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야 그림자. 아주 환한 때일수록 그 자리를 들여다보는 마음을 가지렴.” 9월의 대학가는 이상한 느낌을 준다. 3월 신학기 때만큼의 흥성한 느낌은 없지만 무언가를 당차게 결심하는 학생들이 자주 보인다. ‘1학기 때처럼 술만 마시다가 시간을 보내지는 않겠다’라든가, ‘이번 학기에는 책을 백 권 읽겠다’ 라는 식의 당찬 다짐들. 물론 이런 결심은 가을 나무에 매달린 과일처...
오리여인이 이해인수녀께 지난여름 가까운 사람을 둘씩이나 떠나보냈다는 수녀님의 편지를 읽고 나니 마음이 먹먹해져 가슴에 돌 하나가 들어앉은 느낌입니다. 성인이 되어서는 아주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낸 경험이 없어서 저에게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늘 막연하고 두렵기만 합니다. 언젠가 가족이나 제 주변 사람을 떠나보내야 할 때가 올 텐데 상상만으로도 코끝이 아려옵니다. 수녀님 곁을 지...
식사가 끝날 무렵, 엄마가 식탁에 쟁반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과일 먹자.” 그 한마디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렇다. 오늘날의 식도락 생활상은 육식이 미식의 패권을 꽉 쥐고 있는 살벌한 현실이지만 육식이 절대 넘볼 수 없는 채식만의 분야가 있다. 디저트다. 생각해보라. 그 어떤 최고급 코스요리도 난잡한 맛으로 얼룩진 혀를 깨끗이 닦아내고 화려하게 대미를 장식해야 하는 순간에...
전주는 도시 전체가 한 권의 소설집 같다. 150여 개의 도서관이 낱장을 이루는 책. 공간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어 그 앞에 서면 소설의 다음 장을 넘기려는 탐독가의 기분이 된다. 아직 읽지 않은 페이지 속으로 어서 들어가보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이 조금 바빠진다. 여행은 곧 어떠한 분위기 속으로 잠수하는 일이다. 특정 공간으로 들어가 그곳의 향기, 소리, 온도로 몸을...
우리 집에서는 1년에 한두 번 명절 같은 주말 풍경이 펼쳐진다. 토요일 점심때가 되자 두 아들과 조카가 연이어 집에 도착했다. 셋 다 결혼해서 아이를 한 명씩 낳았으니 모두 아홉 명이다. 돌잡이가 두 명, 8개월짜리가 한 명으로 세 아이 모두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우리 부부만 살아 조용했던 집이 모처럼 잔칫집처럼 북적거렸다. 두 팀은 서울에서, 한 팀은 진주에서 평택까지 ...
연극 온더비트기간 10월 12일까지장소 서울 중구 필동로1길 30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문의 070-4190-1289 프랑스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예술축제 ‘오프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최고의 1인극상’을 수상한 연극 온더비트의 무대 위에는 배우 한 명과 드럼만이 존재한다. 화려한 무대 장치도 없고, 다양한 배역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단조로운 무대지만 예술적 관점에서는 1인극이야말로 연극 예술의 꽃이라 불린다. 한 명의 배우가 극 전체를 이끌어가며 엄청난 집중력과 연기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1인극이 주는 특별함 덕분일까. 2022년 국내 초연 이후 이번에 새 시즌으로 돌아온 작품에 대한 관객들...
그림 · 손승배 얼마 전에 한 가지 신나는 일을 맞이했다. 작년부터 한 스포츠 브랜드와 협력해 디자인한 운동화가 마침내 시중에 출시된 것이다. 패션 브랜드와 함께 옷은 몇 번 만들어 봤지만 신발은 처음이었다. 내 삶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커다란 성취감을 안겨준 사건이어서 아직 나는 몹시 가슴이 뛴다. 인생의 모든 일이 그렇듯 벅찬 기쁨을 얻기까지는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림 · 모조핀 10월의 페어링 호호 막걸리 + 단호박 구이 단호박이 들어간 중원당의 ‘호호 막걸리’는 고운 노란빛에 기분이 좋아지는 술입니다. 호박죽 같은 식감과 맛을 예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보다 훨씬 가볍습니다. 호박 향이 짙으면서도 너무 달지 않고 담백해서 자꾸만 손이 가지요. 도수가 높지 않고 풍미가 과하지 않아 누구나 부담 없이 ‘호호’ 웃으면서 마시기 좋은...
일기는 매일 쓰는 것이 아니다. 날을 잡아 한 번에 몰아 쓸 수도 있다. 일기(日記)가 아니라 일기(一記)인 셈이다. 일기 쓰기가 가장 중요한 방학 숙제였던 시절에는 말이다. 방학 숙제는 말 자체가 형용모순이다. 놓을 방에 배울 학, 방학(放學). 문자 그대로 배움을 내려놓는 게 방학의 본질이라면 숙제는 왜 그리 많았을까. 방학이 시작되기도 전에 검사를 받아야 했던 생활계획...
30년간 몸담았던 KBS를 떠나며 12년간 진행해온 아침마당과도 작별한 김재원 아나운서. 매일 정해진 일상을 살아야 했던 것과 달리 이제 새로운 길을 나서야 하는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내일을 기다린다. 아나운서 김재원 “아침마당을 잊지 않겠습니다.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아침을 책임지고 있는 대표 교양프로그램 KBS 〈아침마당〉의 진행자인 김재원(59) 아나운서가 지난여름, 시청자들에게 작별 인사를 전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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