나가는 거란다.어떤 세상이 맨날보름달만 있겄냐?몸만 성하면 쓴다. 이정록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혈거시대(穴居時代)〉가 당선되어 등단했습니다. 현재 ‘비무장지대’ ...
겨울 이야기 가지 끝에 몇 낱 남은 연시감 곁에서까막까치 노래로 긴 오후가 저문다아이는 까치밥의 숫자가 어제만큼인 게 슬프다 서미숙 (경기도 오산시) ㅡ 몽돌썰물에 벗겼다가 밀물에 묻혔다가한쪽으로 밀려나간 질척이던 생각들이스스로 모서리 깎아 둥근 마음 세운다 김갑주 (울산시 울주군) 쥘부채 그림의 난경(難境)은 붓이 부챗살 접힌 부분을 지나갈 때라고 한다.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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