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궁리
행복일기
샘터시조
 

 

Home > 월간샘터 > 이달의샘터
[특집] 올해 가장 잘한 일, 못한 일!
호박보다 탐스런 엄마의 말들 2019년 12월호
 
호박보다 탐스런 엄마의 말들

올봄, 작은 텃밭에 심을 종자를 고민하다 엄마의 조언대로 노란호박 모종을 심었더니 여름 무렵 예쁜 호박들이 자태를 드러냈다. 엄마는 여름 내내 호박을 보며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난다고 했다. 아마 호박 모종이 막 싹을 틔울 때 부터였던 것 같다. 엄마가 웬만한 시인도 생각 못할 예쁜 말과 표현으로 내 마음을 흔들어놓기 시작한 게!


처음엔 무심코 흘려듣기만 했는데, 엄마의 말들은 호박보다 더 탐스럽게 익어 내 기억의 창고에 그득하게 쌓여갔다. 팔순을 바라보는 노모가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보석처럼 아름다웠다. 엄마는 날이 가물어 옆으로 넘어진 오이 모종을 보고 “저것은 왜 술 먹고 비틀거리는 놈처럼 자빠졌다냐?” 하고 안쓰러워하고, 호박모종에 싹이 날 때는 “야야, 콩나물 두 쪽 머리처럼 나온 떡잎 봐라” 하며 기특해 하셨다.


덕분에 내 귀와 손도 바빠졌다. 엄마의 예쁜 말들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엄마가 하는 얘기들을 노트에 옮겨 적게 되었다. “엄마가 하는 말, 모두 적었다가 책으로 만들었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에 “그러던가. 내 얘기만 써도 그만한 드라마가 없을 거다” 하고 빙긋 웃으시는 우리 엄마를 보니 기분이 좋다.


요즘 나는 엄마의 말 씨앗을 모아서 매주 한 편 이상 소소한 에세이를 써나가는 중이다. 엄마에게는 순천의 평범한 할머니들이 직접 써 화제가 된 그림일기 한 권을 사드리며 내가 구상하고 있는 원대한 꿈을 말씀드렸다. 엄마가 구술하고, 글은 내가 정리하고, 손녀가 직접 그림을 그려 삼대가 함께 당신의 팔십 평생을 담은 책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그보다 앞서 3년 남은 엄마의 팔순 잔치에 엄마의 예쁜 말들을 모아 시집 한 권을 펴내고 싶다. 엄마의 예쁜 말들을 글로 옮기기 시작한 게 올해 내가 가장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향숙


전북 군산에서 남편, 두 아이와 살고 있는 56살의 영어강사입니다. 3년 후 친정어머니의 팔순 때 제 손으로 책 한 권 내드리고 싶어 열심히 ‘엄마 얘기’를 그러모으고 있습니다. 책과 음악을 좋아하며, 은퇴하면 지역사회에 기부할 작은 도서관을 지어 노년을 더 향기롭게 보내고 싶습니다.

 
[다음글] 시련을 통해 단단해지는 꿈
[이전글] 뷰티풀, 마이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