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출렁 이러다 지각하겠다 싶을 때, 있는 힘껏 길을 잡아당기면출렁출렁, 학교가 우리 집 앞으로 온다. 춥고 배고파 죽겠다 싶을 때, 있는 힘껏 길을 잡아당기면출렁출렁, 저녁을 차린 우리 집이 버스 정류장 앞으로 온다. 갑자기 니가 보고 싶을 때, 있는 힘껏 길을 잡아당기면출렁출렁, 그리운 니가 내게 안겨온다. 박성우(시인)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2006...
비 물새는 만년필 꺼내 유리창에 시를 쓴다썼다가 지웠다가 밤 내내 구긴 파지아쉬운 기억 모서리 돌아보는 풀잎새김진주 (경기도 안양시) 바닷가 바람이 다림질로 주름 편 백사장 위갈매기 발연필로 끼룩끼룩 시를 쓴다밤낮을 꾸짖는 파도 다시 쓰라 지우고 정순연 (경남 양산시) 뽑는 말시의 출발은 발견이다. 발견은 세계와 대상, 인간과 역사, 자연과 사물에 대한 새로운 해...
소년에게 소년이여, 작은 창 열고 나와 소녀에게 목도리를 둘러주어라여름부터 와 있었을 소녀에게 스웨터를 내주어라행여라도 털장갑은 내주지 마라소녀를 자전거 뒤에 태워 그대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게 하라 박성우(시인)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연거푸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따뜻하고 섬세한 문장으로 동심을 담아낸 어...
연잎밥 행여나 엇나갈까 온몸으로 감싸 안았다찜통 열기 속에서도 깍지 풀지 않았다산부처 어머니 치마 밥 냄새가 구수하다강하완(서울시 강남구) 내무사열 삼대가 덕을 쌓은 주말부부 맞갖은데켜켜이 쌓인 먼지 무덕진 세간붙이고리눈 따끔령 환영에 밀물처럼 올랑댄다김정민(경남 진해시) 뽑는 말한글은 우리글이요, 시조는 우리 시다. 한글이 있기에 우리말을 담아낼 수 있고, 시조가 있...
옥수수 비 푹푹 찌는 초가을 오후, 비가 친다마당가 옥수수 이파리가 휘청인다 일을 잠시 멈춘 나는 컴퓨터를 꺼소음 줄이고 빗소리 볼륨을 높인다 창틀에 기대앉아 눈을 까막까막,옥수수 빗소리를 몸 안으로 들인다 먼 오토바이 소리가 점점 커져대문 없는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온다 우편물을 들고 처마로 드는우체부에게서 찐 옥수수 냄새가 난다 등기우편물 전해주고 가는 우체부오토바이가 ...
빗소리 나뭇가지 흥건하다 비 맞은 새 한 마리하루 종일 굶다가 벌레를 잘못 먹었나밤새워 낙숫물 소리 딸꾹 딸꾹 딸딱꾹 정호순 (서울시 강북구) 소통 코로나가 만든 벽을 허물기 만만찮아새롭게 분수령 된 팬데믹 시대라네마스크 홍수 속에도 어여삐 핀 능소화 권경주 (전북 익산시) 뽑는 말시는 사유의 표현이다. 관념의 노출이 아닌 이미지의 형상화를 꾀해야 한다. 뻔한 발상...
풀 잡기 올해만큼은 풀을 잡아보겠다고 풀을 몬다고추밭 파밭 가장자리로, 도라지밭 녹차밭 가장자리로 풀을 몬다호미자루든 괭이자루든 낫자루든 잡히는 대로 들고 몬다살살 살살살살 몰고 싹싹 싹싹싹싹 몬다팔 다리 어깨 허리 무릎, 온몸이 쑤시게 틈날 때마다 몬다봄부터 이짝저짝 몰리던 풀이 여름이 되면서, 되레 나를 몬다풀을 잡기는커녕 되레 풀한테 몰린 나는고추밭 파밭 도라지밭 녹차...
권태자꾸만 늘어지는 팽팽한 목록 사이반복되는 페이지 미지근한 체온들희미한 원래 모습은 괄호 속에만 산다김현주 (경북 포항시) 달팽이 길방 하나 쬐그만 집 평생의 고단한 삶느리고 머나먼 길 큰 시름 끌고 가듯논두렁 눈물 자국은 어머니가 걷던 길이인환 (서울시 강동구) 뽑는 말시인은 타고나는가. 그렇지 않다. 시인은 만들어진다. 시인을 만드는 첫째 요건이 자각과 자성이라...
일식아들의 이름마저 잃은 동공에 맺힌 저 달마지막 가족 품은 어머니의 눈부처찔레꽃 진 자리 너머 환한 조등 떠오른다 황병숙 (경기도 수원시) 밑받침밑받침이 바람에 씻겨간 문패 속 이름귀를 닫고 여섯 살 품에 안은 한 생애하머니, 첫 글자 붉은색 ㄹ 붙이다가 울컥 이종현 (강원도 춘천시) 뽑는 말시는 보고 느낀 데서 나오고, 겪고 치른 만큼 깊어진다. 뻔한 발상, 낡은 표...
해바라기 담 아래 심은 해바라기 피었다 참 모질게도 딱,등 돌려 옆집 마당 보고 피었다 사흘이 멀다 하고말동무하듯 잔소리하러 오는혼자 사는 옆집 할아버지 웬일인지 조용해졌다 모종하고 거름 내고 자주 세워주고는이제나 저제나 꽃 피기만 기다린 터에야속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여해바라기가 내려다보는 옆집 담을 넘겨다보았다 처음 보는 할머니와나란히 마루에 걸터앉은옆집 억지쟁이 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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