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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만나는 왕과 왕실 2020년 7월호
 
일상에서 만나는 왕과 왕실

한국은 이제 카페 천지다. 태국도 마찬가지다. 번화한 시내뿐만 아니라 동네 작은 골목에도 카페가 자리하고 있다.


특히 태국의 수도 방콕에는 다양한 콘셉트의 카페들이 많다. 예전에는 짜오프라야 강 주변의 사원과 궁을 구경하고, 스트리트 푸드가 넘쳐나는 야시장에 가는 것이 방콕 관광의 기본이었는데, 요즘에는 골목 안에 자리 잡은 다양한 콘셉트의 카페를 탐색하는 것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방콕 여행의 트렌드다. 획일적인 분위기의 프랜차이즈 카페보다 새롭고도 이색적인 로컬 카페들이 특히 인기가 많다.


태국 북부나 중부에서 재배한 태국산 커피콩을 직접 로스팅하는 카페, 해외 커피 산지로부터 가져온 커피를 스페셜티로 내세우는 카페, 마차(match)로 만든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는 마차 카페 등 특별한 재료를 내세운 카페들이 있고, 초록빛 식물들로 자연의 감성을 그대로 살리거나, 깔끔하고 정제된 디자인으로 모던함을 강조하는 등 다양한 공간 콘셉트를 내세운 카페들도 있다.

 

태국의 로컬 카페들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어느 카페에서나 쉽게 ‘왕’이나 ‘왕실’ 사진과 그림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70년 넘게 왕위를 유지해오다가 지난 2016년에 서거한 전왕 푸미폰 아둔야뎃(라마 9세)을 가장 많이 볼 수 있고, 그 뒤를 이어받은 현재의 국왕 마하 와치랄롱꼰(라마 10세)의 사진과 그림도 늘어나고 있다.



태국은 왕이 있는 입헌군주제의 나라다. 우리나라에서는 흥미로운 판타지적 요소로 쓰이는 왕과 왕실이 이 나라에선 현실로 존재한다. 그리고 태국 국민들은 왕과 왕실을 무척이나 존경하는데 이는 생활 면면에서 드러난다. 로컬 카페의 천장이나 벽, 장식 테이블 위에 놓인 액자들만 봐도 태국 사람들이 왕과 왕실을 얼마나 가까이서 느끼고 존중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식당, 상점, 심지어 가정집까지 어디서든 왕과 왕실의 사진이나 그림을 볼 수 있다. 이 같은 그림과 사진들은 하나하나 예술작품으로도 손색이 없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왕의 사진이나 그림이니 얼마나 정성 들여 찍었겠는가.


생활공간 곳곳에 놓여있는 왕과 왕실 그림 외에도, 태국 왕은 일상 속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먼저 지폐와 동전 속 인물은 모두 왕이다. 새롭게 찍어낸 지폐와 동전에는 현재 국왕인 라마 10세의 얼굴이 새겨져, 현재로선 라마 9세와 10세의 두 얼굴을 모두 볼 수 있다. 누구나 떨어뜨린 동전이 굴러갈 때 당연히 발이 먼저 나가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태국에서는 금기사항이다. 제일 작은 화폐 단위인 25사땅(약 10원)에도 왕의 얼굴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태국에서는 왕의 얼굴을 밟는 것뿐만 아니라 왕과 왕실에 대해 불경한 언사를 하는 것도 왕실 모독죄로 형법에 의해 처벌될 수 있는 위험한 행위다. 이에 따라 일부 진보학자나 대학생들 사이에서 표현의 자유를 막는 왕실 모독죄 형법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대다수 국민들에게 크게 힘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그만큼 태국인들 마음속에는 왕실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크게 뿌리내리고 있다.


태국의 ‘왕이 있는 민주주의’가 이방인으로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지만, 생활공간 가까이에 늘 왕과 왕실의 사진과 그림을 두고 두 손을 가슴 가까이 모아 인사하는 태국 사람들을 보면 이들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왕실의 존재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태국 국민들의 생활을 유지하게 하는 정신적 기반이 된다. 인류의 자유를 외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그들의 태도가 틀리다고 할 수는 없다. 오늘따라 왕의 사진을 보고 미소 짓는 태국 사람들의 얼굴이 더욱 경건해 보인다


우다정(브런치 작가)


미국인 남편과 함께 태국 방콕에서 3년 차 이방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관찰자로, 여행자로, 때론 이웃 주민으로 태국에서 일상의 즐거움과 새로움을 찾고 있으며, 다양한 이야기를 브런치와 블로그에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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