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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나의 특별한 ‘여행 친구’
배낭과 나누는 산뜻한 우정 2019년 8월호
 
배낭과 나누는 산뜻한 우정

‘키 세 뼘, 폭은 한 뼘 반, 두께는 반 뼘, 주황색과 회색 섞인 옷을 입었으며 내등을 특히 좋아한다, 내가 집을 나설 때면 어김없이 내 등에 찰싹 업혀있다.’ 요즘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녀석, 배낭이다.


4년 전 북한산 아래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녀석과 특히나 친해졌다. 산이 인접해 있다 보니 배낭을 메고 자주 산에 오르게 되었다. 배낭안에는 화장지와 목장갑, 그리고 모자와 작은 방석이 늘 담겨 있다. 여기에 500 밀리리터 물통 하나와 견과류 한 봉지만 넣으면 준비 끝이다.


올해 봄부터는 거의 매일같이 배낭을 메고 북한산에 오르고 있다. 3월 초에는 산 초입에 흰 매화가 처음으로 얼굴을 내밀었고 이어서 노란 산수유, 연분홍색 진달래, 하얀 벚꽃, 향기가 짙은 아카시아 꽃들이 차례로 피었다. 여름이 되니 녹음이 우거져 싱그러운 기운이 산에 가득하다. 나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산에 오르며 이 좋은 경치와 공기를 만끽하고 있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지켜본 결과, 녀석은 듣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다른 등산객과 인사하거나 담소를 나눠도 등 뒤에서 조용히 듣고만 있다. 지나가는 등산객의 노랫소리나 라디오 소리에도 개의치 않는다. 어떤 때는 녀석이 나에게 먼저 나지막이 말을 건네기도 한다. 내가 숨이 가빠지면 본인이 갖고 있는 간식을 먹고 쉬어가라며 등을 건드린다.


유독 내 발걸음이 무거운 날에는 새소리를 들어보라고 하고, 저만치 피어있는 예쁜 꽃을 보라고도 한다. 맑게 갠 날은 고개를 들어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을 보라고 한다. 비록 생명력 없는 물건이지만 혼자 걷는 길에 든든한 힘이 되어주니 친구로 느껴진다.


나는 녀석이 좋다. 새소리도 같이 듣고 함께 꽃구경도 하는 나의 정겨운 길동무와 앞으로도 변함없이 친하게 지내고 싶다.


김정수


퇴직 후 북한산 자락을 열심히 오르내리며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50대 후반의 나이에 건강을 위해 시작한 등산이지만 걷다보면 글감도 잘 떠오르고 싱그러운 꽃과 나무들을 보면 기분도 절로 좋아집니다. 매달 삼십만보 걷기를 달성하기 위해 오늘도 산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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