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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나이 차를 극복한 우정
그리운 비밀 친구 ‘귀신 할배’ 2019년 10월호
 
그리운 비밀 친구 ‘귀신 할배’

어릴 적 우리 동네엔 허름한 고택이 하나 있었다. 기다란 골목 안쪽에 있던 그 집의 주인은 나무처럼 키가 큰 백발의 할아버지였는데, 동네 아이들은 그를 ‘귀신 할배’라고 부르며 피해 다녔다. 귀신 할배는 동네 사람 누구와도 잘 어울 리려 하지 않아 어른들도 그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당시 친구들 사이에선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가는 놀이가 유행이었는 데 어느 날 가위바위보에서 진 내가 귀신 할배집 초인종을 누르고 말았다. 친구 들은 모두 달아났지만 너무 긴장한 나머지 나는 다리가 꼬여 대문 앞에 넘어져 할배가 나올 때까지 일어나지를 못했다. 엉엉 울고 있는 나를 발견한 귀신 할배 는 구급상자를 들고 나와 상처를 치료해주고는 말없이 집으로 들어가셨다.


“늦은 밤에 혼자 여기서 뭐하니?” 얼마 뒤 일터에서 늦게 돌아오는 엄마를 기 다리며 밖에 나와 쪼그려 앉아 있던 내게 할배가 말을 걸어왔다. “엄마 기다려 요.” “밥은 먹었니?” “아니요.” 귀신 할배를 따라 들어간 고택에는 흉측한 괴물 도, 귀신도 없었다. 오히려 따뜻한 조명과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오래된 집이 왠 지 모르게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그 후로 귀신 할배는 나의 비밀 친구가 되었다. 엄마와 단둘이 살던 내가 안 쓰러웠는지 할배는 항상 내 숙제와 저녁을 챙겨 주었고, 나 혼자라도 밥을 차려 먹을 수 있어야 한다며 요리하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얼마 뒤 귀신 할배는 가 족이 기다리고 있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됐다고 했다.


며칠 후 학교에서 돌아오니 현관 문에 커다란 봉지가 걸려 있었다. 과자와 학 용품 등을 가득 담은 할배의 작별 선물이었다. ‘꼬마친구에게. 할아버지 없어도 밥 잘 챙겨먹고. 착하고 건강하게 자라거라.’ 문 틈 사이에 끼워져 있던 쪽지를 볼 때마다 하얀 머리의 어릴 적 비밀 친구가 생각이 난다.



정소라


경기도에 살고 있는 스물아홉 살 사회복지사입니다. 어릴 때부터 일상의 작은 이야기를 글로 적고 그림 으로 그리는 걸 좋아해 지금도 직장 생활 틈틈이 쓰고, 그리고 있습니다. 귀신 할배와의 추억처럼 누군 가의 마음에 남을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글로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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