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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가 필요한 당신에게 시 한 편을
12월의 반성문 2019년 12월호
 
12월의 반성문

언제 어디서나 먼저 사랑해야 한다고 수없이 듣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먼저 사랑하기보다 사랑에 대해서 말만 많이 하고

남에게 사랑을 요구하는 일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가족 친지들의 실수나 잘못을 넓은 마음으로 용서해야 한다고 습관처럼

강조하면서도

정작 저 자신은 사소한 일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했음을

정작 저 용서하십시오.



남에겐 명랑하고 기쁘게 살아야 한다고 조언 하면서도

저 자신은 자주 어둡고 우울한 표정으로 주변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었음을

용서하십시오.



귀로만 아니고 마음으로 영혼으로 정성껏 잘 듣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수없이 말해오면서도

정작 저 자신은 남의 말을 건성으로 들어 핵심을 놓치고

엉뚱하게 해석하는 실수를 저질렀음을 용서하십시오.



이웃을 대할 땐 개성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름을 수용하며

늘 배우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다름을 못마땅해 하거나

비난하는 편협함으로 스스로를 소외시켰음을 용서하십시오.



진정 침묵해야 할 땐 말을 많이 하고 꼭 말을 해야 할 땐 침묵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사실이나 헛소문을 전하는 등

언어 관리를 슬기롭게 하지 못한 저를 용서하십시오.



언제나 고운 말을 해야 한다고 되뇌고

그렇게 다짐을 하고서도 이내 잊어버리고

화가 나면 극단적인 말들을 쏟아내며

때로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음을 용서하십시오.



살아오면서 감사한 일들이 많았으나 그 감사를 깊이 되새김하지 못하고

충분히 표현을 못한 채 건성으로 지나친 적이 많았음을 용서하십시오.



마음만 먹으면 조금이라도 구체적으로 배려하고 도울 수 있는데도

이웃의 아픔과 슬픔을 모른 척 하거나 슬쩍 비켜간

저의 차가운 무관심과 이기심을 용서하십시오.



기도해달라는 부탁을 그토록 많이 받고 많이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의 게으름과 불충실로 그 약속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음을 용서하십시오.



한 해가 저물고 또 한 번의 새로운 한 해가 다가오는데

저는 진정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요.

나라까지 어수선하니 제 마음 또한 어지럽고 평화가 없어 괴롭습니다.

사람들을 신뢰하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해 한참을 망설이게 됩니다.



오늘도 어제처럼 하늘을 바라보며

겸손히 두 손 모으는 저를 가엾이 여겨주십시오.



해와 달과 별과 사람들을 가슴에 안고

다시 길을 가겠다고 다짐하는 저를 어여삐 여겨주십시오.



살아서 다시 쓰는 이 부족한 반성문을

기도로 봉헌하며 다시 살아보겠다고

오늘은 겨울나무로 서있는 저를 축복하여 주십시오.

 

 

아름다운 시어로 일상의 위안을 전해주던 ‘위로가 필요한 당신에게 시 한 편을’은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사랑 가득한 글로 지면을 빛내주신 수녀님께 감사드리며, 다시 만날 수 있길 소망해 봅니다.


이해인


부산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수녀회에서 몸담으며 수도자의 삶과 작가의 길 속에서 기쁨을 찾는 수녀 시인입니다. 1976년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출간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다수의 시집과 산문집 《꽃이 지고나면 잎이 보이듯이》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기다리는 행복》 등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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