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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마음에 힘을 주는 엄마의 편지 2019년 8월호
 
지친 마음에 힘을 주는 엄마의 편지

유년기를 떠올려보면 난 부족한 것 없이 자란 아이였다. 마흔이 다 되어 낳은 늦둥이 딸을 애지중지한 엄마는 매일 고기반찬을 상에 올리고, 내가 갖고 싶은 것이라면 흔쾌히 사주셨다. 당시 동대문 시장에서 도매업을 했던 엄마는 사람 한 명이 들어서면 꽉 차는 작은 가게에서 옷 장사를 하셨다. 밤새 장사를 하고 지친 기색으로 아침에 돌아와서도 나를 꼭 안고 등을 쓸어주던 손길이 어찌나 따뜻하고 든든했는지 모른다.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웃을 정도로 밝은 소녀로 자랄 수 있었던 건 모두 엄마의 사랑 덕분이었다.


언제까지나 엄마의 품에서 행복하게 지낼 줄만 알았던 시간도 내가 고등학생이 되던 해에 끝나고 말았다. 가세가 기울면서 뿔뿔이 흩어져 지내게 된 우리 가족은 뜻하지 않게 생이별을 해야 했다. 막내이모 댁에서 혼자 더부살이를 하게 된 나는 더 이상 가정의 온기를 느낄 수 없어 서글펐다. 이모네 식구들은 나를 잘 챙겨주셨지만 어디 가족만할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눈치 보면서 생활하는 동안 환했던 마음에는 점점 그늘이 졌다.


막내이모 댁에 나를 맡긴 엄마는 옷가게를 접고 둘째 이모가 운영하는 과일가게 앞에서 노점상을 시작했다. 하루벌이라야 고작 2~3만 원. 그마저도 차곡차곡 모아 내 생활비로 막내이모 댁에 보내느라 엄마의 삶은 늘 곤궁하기만 했다. 장사하느라 바쁜 엄마가 나를 보러 오는 날은 한 달에 두어 번 뿐이었다. 단 한 순간도 엄마의 품이 그립지 않은 순간이 없었지만 막상 엄마를 만나면 난 매정하게 굴었다. 딸을 혼자 친척 집에 맡긴 원망보다도 엄마의 초라한 행색에 대한 불만이 더 컸다.


철없던 나는 푸석한 얼굴로 찾아와 꼭 이모네서 목욕을 하는 엄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왜 남의 집에 와서 목욕을 하는 거야? 씻지도 않고 다니나?’ 깔끔한 모습으로 딸을 만나고 싶었을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난 엄마의 행동이 창피하기만 했다. 하루의 노곤함을 씻어낸 엄마는 내 옆에 누워 전처럼 나의 등을 쓸어내려줬지만 난 “저리 가, 귀찮아!” 하며 엄마를 밀어냈다. 더부살이로 마음 고생할 딸을 위로하고 싶었을 엄마를 난 매번 침대 밖으로 몰아냈다.


딸의 쌀쌀맞은 태도에 엄마 혼자 바닥에 이부자리를 펴고 잠을 청하는 날이 1년 정도 이어지던 무렵이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지난밤에 엄마를 매몰차게 대했던 것은 생각 못한 채 ‘뭐가 바쁘다고 딸이 깰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고 먼저 간 거야?’라는 서운한 마음만 들었다. 그 순간, 곱게 접힌 엄마의 이불 위로 꼬질꼬질 때가 탄 종이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사랑하는 딸’로 시작하는 쪽지 한 장이었다. ‘어려운 상황을 씩씩하게 이겨 내고 있는 우리 딸이 엄마는 정말 자랑스러워. 못 해준 것이 많아 항상 미안해.’


엄마의 진심 어린 편지를 읽으며 나는 왜 항상 받으려고만 한 건지, 왜 늘 나만 힘들다고 생각한 건지 뒤늦은 후회가 밀려와 많은 눈물을 흘렸다. 며칠 후 나는 무작정 짐을 싸서 엄마가 사는 단칸방을 찾아갔다. “나 힘들어도 엄마랑 같이 살고 싶어”라고 속마음을 터놓는 나를 엄마는 따뜻하게 안아주며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온수도 나오지 않고 벌레가 득실대는 단칸방이었지만 엄마 곁에서 지내며 난 다시 씩씩한 딸로 돌아왔다. 학창시절 내내 패스트푸드점, 아이스크림 가게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충당했고 엄마는 노점상을 이어가며 차곡차곡 돈을 모았다. 덕분에 몇 년 뒤 우리는 방이 두개 딸린 반지하로 이사하게되었다. 반지하 역시 초라했지만 가족이 다시 함께 모여살 수 있었던 소중한 집이었다.


어느덧 내 나이도 마흔이 다 되어 간다. 뜻하지 않은 실직, 사람들의 모진 말에 받는 상처 등 이런저런 일들로 삶이 그리 녹록지만은 않다. 지칠 때마다 난 엄마의 때 묻은 편지를 꺼내 읽는다. 자식을 위해 힘든 시기를 현명히 견뎌냈던 엄마처럼 나도 오늘 하루를 꿋꿋하게 헤쳐나가리라 다짐하며….



김희진


취미로 독서와 영화 감상을 즐기며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서른여덟 살 주부입니다. 언젠가 희곡을 무대에 올릴 날을 꿈꾸며 열심히 습작해나갈 계획입니다. 쉽지 않겠지만 칠순이 되어서도 식당에서 일하며 아직도 치열하게 생활하시는 엄마를 보며 힘을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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