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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부엌 수업
감나무처럼 내어주며 살아온 팔십년 세월 2019년 10월호
 
감나무처럼 내어주며 살아온 팔십년 세월

 

그 시간 모처럼의 손님맞이에 분주한 정길년 할머니(80)의 부엌에서는 무럭무럭 김을 뿜어내는 다슬기된장국이 맛있게 끓고 있다. 지역에 따라 물고둥, 올 갱이, 대사리, 사고디라고도 불리는 다슬기는 해독작용이 탁월하고 간에도 좋다고 알려져 새삼 보양식 대접을 받는 식재료. 보통은 궁합이 잘 맞는 부추를 넣어 끓이는데 할머니는 유난히 배추를 즐기던 남편 식성에 따라 배추를 더 선호한다. 여기에다 껍질을 깐 들깨가루를 넣어 다슬기 특유의 씁쓸한 맛을 줄이 고 구수함을 더하면 할머니표 다슬기된장국이 완성된다. 조리법은 간단하지만 다슬기를 하나하나 까려면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다. 요즘은 장에 가서 손질해 놓은 거 사서 쉽게 끓인다며 멋쩍게 웃으신다.


할머니가 어릴 때 다니던 학교길가 맑은 도랑에는 비라도 지나고 가면 다슬 기가 지천이었다. “우리 고향에서는 꼴부리라고 부르는데 해질녘 물가에 가면 천지여서 양동이 들고 가서 정신없이 주워 담았어요. 까서 먹을라치면 자꾸 당 겨서 손은 더디고 입에 넣기도 바빴지요. 이맘때가 딱 제철이에요.” 흐르는 개울이나 깨끗한 하천에서만 서식하는 다슬기가 많았던 할머니의 고향 경북 청송은 산 좋고 물 좋은 산골이었다. 열한 살에 어머니를, 열일곱에 아버지까지 여읜 그녀가 여태까지 객지에서 씩씩하게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공기 좋은 데 살아서 건강한 덕분이라고 믿는다.


45년 전부터 의정부에서 뿌리내리고 살던 할머니 내외가 인척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강원도 철원까지 오게 된 것도 순전히 맑은 공기 하나 보고 결정한 선택이었다. 서울 원자력병원에서 폐암 수술을 받은 남편은 더 이상 입원해 있는 것도 거부했고 의사 말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사람은 다 죽기 마련인데 괜한 기대를 거는 것도 욕심이라며 그저 공기 좋은 데 가서 요양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남편 고집을 말리지 못한 할머니가 하는 수 없이 수소문해서 급하게 찾은 데가 이곳 강원도 골짜기였다. “산 공기 마시면 폐암에 좋다고 해서 왔는데 병원도 없는 이 산골에 어째 왔는지 몰라요. 살려 보려고 애썼는데 약도 안 드시고 3년 투병한 끝에 의정부 집 팔고 여기 온지 두 달 만에 돌아가셨지요.”


 

 

스물두 살에 만난 동향의 남편은 부모 없이 오빠 슬하에 자라면서 채워지지 않던 그녀의 허전함을 보듬어줄 만큼 마음이 깊었다. 비록 가진 것은 없었지만 심성이 착하고 성실했던 남편이 건축업자로 자수성가한 덕분에 할머니는 큰 고생 없이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다. 대신 그녀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남편의 점심을 손수 챙기며 뒷바라지 했다. 커다란 밥통에 열다섯 명에서 스무 명 일꾼들의 밥을 해서 푸고, 이것저것 반찬을 해다가 현장에서 뜨끈뜨끈하게 끓여주 면 다들 여느 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맛있다며 칭찬이 자자했다. 건설현장에 밥 을 나르며 내조하던 솜씨 덕분에 할머니는 어지간한 손님치레도 어려워하지 않는다.


오랜만에 손님을 치르는 오늘도 할머니는 남편이 즐기던 아삭아삭한 배추겉절이와 나물반찬을 차렸다. 그리고도 산골마을까지 찾아온 손님대접이 빈약하게 느껴지는지 잠깐 사이에 감자 닭볶음탕과 갈치조림까지 뚝딱해서 내놓는다.



공기 좋은 곳 찾아 자리잡은 새 보금자리

“여기는 우리 아들이고, 딸 넷에 손자가 열두 명이에요. 저 손녀가 올 연말에 시집 갈 날을 잡았지 뭐예요.” 환갑 때 찍은 사진에 담긴 정길년 할머니 가족의 다복한 모습. 할머니는 한 명 한 명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자랑한다. 오 남매를 모두 대학 보낼 정도로 할머니는 자식들 공부에 열성이었다. 석사학위까지 마 친 막내가 학위 논문을 내밀었을 때는 노동일 하는 남편 덕분에 끝까지 공부시킬 수 있었던 게 감사해 눈물이 핑 돌았다. 이제 자식들은 모두 제자리 잡고 살 게 됐지만 한편으로 돌이켜보면 혼자 너무 고생시킨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 다. “기술도 없이 객지 나와서 등짐지고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던 때부터 건축현장에서 고생을 너무 많이 했어요. 애들 공부시키겠다는 내 욕심에 그렇게 빨리 갔나 싶어 뒤늦게 미안했지요.”

투병 중인 남편과 함께 온지가 엊그제 같은데 이곳 철원에 자리 잡은 지도 벌 써 10년째. 할머니는 이곳에 와서 젊어서는 손도 대지 않았던 연탄을 때고, 호 미로 밭을 매는 농사일도 하게 되었다. 400평이나 되는 제법 넓은 밭이라 혼자 농사짓기에 버겁기는 하지만 집 뒤꼍에 바로 붙어 있어서 그나마 수월하다. 고 추와 배추를 비롯해 부추, 강낭콩이며 어지간한 채소들을 직접 심으니 풍성하다. 아들은 외딴 산골에 혼자 지내는 어머니가 걱정돼 매일 안부전화를 챙기며 노심초사지만, 그녀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고추 따고, 배추 자라는 거 보는 걸 생활의 낙으로 여기며 평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나이 들어 모두들 공기 좋은 데 찾아가는데 살아보니까 여기가 딱 그런 곳이더라구요. 동네 인심도 푸근해서 또래 이웃들과 정을 나누며 살고 있으니 마 음이 편안해요. 가만있기 심심해 노인일자리도 신청해 일주일에 세 번 경로당 청소도 하면서 돕고 있어요.” 그녀는 매주 주말마다 버스를 세 번 갈아타면서 의정부에 있는 교회까지 오고간다. 40년 전 교회 건물을 세울 때부터 앞장서서 힘을 보탰던 곳이라 여전히 적을 두고 다닌다. 가고 싶은 교회를 다닐 정도로 아직 건강하고 공기 좋은 곳에서 힘에 부치지 않을 만큼 소박한 농사를 지으면 서 사는 삶이 어느 때보다 편안하다.

그녀는 언젠가 어릴 적 뛰놀던 청송 시골집 뒷마당의 감나무 둥치를 꼭 껴안아 보았다. 탐스런 대봉이 주렁주렁 열리던 그 감나무 아래서 온 가족이 오순도순 홍시를 나눠먹으며 얘기꽃을 피우던 시절이 그리워지는 건 왜일까. 이제 는 고목이 되어 작은 감 몇 개를 겨우 매달고 있지만 어려웠던 그 시절, 넉넉함 을 내어주던 고마운 감나무 아래에 서니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는 할머니. 노쇠 한 감나무처럼 힘닿는 데까지 자식들에게 내어주고 성실히 채우며 살아온 팔 십 세월, 가만히 돌아보니 주어진 부모로서의 삶을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 싶어 감사한 마음뿐이다.


글 김 정 희 기 자 | 사 진 최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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