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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여행자의 휴식
삶의 윤기가 흐르는 길 위에서 2020년 9월호
 
삶의 윤기가 흐르는 길 위에서

노란 금계국을 만난 곳은 경기도 연천군에 자리한 연강나룻길이었다. 금계국 주위로 연두색과 녹색의 풀들이 번져 있었고 초록의 가장자리는 땅과 나무가 감싸고 있었다. 완만하게 구불거리는 능선길이 저 멀리 옥녀봉까지 이어졌다.


옥녀봉 정상에서 높이 10m의 거대한 ‘그리팅맨’ 조각상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네 왔다. 왼편으로 강이 반짝이고 눈앞으로는 낮고 부드러운 둔덕이 펼쳐진 길은 비현실적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이곳은 북한의 강과 남한의 땅이 처음 만나는 곳이다. 강도 흐르고 땅 도 이어지지만 길은 목적지가 지워진 이정표처럼 아무 곳에도 도달하지 못한 채 끊겨 있다. 이어지지 못한 길과 길 사이에 는 긴장과 아픔의 공백이 거대하게 자리잡았다. 하지만 긴장은 사람의 일이라 연강나룻길은 무심하고 조용했다.


금계국과 능선에 푹 빠져 걷고 있는데 발밑이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발을 보니 신발 앞부분 밑창이 벌어져 덜렁거리고 있었다.

“이 신발도 오래 신었네. 이 길만 걷고 버려야겠다. 그렇지 않아도 가볍고 시원한 신발들 많이 나왔던데.”

“그래. 튼튼한 신발 하나 다시 사.”


이미 머릿속에서는 새 신발 목록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가격과 디자인과 브랜 가 적당한 타협을 이루는 어느 지점을 향해 수많은 신발들이 머릿속을 들락거렸다. 그 수많은 신발들을 헤치고 난데없이 보라색 슬리퍼가 불쑥 튀어나왔다. 발등에 꽃무늬가 요란하게 찍힌 고무 슬리퍼였다. 발등과 밑창을 잇는 부분이 질긴 실로 꼼꼼하게 꿰매져 있는 그 신발은 외할머니의 슬리퍼였다. 사실 그날 우리는 연천에서 영면하신 외할머니에게 추 의 인사를 드리고 오는 길이었다


외할머니는 단정하고 검소한 분이었다. 모든 물건들은 늘 같은 서랍, 같은 자리에 들어있었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반듯하게 정리되어 사용될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고 사용하는 물건은 조심스럽게 매만진 손길로 모든 모서리가 맨질맨질하게 닳아 있었다. 라면 봉지 하나도 허투루 버려지는 법이 없었다. 봉지들은 깨끗하게 접혀 얌전히 기다리다가 때가 되면 김이나 콩, 썬 파 등을 넣고 노란 고무줄로 위를 돌돌 말아 일종의 밀폐용기처럼 사용되었다. 밥을 푸는 주걱은 평생 단 한 개만 사용하셨는데, 오랜 세월 닳아 얇고 작아진 주걱은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다.


외할머니 집에는 화분이 많았다. 돈을 주고 산 적은 없고 대부분 누군가 버린 화분이나 죽어가는 화초를 주워와 물을 주 고 빛을 쬐어 정성껏 살려낸 것들이었다. 그렇게 살아난 화분들은 기적처럼 10년, 20년씩 무럭무럭 자라 생의 마디를 늘려 갔다. 그 녹색의 생명들은 이따금 엄마네 집과 우리 집까지 분양오기도 했다. ‘일수, 대출’ 같은 광고문구가 적힌 전단지도 귀한 대접을 받았다. 흔하디흔한 전단 지들은 양철로 된 약통 상자에 차곡차곡 담겨 메모지로 사용되었는데, 할머니의 메모는 주로 ‘홍화씨가 관절에 조타’처럼 요긴한 건강 정보나 노인으로서의 태도, 가령 ‘아라도 모른 척, 몰라도 모른 척 하 라’ 같은 말들이었다.


자개 화장대 유리판 밑에는 손수 코바늘로 뜬 흰 레이스 깔개가 깔려 있었고 유리와 레이스 사이의 사진 속 가족들이 늙지 않은 채 박제되어 있었다. 그 옆에는 ‘중고차 할부 최저이자’ 전단지에 응급상황 시 연락할 가족의 전화번호가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할머니에게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되는 가벼운 밀대나 가볍고 코팅된 냄비, 사용하기 편한 지퍼백 등을 사다드려도 포장지조차 뜯기 아까워하셨다. 할머니는 쓰던 거 다 쓰시면 쓰겠노라며 고이 보관해두셨다. 물론 그 물건들은 포장지 색이 누렇게 바랠 때 까지 미개봉 신품 상태로 남아 있었다. 동생과 나는 할머니 댁에 놀러갈 때마다 ‘아직도 그대로인’ 물건들을 발견하며 새삼 놀라곤 했다.



외할머니의 물건들에는 어떤 고매함이 깃들어 있었다. 적당히 기름을 먹어 부드럽고 매끄러워진 광주리며, 수십 년 을 견디느라 무늬가 흐려진 쟁반, 입던 옷에서 분리해 잘 보관해둔 작은 단추들은 건조하게 마른 노인의 손길이 살뜰하게 닿아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은은한 윤기를 내고 있었다. 그 윤기는 아늑하고 포근했다. 다른 곳에서라면 비루한 대접을 받았을 낡은 물건들이 귀한 대접을 받는 집안 구석구석에는 조용하고 깊은 존중이 스며 있었다. 아무 것도 함부로 버려 지지 않았으며, 아무 것도 비참하지 않았다. 외할머니 집의 은은한 윤기는 존중 받는 것들이 내는 빛이었다. 누군가의 따스한 환영에 모서리가 순해진 사물들이 안심하고 내는 빛….



옥녀봉으로 가는 길은 보기보다 쉽지 않았다. 군남댐에서 시작한 완만한 능선에는 그늘이 없어 여름의 태양을 그대로 머리에 이고 올라야 했다. 잔뜩 자란 풀과 작은 관목들이 길을 막아서기도 했다. 얕은 비탈에서는 여름의 풀들이 억세고 거칠게 익어가고 있었고 한편에서는 이미 시든 생명들이 물기 없는 몸통을 바스락거리며 엎드려 있었다. 


 


율무 밭 너머 몇 가구 되지 않는 작은 오지 마을이 보였다. 언덕 저편 오지마을의 늙은 개들이 우리의 기척에 컹컹 짖어 댔다. 매끄럽고 무탈해 보이던 능선 길에 자리 잡은 모든 생과 죽음의 마디들이 익 어가고 죽어가느라 바쁘고 치열했다.



떨어진 밑창으로 흙이 들어와 신발은 평소보다 지저분해져 있었다. 개안마루 둔덕에 앉아 물끄러미 신발을 바라보니 외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가격과 디자인 사이를 분주히 오가던 생각들은 그새 시들해졌는지 신발 수선이나 AS 같은 단어가 곁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너덜거리는 신발 너머로 유구히 그대로인 임진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 주위로 강이 어루만진 땅의 윤곽이 부드럽게 굽이쳤다. 길 끝에서는 그리팅맨이 정중하게 변함없는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인사를 받은 길은 세월의 더께 위로 윤기를 내고 있었다.

 

박여진 (번역가)


오랜 친구인 남편 ‘백’과 주말마다 길을 나서는 출판 번역가입니다. 차곡차곡 저축하듯 소소한 여행의 경험들을 쌓아 나가고 있습니다. 일상과 단절되지 않으면서도 깊이 휴식하는 주말여행의 기록을 《토닥토닥, 숲길》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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