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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일기가 내게 준 선물 2020년 5월호
 
행복일기가 내게 준 선물

2017년부터 내 일기장의 이름은 ‘행복일기’다. 그때는 샘터를 구독하지 않았을 때인데 왜 그렇게 정하게 됐을까?


나는 국민학교 때부터 꾸준히 일기를 써왔다. 과거 일기장을 들춰 지난 일들을 들여다보노라면 즐거운 일보다 지울 수 없는 아픔이 더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 행복했던 젊은 날은 어디가고 차마 떠올리기조차 힘든 일만 적혀 있었다. 스스로 반성하며 그날부터 나는 ‘행복일기’라 이름 붙이고 재미있고 행복한 일만 적겠다는 결심을 실천에 옮겼다.


아흔이 넘은 시부모님을 모시는 일은 참으로 힘겨웠다. 교직도 내려놓고 건강이 좋지 않은 시부모님을 직접 모시겠다고 나섰지만 한 지붕 아래 함께 살게 되면서 겪는 생활 방식의 차이와 심적 갈등은 감당하기 버거웠다. 그럴 때 행복일기가 큰 위안이 돼주었다. 힘들면 힘들수록 돋보기로 조그만 옥구슬을 찾듯 행복을 골라 쓰는 일기는 노인이 노인을 보살피는 ‘노노가정’의 문제를 헤쳐나갈 수 있는 내성을 길러 주었다. 행복일기의 소재를 찾다보니 긍정의 눈도 생겼다.


새벽에 물 마시러 나왔다가 설거지거리도 없는 통에 물을 가득 담아놓는 시어머니 때문에 한동안 속을 끓인 적이 있었다. “어머니, 그렇게 하면 물때가 생겨 좋지 않아요.” 여러 번 말씀을 드려도 소용없었다. 나중에야 그것이 가정의 안녕과 번영을 바라는 정화수인 것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이야기도 일기장에 적었다.


어느덧 칠십을 바라보는 내가 아흔 중반의 노인들을 모시는 것은 확실히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넓고 깊은 체험을 하며 인생의 바다를 건너고 있다. 아직까지 고아가 아니라는, 어리광을 필 수 있는 시부모님이 계신다는 기쁨도 누리고 있다.


신혜숙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2013년 퇴직하고 7년째 시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60대 주부입니다. 몸은 고되지만 행복을 꿈꾸는 ‘노노가정’의 외며느리로 행복일기를 쓸 때가 하루 중 제일 감사합니다. 행복을 널리 나눠 주는 글쟁이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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