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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웃게 만드는 중3 애늙은이 2019년 8월호
 
나를 웃게 만드는 중3 애늙은이

10년 가까이 입시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다 보니 별별 재밌는 녀석들을 만나게 된다. 요즘 내 웃음의 원천은 얼마 전 새로 들어온 중3 원엽이다. 원엽이는 또래보다 덩치도 크고 인상도 무서워 친구들도 처음엔 다가가기 힘들어 했다. 하지만 가만히 지켜보니 녀석은 참 엉뚱한 구석이 많은 순둥이였다.

어느 날 쉬는 시간에 아래층 편의점에 갔더니 원엽이가 라면과 삼각김밥, 샌드위치의 값을 깎아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야, 나도 좀 먹고 살자. 겨우 이거 사면서 깎아달라고 하면 난 뭐가 남겠니?” 하며 난감해 하는 편의점 사장님에게 녀석은 큰 선심이나 쓰듯이 “오늘은 제가 이해할게요. 대신 다음엔 꼭 깎아주시는 거예요? 꼭이요” 하고 다짐을 받고서야 가게 문을 나섰다. 편의점 사장님은 “처음엔 저도 황당해서 대꾸도 안하다가 저 큰 덩치로 계속 매달리니 가끔씩 음료수 하나 정도는 공짜로 주곤 합니다” 하며 껄껄 웃었다.

연휴를 앞둔 지난 주말, 원엽이가 김천 할아버지 댁에 혼자 가야 하는데 터미널까지 차를 좀 태워달라고 부탁을 했다. “혼자 갈 순 있는데 시외버스를 처음 타보는 거라 표를 어떻게 사는지 몰라서 그래요” 하고 간곡히 부탁하기에 터미널까지 태워주었더니 이번엔 애늙은이 같은 녀석의 얼굴이 말썽이었다. 매표소 직원이 “아저씨, 장난하지 말아요. 누가 봐도 성인인데 무슨 중학생 표를 달라고 그래요!” 하며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학생증 덕분에 오해를 벗었지만, 매표소 직원은 녀석의 얼굴을 확인하며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승강장까지 배웅하는 내게 녀석이 “쌤, 고맙습니다. 다음에 제가 밥 한번 쏠게요” 하고 인사를 하기에 “이왕이면 술도 한 잔 쏴라”라고 장난을 쳤더니 녀석은 “에이, 중3이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러세요” 하고 웃으며 승강장으로 들어갔다. 애늙은이 원엽이가 또 내게 어떤 웃음을 안겨줄지 다음 수업이 기다려진다.


김장섭


경북 구미에서 중고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마흔두 살의 학원강사입니다. 학원 친구들에게 늘 웃음을 안겨주는 원엽이는 현재 얼마 남지 않은 기말고사 준비로 열공 중입니다. 밝고 재밌는 성격만큼이나 성적도 조금만 더 올랐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부담을 줄까 싶어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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