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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에 깃든 이야기
겨울 이불 같은 추억 2019년 12월호
 
겨울 이불 같은 추억

엄마가 되고 난 뒤 잠결에도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 있으니 바로 아이가 걷어찬 이불을 덮어주는 것이다. 하룻밤 사이에 적어도 두세 번은 깨서 이불을 제대로 덮어준다. 나도 잘 모르겠다. 내게 어떤 센서가 달려있어 한밤중에 아이가 이불 밖으로 밀려났음을 감지하는지.


으슬으슬한 새벽 기운에 깨어나 이불이 밀려나 있음을 알아채는 건 내 몸이 느끼는 감각이니 그렇다 쳐도 아이가 이불을 덮지 않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아는 걸까. 단 하나 확실한 건 아빠에게는 그 센서가 없다는 것. 오로지 엄마에게만 작동하는 ‘이불 센서’다.


바야흐로 겨울 이불을 꺼내야 할 시기다. 리넨 침구를 언제쯤 겨울 이불로 바꿔야 하나 때를 보고 있었는데, 며칠 전 계절성 비염으로 콧물이 주르륵 흐르던 날, 지금이구나 싶어 장롱에서 두꺼운 이불을 꺼냈다.



장롱에서 꺼낸 이불을 침대 위에 펼치자 아이는 다이빙하듯 제 몸을 날린다. 그러면서 연신 ‘아이 좋아, 폭신폭신해’라고 기분 좋은 웃음을 짓는다. 그 기분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나 또한 어릴 때 엄마가 이불을 빨아서 바닥에 까는 요 위에 펼쳐두면 그게 그렇게 좋아 그 위를 데구루루 구르곤 했다. 엄마는 이불 솜 꺼진다고 그만 내려오라고 했지만 언니와 나는 구르기를 멈출 수 없었다. 이불 위로 다이빙하기를 여러 번, 놀 만큼 논 아이는 그제야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잘 준비를 한다.

 


이즈음이 되면 각종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겨울 이불을 판매하는 기획전을 준비한다. 간절기 이불부터 시작해 겨울 이불로 넘어갈 즈음에는 구스 이불 같은 기능성 침구를 비롯해 보온 장판 등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각종 아이템을 판매한다. 몇 해 전 겨울 이불을 판매하는 기획안을 작성하는데 평범하게 ‘따뜻하다’라는 표현만으로는 카피를 쓰기 싫어서 어떻게 쓸까 궁리하다가 이불을 사람에 빗대어 소개하기로 했다. 두툼하고 무게감이 있는 이불을 목까지 덮고 나면 가슴 위로 전해지는 묵직함이 꼭 바람을 철벽 방어하는 듬직한 사람 같다는 표현이었다. ‘듬직하고 반듯하여 때론 포근한 당신은 겨울 이불 같습니다. 겉은 차가워도 속은 충분히 따뜻하거든요.’


어릴 적 겨울 방학에 엄마가 일주일씩 외할머니 댁에 보내곤 했는데 그때 할머니가 자개장롱에서 보료 같은 두꺼운 이불을 바닥에 툭 펼치시면 겉은 차가 운데 그 안으로 쏙 들어가면 금세 몸이 훈훈해졌던 기억이 난다. 부드럽고 윤기가 나는 비단의 촉감과 두꺼운 무게감이 묘하게 매력적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바닥에 깐 요를 한 번 두 번 세 번 접은 뒤 차마 무거워서 장롱에 넣진 못하고 그 옆에 밀어두면 나중에 할머니가 ‘으쌰’ 하고 소리를 내며 장롱에 넣으셨다.


지금은 침대가 있어서 바닥에 까는 요를 쓸 일이 아예 없지만 처음 아이를 낳고 한동안은 작은 방에서 아이와 함께 바닥 생활을 하느라 작은 방에 요를 깔고 잤다. 육아에 지쳐 몸 여기저기가 찌뿌둥할 때 보일러 온도를 높이고 바닥과 요 사이에 몸을 밀어 넣으면 ‘으으’ 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그런 개운한 맛은 침대에선 절대 느낄 수 없다.


아이가 아주 갓난아이일 때부터 지금까지 난 아이 옆에서 잠을 잔다. 이불 속에서 아이의 발을 찾아 손을 더듬거린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발을 조몰락거리면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곤 한다. 아이가 커갈수록 발뒤꿈치가 단단해지는 걸 손으로 감각한다. 이젠 내 손바닥만큼 자란 발 크기가 낯설기도 하지만 여전히 부드러운 아이의 발을 이불 속에서 만지고 있자면 이게 남들이 말하는 그 ‘소확행’이지 싶다.


쌀쌀해진 겨울 밤, 머리부터 발끝까지 포근하게 덮을 수 있는 이불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오늘도 주섬주섬 이불 끝을 찾아 아이 몸에 덮는다. 덮어주면 얼마 뒤 발로 차기를 반복하지만 엄마의 이불 센서는 밤새 꺼지지 않을 예정이다.


이유미


8년 넘게 총괄카피라이터로 일했던 ‘29CM’을 얼마 전 퇴사한 후 작은 책방을 열기 위한 새로운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글쓰기 모임과 카피라이팅 강의, 브런치에 연재 중인 ‘소설로 카피 쓰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에세이집 《잊지 않고 남겨두길 잘했어》《문장수집생활》 등을 통하여 젊은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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