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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온 침묵의 봄 2020년 5월호
 
다시 찾아온 침묵의 봄

만개하는 꽃의 계절에 차단과 격리의 시간이 이어지고 있다. 신종 바이러스라는 보이지 않는 존재와 대면하며 사회 곳곳이 땅거미 젖어들 듯 암울하게 폐쇄되어 가고 있다.


미증유의 사태로 불리는 2020년 봄의 광경이 과거에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비록 사태의 규모는 다를지라도 집단과 개인이 받는 충격의 강도와 파장, 거기서 노출되는 인간본능은 상당히 유사하다. 100년 전 여름의 서울 풍경도 그 중 하나이다. 두 해 동안 세계 곳곳을 초토화시킨 스페인 독감의 여진이 한반도에서 겨우 가라앉나 싶던 1920년 8월 중순의 일이다. 무더위의 끝물에 사람들은 또 하나의 새로운 전염병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여름이면 창궐하는 콜레라였다.


당시로서는 높은 치사율로 공포의 대상이었던 콜레라가 발생할 때마다 제1의 과제는 확산 차단이었다. 확진자 누계가 순식간에 8천 명을 바라보고 그중 2천 명 이상이 숨졌던 그때, 환자들은 증상이 확인되는 즉시 격리 수용되었다. 아침에 보았던 이웃이 저녁이면 격리 수용소나 묘지에 가고 없다는 말이 나돌던 때였다.


괴질로 뒤덮여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던 서울 도심 한복판, 지금의 종로4가 대로변에서 어느 날 큰 소동이 벌어졌다. 추가확진자로 판명된 인근 주민이 격리병원으로 호송되는 길이었다. 들것에 실어 운송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그는 한사코 거부하며 걸어서 가겠다고 고집했다. 아마 연일 환자 이송에 사용된 들것에 몸을 싣는다는 것이 꺼림칙했을 수도 있고, 중환자로 낙인 찍히는 것 자체가 싫었을 수도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수용소에 격리되면 다시 못 돌아온다는 인식이 팽배했던 때라 할 수만 있다면 격리는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걸어가면 주변에 병균을 전파할 수 있다고 타이르고 야단쳐도 소용없었다. 실랑이가 멈출 줄 모르자 서서히 군중이 모여들었다. 순식간에 수백 명으로 불어난 인파는 집단으로 동조 항의를 벌였다. “생사람을 들것에 담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가지 마라” “죽어도 들것에는 타지 말아라” 하는 함성과 함께. 자칫 폭동 양상마저 보이자 관계자들은 결국 환자 이송을 포기했다. 그날의 소란에 대해 신문은 이렇게 논평했다. ‘격리 수용소의 시설과 처우가 열악하기도 하지만, 대중의 전염병에 대한 인식 부족도 있다.’


이 에피소드를 4년 전 한 일간지에 기고한 적이 있다. 메르스 사태가 종식된 이후였다. 100년 전과 5년 전, 그리고 지금, 집단 전염 사태에 대응하는 개인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인식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할 수도 있고, 여전히 본능이 잠복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마스크 문제도 그렇다. 1920년 이후 신문에는 마스크 착용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기사가 수시로 게재됐는데 의사들이 되풀이하여 지적하는 점이 이런 내용이었다.


‘우리나라 풍속에는 가족 간에 전염병이 있으면 피하려고도 않고, 병이 옮지 않도록 소독한다 하면 환자가 싫어한다. 병자 스스로 건강한 사람으로부터 피하여야 할 텐데 그러지 않으려 한다. 환자가 피하려 아니하니까 주변 사람들은 더욱 환자를 멀리 할 수가 없게 되어 결국 전염되는 것이다. 참 딱한 노릇이다.’


다행히 이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공적 캠페인으로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차단과 격리, 이 불편한 일을 자발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또 하나의 새로운 사회적 책무로 설정되고 있는 2020년 봄이다. 스스로 차단하고 격리하는 자세야말로 이웃과 공존하는 길임을, 개개인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 서로가 공생할 수 있음을 비상시국은 가르쳐준다. 차량 사이에도 안전거리가 필요하듯 사람 사이에도 일정한 거리를 둘 때 개인과 사회의 건강이 오래 지속된다.


박윤석(역사저술가)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사에서 20여 년간 기자로 일했습니다. 《경성 모던타임스》를 통해 한국의 근대사를 조망한 이래 역사강의를 하며 한국 근현대사에 새로운 시각을 부여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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