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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길잡이가 된 두 스님의 기억 2019년 8월호
 
삶의 길잡이가 된 두 스님의 기억

가끔 기억조차 희미한 옛일이 떠올라 때늦은 후회에 휩싸일 때가 있다. 일곱살 무렵, 여름 해가 쨍쨍 내리쬐던날 물을 길어오다 마주친 어느 젊은 탁발승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목이 마르니 물 좀 나눠줄 수 있겠냐고 다가온 스님에게 얼결에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우리 집은 교회 다니는데요.”


스무 살 무렵, 반대의 경우를 경험한 적도 있다. 팍팍한 삶에 지쳐 배낭을 꾸려 무작정 집을 나섰다가 산에서 여러 날을 보낸 뒤 내려오던 길이었다. 산속이라 오후 해는 기울어가고 피로와 허기에 지쳐 몸이 휘청거렸다. 마침 산 속 조그만 산사 마당에서 한 스님이 튀각을 튀기고 있기에 염치불구하고 하나 얻어먹기를 청했더니 스님들 저녁 공양에 올릴 거라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공양이 중요하지. 지나는 나그네 사정까지 살필 여유가 없으시겠지!’ 그 뒤 나는 비슷한 상황을 만날 때마다 남을 원망하는 대신 미리미리 준비하지 못한 내 자신을 탓하며 살아왔다. 모든 게 나 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에 현실에 최선을 다하자는 다짐이었다. 튀각을 보면 산사의 스님이 떠올랐고, 이어 목마른 탁발승에 대한 미안함이 되살아났다. ‘산사의 스님이 내게 튀각을 나눠주지 않은 것은 그 옛날 목마른 스님에게 한 모금 물을 거절한 무명 중생에게 뉘우침과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스님에게 드리는 물 보시가 가장 큰 공덕이라는데, 그조차 매몰차게 거절해버렸으니 어쩌면 나는 그때 극락왕생의 길을 제 발로 차버린 건지도 모른다. 지금은 노스님이 되었을 그 젊은 탁발승은 맹랑한 거짓말로 청을 거절하던 아이와 그때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그때 기억을간직하고 살아온 내 마음이 아닐까. 50년 전 저쪽의 기억이 내게는 가끔 삶의 길잡이가 되어 되살아난다.


이광식


더 늦기 전에 우주에 대해 공부하고 사색하고 싶어 생업이던 출판을 접고 강화도 퇴모산으로 귀촌한 후 10년 가까이 천문학과 물리학, 수학 책을 읽으며 밤마다 별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원두막 천문대’라는 개인관측소를 운영하면서 일간지 등에 우주 관련 칼럼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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