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담양 토박이 이진영 씨는 담양의 특산물인 대나무를 닮았다. 훤칠한 키부터 담백한 대답, 무엇보다 담양을 향한 변치 않는 믿음이 담양의 촉촉한 토양과 온화한 날씨에서 자란 곧은 대나무 같다. 아직은 서툴고 여리지만 맑고 고운 햇살 아래에서 자신만의 건강한 목소리를 내보려는 그녀의 모습이 싱그럽다. “자, 여기서부터는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아요.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요. 그...
가끔은 남의 손을 타지 않은 책을 빌리고 싶을 때가 있다. 다행히 도서관마다 신간들을 한동안 따로 분류해둔다. 그날도 새 책을 만져보고 싶어 신간 서가로 갔다. 맑고 깔끔한 표지의 책을 한 권 골라 새벽공기 같은 손맛을 느끼고 싶었다. 신간 서가는 여유롭다. 다른 서가처럼 책을 빼곡하게 꽂아두지 않는다. 공간의 여백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도서관의 책들은 대개 비집고 들어...
그림 · 모조핀 12월의 페어링 동짓달 기나긴 밤 + 슈톨렌 ‘동짓달 기나긴 밤’은 쌀과 복분자를 원료로 빚은 한국의 전통 약주입니다. 황진이의 시조를 따 이름 지었듯이 절절한 그리움을 맛에 담아낸 술입니다. 달콤하지만은 않은 묘한 맛이 사람의 다채로운 감정을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12월에는 슈톨렌을 준비하는 것만으로 특별한 나날을 보낼 수 있을 거예요. 슈톨렌을 먹는 ...
그림 · 손승배 백화점이란 곳을 처음 갔을 때를 초등학교 1학년 쯤으로 기억한다. 몇 번 가봤던 동네 쇼핑센터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크고 화려한 백화점이 무척 신기했다. 눈을 반짝이며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사람들을 헤쳐 들어간 곳은 ‘김민재’라고 쓰인 매장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것저것 나에게 입혀보고는 두툼한 병아리색의 점퍼를 고르셨다. 좋은 옷이니 오래 입어야 한...
서울아트책보고 기간 2026년 1월 25일까지장소 서울 구로구 경인로 430 지하1층문의 02-2066-4830입장료 무료 스마트폰으로만 보던 웹툰 속 장면이 미로처럼 얽힌 전시장에 가득 펼쳐졌다. 중간중간 불규칙적으로 세워진 가벽 때문에 내가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 방향감각을 잃어버릴 것 같은 공간에서 익숙한 그림체가 눈에 들어왔다. 웹툰 닥터 프로스트였다. 말풍선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가 인상적인 대사를 만날 때마다 멈춰 섰다. ‘한국에서는 심리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수많은 학생들이 간단한 상담으로도 나아질 수 있는 질환들을 혼자서 안고 살아간다.’ 이미 알고 있는 현실이지만 천재 심리학자인 주인공의 대사로 마주하자 한층 울림 있게 다가왔다. 웹툰 장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걸음을 옮기다 막다른 길을 만났다. 정...
예기치 못한 감동과 마주했을 때 여운이 더 짙다는 걸 얼마 전 한 편의 공연을 통해 새삼 느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맘껏 끼를 펼친 뮤지컬 〈아리스토캣(The Aristcats Kids)〉은 작품성만 놓고 판단한다면 완성도가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다. 극에 등장하는 배우들도 모두 나이 어린 아마추어여서 대사나 춤, 노래가 조금씩 어색하다. 그러나 이 무대의 매력은 높은 예...
한국브리지협회 김혜영 회장은 두뇌 스포츠 ‘브리지’로 인생 2막을 열었다. 40년간 주부로 살아온 그녀가 태극마크를 달고 한국 브리지를 대표하는 자리까지 오를 수 있던 동력은 브리지를 향한 애정과 열정이었다. 한국브리지협회회장 김혜영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 중국의 정치가 등소평, 추리소설가 아가사 크리스티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나는 사실, 선물을 받는 일에 큰 설렘을 느끼지 못한다. 이유를 딱히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아마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배려와 사랑으로 결핍을 느낄 틈이 없어서였던 것 같다. 그래서 무언가를 특별히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 그저 여름이 시작되면 자두가 먹고 싶고, 여름의 끝이 오면 까맣게 익은 포도를 찾는 정도다. 하지만 문득문득 찾아오는 일상의 ...
어지러운 꿈에서 튕겨 나오듯 깨었다. 번쩍 눈을 뜨자마자 안경부터 찾았다. 이게 무슨 꿈이람. 놀란 가슴을 쓸어내었다. 그러니까, 하고 되짚어보려는 순간 꿈은 한 발짝 물러난다. 붙잡아보려고 애를 쓸수록 물러나 버리던 꿈은 어느새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 안경을 쓰고 시계를 확인한다. 새벽과 아침 사이. 베개에 머리를 내려놓는 순간 두통이 느껴졌다. 침을 삼킬 때마다 목이 아...
퇴근 후 금요일 저녁 7시 넘어 도서관에 도착했다. 2주 전에 빌렸던 책을 반납하고 나서 한가롭게 서가를 오갔다. 에세이처럼 문체가 가벼워 술술 읽히는 일본 소설들에 눈길이 가 한참을 머물다 좀 더 안쪽 서가로 들어갔다. 유럽 소설들이 모여있다. 프랑스 소설을 몇 권 집었다 놓았다가 하면서 내용을 살폈다. 프랑스 소설은 사람들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려 한다. 풍경과 상황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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