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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부엌 수업
짭쪼름하고 달짝지근한 인생의 맛 2019년 12월호
 
짭쪼름하고 달짝지근한 인생의 맛

 

경남 진주가 고향인 김숙희(65) 할머니는 아버지의 직장이었던 미군부대가 있는 포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건포도약밥을 간식으로 내놓았다. 약밥은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달짝지근한 맛에 온갖 영양소가 골고루 담긴 건강 간식이었다. 그녀에게 건포도약밥은 풍족하고 다복했던 유년시절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맛이다.


“아버지는 부인에게 자상하고 자식들에게 애정이 각별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는데 충격이 컸죠. 대농 집안이라 부유했어도 가장이 없으니 재산이 야금야금 흩어지더군요.”


친정엄마는 가족에게 남은 전재산이었던 방이 7개 있는 집에서 하숙을 치며 사남매를 길렀다. 위로 한 학년 차이 나는 오빠가 있었지만 엄마가 의지하는 사람은 그녀였다. 엄마는 12살이었던 장녀 앞에서 자주 울었다. 그런 엄마 앞에서 그녀는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그녀 역시 누구보다 그 빈자리를 크게 느꼈다. 미군부대에서 근무했던 친정아버지는 어린 그녀에게 가정교사를 붙여줄 정도로 지적 성장을 적극 지지하던 분이었다. 유년시절에 경험한 아버지의 사랑 때문이었을까. 생전 처음 겪는 가난이 찾아와 하숙생들이 남긴 누룽지에 콩나물을 넣어 먹는 시절에도 그녀는 구김살 없는 당당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가난했지만 창피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빠듯한 살림 탓에 엄마로부터 중학교에 보내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재봉틀 아래서 며칠 울다가 대학생이던 막내 삼촌에게 편지를 썼어요. 이번 한 번만 등록금을 내주시면 나중에 꼭 갚겠다고요.” 막내 삼촌은 그런 그녀가 기특했는지 집으로 찾아와 ‘삼춘이 아니라 삼촌이 맞는 거란다’ 하고 웃으며 선뜻 중학교 등록금을 쥐어주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포천에서 하숙을 하는 엄마 곁에서 지내며 부기와 주산을 배울 수 있는 학원에 다녔다. 3개월 정도 다녔을 때 다니던 학원의 사무 업무를 봐 달라는 제안을 시작으로 강사 제의가 들어왔고 끝내는 그 학원을 인수해서 운영까지 맡았다. 그녀 나이 스물두 살 때의 일이다. 야무지고 당찬 그녀였기에 돕는 손길은 때마다 나타났다. 그리고 스물여섯 살 1월, 결혼을 했다.


 

깊고 짭쪼름한 고향의 위로


“남편은 저희 하숙집에 살고 있던 갓 부임한 선생님이었어요. 저와 남편 모두 테니스를 좋아해서 새벽이면 근처 테니스장으로 운동을 하러 다녔지요. 저보다 9살이나 많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당연히 운동 친구로만 생각했어요.”


중등교사인 남편은 콩 심은 곳에는 반드시 콩만 나는 줄 아는 성격인데 그녀는 콩 심은 데 팥이 나도 똑같은 곡식이니 괜찮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렇게 다른 성격의 두 사람이 만나 1남 1녀를 낳고 40년째 살고 있다. 결혼 초에는 개인교습을 하던 그녀의 벌이가 남편보다 더 좋았지만 교습소 운영 대신 취미로 꽃을 만지기 시작하며 돈보다 자신의 행복을 더 중시하며 살았다. 서른 무렵부터 시작한 꽃꽂이는 여전히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활동이다.


달마다 남편이 가져다주는 월급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하던 그녀에게 결국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그녀 나이 마흔 여덟 살 때였다. “여동생과 오빠가 사업을 했는데 부도가 났어요. 저도 많이 도와줬기 때문에 여파가 컸죠. 그때 한 3년 정도 차에서 지내며 노점에서 계란을 팔았어요. 교직에 있던 남편에게만은 절대 피해가 안 가게 하자는 심정이었죠.” 가장 어려웠던 그때 온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지내야만 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당시의 절박했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하루하루 이를 악물고 버틴 날들이었다. 그렇게 7년 정도 계란을 팔아 대부분의 빚을 청산했다. 그나마 이만큼의 안정을 지킬 수 있던 건 어려서부터 당차고 야무지게 문제를 해결해갔던 그녀의 수완과 낙천적인 성격 덕분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어릴 적 먹었던 진물말이국수에 담긴 추억이 고된 날들 속에서 그녀를 가장 든든히 지탱해주었다. 진물말이국수는 면을 따로 삶지 않고 바로 멸치 육수에 넣고 끓여 짭쪼름한 맛이 곱절이 된 경상도식 국수다. 친할머니는 새벽마다 국수를 삶아 소주 한 잔과 함께 드셨다. 그때마다 그녀는 할머니 곁에서 국수를 먹었다. 벌써 60년도 더 된 일이지만 뽀얀 얼굴에 술기운이 불그레하게 올라온 할머니가 그렇게 예뻐 보이실 수가 없었다.


그녀는 바쁜 와중에도 곧잘 진물말이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손쉽게 만들 수 있기도 하고 한 그릇 후루룩 먹으면 속이 금세 든든해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친할머니의 조리법에 그녀만의 방식으로 원하는 고명을 넣어 다양하게 만들어 먹는다. 남편 역시 경상도 사람이라 기억하는 고향의 맛이 비슷해 함께 즐겨 먹는 일상 요리이기도 하다.


 

 

그녀는 현재 정년퇴임 후 노인대학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남편과 의정부에서 둘이 살고 있다. 태풍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오랫동안 좋아했던 꽃과 식물을 돌보며 더 단단한 일상을 엮어나갈 참이다. 때마침 기회가 닿아 근처 평생교육관에서 청소년과 성인 대상의 꽃꽂이 강습을 무료로 진행 하고 있다. 수강생들을 만나러 갈 때마다 그녀가 잊지 않고 챙기는 간식은 친정엄마가 해주시던 건포도약밥이다. 출출할 때마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영양이 듬뿍 들어있는 건포도약밥을 하나씩 꺼내 먹으며 일상을 꾸려갈 힘을 얻는다.


행복한 유년 시절에 맛보았던 짭조름한 진물말이국수와 달짝지근한 건포도 약밥. 그 뿌리 깊은 고향의 맛 덕분에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끝내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모든 꽃은 흔들리며 피기 마련이다.


글 이수진 기자 사진 최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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