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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게 길을 묻다
바람에 맞서 부둥켜안고 살아온 나무 2019년 10월호
 
바람에 맞서 부둥켜안고 살아온 나무

 

 

여기까지 오는 데 1억 5천만 년이 걸렸다. 거대 짐승 공룡에게 이파리와 열매를 먹을거리로 내어주면서 삶을 시작한 메타세쿼이아(Metasequoia)다. 키 큰 짐승에게 짓밟히지 않으려고 나무는 하늘 높이 가지를 뻗어 올렸다. 고깔 모양으로 높이 솟은 나무는 거대 짐승의 공격을 피하기에 알맞춤했지만, 불어오는 큰 바람에 하릴없이 쓰러질 운명이었다. 나무는 언제나 끊이지 않는 시름으로 속을 태우며 긴 세월을 살았다.


그리고 나무는 마침내 알았다. 다른 나무들처럼 뿌리를 땅 속 깊이 내리기보다는 옆으로 멀리 뻗어내야 바람을 버텨내기에 더 유리하다는 것을…. 땅 속 깊이 내려가는 속도보다 옆으로 뻗는 속도를 재우쳤다. 아래로 1미터쯤 뿌리를 내리는 동안 옆으로는 10미터를 뻗었다. 옆으로 멀리 뻗으며 나무는 땅 속 깊은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다른 나무의 뿌리를 찾았다. 서로의 뿌리를 부여잡고, 불어오는 큰 바람과 태풍을 이겨냈다.


메타세쿼이아는 빙하기도 이겨내며 살아온 강인한 나무지만, 4천만 년 전쯤에 지구상에서 사라진 멸종식물로 여겨졌다. 세쿼이아와 비슷하지만 그보다 훨씬 전에 살던 나무라는 생각에서 ‘메타세쿼이아’라고 지은 이름만 남았다. 메타세쿼이아가 다시 사람의 마을로 돌아온 건 1946년 중국 양쯔강 상류에서 딱 한 그루의 살아있는 메타세쿼이아를 발견하면서부터였다. 지금 세계적으로 키우는 모든 메타세쿼이아는 그때 그 한 그루의 나무에서 시작됐다.


메타세쿼이아의 화석은 동아시아 지역과 알래스카에서만 발견된다. 생경한 이름 때문에 서양의 나무로 여기기 십상이지만, 우리의 포항 지역에서도 메타세쿼이아의 화석이 발견된 바 있다. 우리의 나무라 해도 문제 될 게 없다는 결정적 증거다.


다시 이 땅에 가을바람 불어온다. 누구의 손이라도 부여잡고 바람 부는 거리에 나서야 할 시간이다. 메타세쿼이아처럼 허리를 곧게 펴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더 당당하게!


고규홍


나무에 담긴 사람살이의 향기를 찾아다니는 나무 칼럼니스트입니다. 《중앙일보》에서 12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한 뒤, 1999년부터 이 땅의 나무를 찾아 사진과 글로 전하고 있습니다. 천리포수목원의 이사이며, 인하대학교 겸임교수이기도 합니다. 《이 땅의 큰 나무》 《나무가 말하였네》 《도시의 나무 산책기》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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