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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부엌 수업
몸도 마음도 건강한 채식 전도사 2019년 8월호
 
몸도 마음도 건강한 채식 전도사

 

무더운 한여름에 만나는 시원한 토마토 열무냉면과 통밀만두. 더위에 잃어버린 입맛도 금방 되돌아올 것 같은 반가운 차림이다. 듣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냉면과 만두는 입맛 까다로운 이들의 호불호도 가뿐히 피해가는 찰떡궁합 메뉴다. 거기에 허연옥(83) 할머니의 토마토 열무냉면은 한 번 맛 본 사람의 입맛까지 사로잡는 ‘인생메뉴’가 된다. “내가 만든 냉면을 드신 분이 자기가 냉면집 아들인데 이렇게 맛있는 냉면은 평생 처음 먹어봤다면서 두 그릇 먹고, 더 먹고 싶은데 배가 불러서 못 먹겠다 그러더라고요.”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할머니가 직접 개발한 냉면에는 남다른 노하우가 숨어있다. 토마토를 끓여서 밀봉해둔 토마토 병조림과 열무김치 국물로 만든 육수는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특별한 맛을 낸다. 고기 한 점, 삶은 계란 하나 얹지 않고도 맛과 영양이라는 일석이조의 조건을 두루 갖춘 건강식으로도 손색이 없다.


할머니표 냉면 육수의 진가를 아는 사람은 밥까지 말아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말끔히 비운다. 그렇게 입맛 당기는 대로 많이 먹어도 한결같이 속이 편하다고 입을 모은다. 재료의 맛을 충실히 살린 담백함에 영양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레시피로 만든 음식이기에 자극이 없고 탈이 나지 않는다. “보통은 면 넣고 계속 끓이는데 저는 팔팔 끓는 물에 면 넣고 뚜껑을 덮은 뒤 바로 불을 꺼요. 남은 열로 익히니까 불도 절약되고 3분만 지나면 딱 맞게 익어요.” 평범함 속에 깃든 비범한 요리 철학이다. 도드라지게 더함도 없이 절제된 그녀의 음식처럼 조리과정 또한 불씨 하나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두부와 김치 등 야채로만 속을 채우는 통밀만두뿐만 아니라 할머니가 만드는 음식 대부분이 육류와 생선이 빠진 채식이다. 어릴 때부터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던 할머니는 유난히 육식에 대한 거부반응이 심했다. 운동회 날이면 먹던 쇠고기국도, 산후 보양식으로 내놓은 닭고기도 먹고 난 뒤 온종일 게워내야 했다. 바짝 마른 명태나 담백한 생선 정도만 겨우 먹고 육류를 입에도 못 대는 딸을 위해 친정어머니는 두부를 따로 챙기곤 하셨다.


그녀는 어느 날 교회에서 우연히 읽게 된 건강 책자에서 육류나 생선이 체질에 따라 몸에 안 좋을 수도 있다는 내용을 보게 됐다. 책에는 ‘한 끼에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먹지 마라. 너무 단 걸 먹으면 발열상태가 되고 몸에 해롭다’라는 임상결과에 따른 식습관부터 재료 선택과 조리법까지 새로운 채식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체질상 고기가 받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채식이 누구에게나 몸에 좋은 건강식이라고 판단한 그녀는 더 깊게 요리법을 파고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할머니표 야채샐러드와 토마토 비빔국수, 통밀개떡, 감자떡, 콩전 등은 건강한 별식으로 가족들에게도 환영받았다. 고구마를 삶아 고춧가루와 소금으로 만든 된장, 검은콩·다시마·양파·무 육수로 만든 야채 간장 등 멸치나 고기 없이도 감칠맛을 낼 수 있는, 이전에 보지 못한 색다른 요리법에다들 놀라워 했다. 지난 2014년에는 삼육대학교에서 주최한 콩요리 대회에 출품한 ‘콩비지와 도토리 떡’이 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지금도 할머니는 일체의 간식을 삼가고 식간에는 물만 마시며 하루 두 끼를 채식으로 먹는 식습관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여든이 넘은 고령에도 노년에 한두 가지 갖고 있을 법한 병치레 하나 없이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나이를 거꾸로 드시나 봐요”라는 인사를 듣는 것 또한 채식 덕분이라는 그녀는 평생 실천해 온 채식으로 건강한 노년을 누리고 있다고 여긴다.


톱니 맞물리듯 맞아 돌아가는 인생


현재 그녀는 삼육대학교 신학과 교수이자 대학교회 담임을 맡고 있는 아들 내외와 학교 사택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자그마한 사택 텃밭도 놀리지 않고 밭둘레를 개간해 야채를 심어 풍성하게 나눠먹는다. 밭을 빈틈없이 가꾸는 부지런한 할머니는 이웃들 사이에서 ‘사막에 던져져도 살아남을 분’으로 통한다. “지금은 시어미인 나보다 며느리가 손도 빠르고 음식도 더 잘해요.” 20여년을 함께 손발 맞추며 가족의 식사를 책임져온 며느리와도 이젠 마음이 척척 맞아 떨어진다. 묵묵히 집안일을 해내는 그녀를 며느리는 삶의 스승으로 여기고 따른다.


“누구한테 며느리랑 같이 산다고 말하기가 부끄러워요. 그래도 내가 못하는건 며느리가 잘하고 며느리가 못하는 것은 내가 잘하니 톱니바퀴 맞물려 돌아가듯 서로 도우며 살아가고 있지요.”


할머니 인생의 수레바퀴가 가장 힘들게 돌아가던 때는 스물일곱 새 각시 시절이었다. 결혼한 지 4년 만에 세상을 등진 남편 대신 네 살 아들과 육개월 된 딸을 홀로 키워야 했던 그때는 다시 돌아봐도 막막하다. 체력마저 약했던 그녀는 먹고살 길은 기술밖에 없겠다는 생각에 작은 양장점을 시작했다. 가게에서 남은 연탄불을 가져다가 아이들 공부방으로 옮겨가며 절약한 돈으로 아들 중 학교 등록금을 마련했던 할머니는 삶의 고비마다 지혜롭게 견뎌냈다.


몇 해 전 80세 생일을 맞은 그녀에게 딸이 “엄마가 스물일곱에 혼자가 되시고, 내가 스물일곱에 결혼해 낳은 우리 딸이 그 나이가 됐네. 돌아보니 자식들 아니었으면 공부를 맘껏 하셨을 텐데”라며 울었다고 한다. 맞다고 생각하는 일은 끝까지 밀고 나가는 강단과 누구보다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어머니의 재능을 아까워하는 마음이었으리라. 대신 할머니는 못다 한 배움의 열정을 장학회활동에 쏟았다. 재능 있는 학생을 보면 어떻게든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싶었던 그녀는 한 학기에 대학생 세 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장학회를 30년간 이끌어오고 있다.


식구 한명 한명에게 일일이 편지를 쓰고 새벽 운동 나가는 아들 내외를 위해 정성껏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멋진 어머니의 삶은 기쁨으로 충만하다. 절제된 생활방식을 따르며 극진히 효도하는 자식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얼마나 풍요로운 일상인가.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사는 게 우리 삶이 아니겠어요. 내 나이가 되면 경험으로 얻은 걸 다른 사람에게 알려줄 소임을 느낍니다.”


몸소 터득한 지혜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 허연옥 할머니의 가장 큰 소망이다.

 


글 김정희 기자 | 사진 최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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