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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공존하는 바닷가 마을 2019년 8월호
 
고양이와 공존하는 바닷가 마을

 

부산 해운대와 송정 사이의 작은 포구에는 애틋한 전설 하나가 전해져 온다. 이 마을에 살던 금슬 좋은 부부의 얘기다. 어느 날 고기잡이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아내는 해안가 바위에서 매일 같이 남편을 기다렸다. 죽은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을 애처롭게 여긴 용왕이 푸른 뱀을 보냈고, 부인은 청사(靑蛇)를 타고 용궁으로 가서 남편과 백년해로했다. 달맞이고개 너머 바닷가 마을이 청사포(靑蛇浦)가 된 연유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지명에 뱀이 들어가는 것이 좋지 않다 하여 푸른 모래라는 뜻의 청사포(靑砂浦)로 바뀌게 되었다.


푸른 뱀이든 푸른 모래이든 청사포가 푸르다는 형용사를 껴안게 된 것은 해안가에 유독 푸른 돌이 많았기 때문이다. 새벽 어스름 청사포 바다를 바라보면 해초를 머금은 바위와 돌들이 파르스름한 빛깔을 띤다. 그 위로 찬란하게 떠오르는 아침해는 성스럽게 갯마을을 비춘다. 해운대 12경 중 하나로 이미 아름답기로 정평이 난 일출과 수려한 바다 경관, 여기에 난류와 한류가 만들어내는 풍부한 어자원까지 작은 포구에 내려진 축복을 인심 좋고 순박한 주민들이 함께 누리고 있다.


비단 사람들뿐만이 아니다. 마을의 고양이들도 사람들과 더불어 청사포에서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청사포 고양이 마을 프로젝트’ 덕분이다. “저뿐만 아니라 마을에 고양이 밥을 챙겨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이 집들을 모아 고양이 마을을 조성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일본과 대만에도 고양이 마을이 있잖아요.”


고양이 마을 프로젝트의 기획자 유용우(39) 씨가 영감을 얻은 곳은 일본 아오시마 섬과 대만 허우통 마을이다. 주민들보다 더 많은 수의 고양이가 살고 있어 일명 고양이 마을로 불리는 두 곳은 전세계 애묘인(愛猫人)들의 발길이 이어져 관광지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청사포 마을은 고양이 숫자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아오시마 섬과 허우통 마을을 기대하고 방문했다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다. 대신 길고양이를 보살피는 주민들의 정성과 각별한 사랑만은 아오시마 섬과 허우통 마을을 능가한다.


 

 

마을 곳곳에 급식소를 설치해 고양이들이 편안히 식사를 할 수 있게 한 배려가 돋보인다. 가로, 세로, 높이 35센티미터 크기의 급식소는 사료를 놓을 수 있는 받침대와 눈비를 막을 수 있는 가림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길고양이 밥을 챙겨 주는 ‘캣맘’이 종종 따가운 눈총을 받는 이유 중 하나가 고양이 밥 주는 자리가 더러워진다는 것인데 급식소는 그런 염려를 말끔히 없애주었다. 현재 마을에는 가게 7곳과 가정집 2곳에 급식소가 설치되어 있다. 약 30여 마리 정도의 길고양이가 이들 급식소에서 물과 음식을 먹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급식소는 모두 유용우 씨의 작품으로, 취미로 배운 목공기술을 발휘해 고양이들이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나무 상자를 제작했다. 현재 그는 청사포에서 ‘고양이 발자국’이라는 고양이 급식소 및 기구 제작업체를 운영 중이다. 급식소뿐만이 아니라 유용우 씨는 안내 표지판, 고양이 마을 지도, 후드 티셔츠·핀버튼·스티커 등을 만들어 고양이 마을 프로젝트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또한 그는 급식소가 포진되어 있는 골목에 캣웨이(catway)란 멋진 이름을 붙인 장본인이다. 캣웨이는 ‘청사포 입구 사거리’에서 바닷가로 내려가는 큰길에서 우측으로 빠지는 500미터 길이의 샛길로, 지금은 폐선이 된 동해남부선과 2016년 조성된 벽화마을을 가로지르고 있어 소소한 볼거리를 더해준다. 캣웨이를 걷다 보면 고즈넉한 철길과 형형색색의 벽화로 채워진 골목 사이사이를 유유자적 누비는 길고양이들을 만날 수 있다.


캣웨이의 초입에는 마음씨 좋은 김복동(81) 할머니 댁이 위치하고 있다. 할머니는 급식소가 설치되기 훨씬 전부터 길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주었는데 고양이 마을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캣할매’라는 별명을 얻었다. 스무 살 때 청사포로 시집와 한평생 방앗간을 운영하며 바쁘게 살아온 할머니는 이제 고양이들 밥을 내어주는 게 유일한 소일거리다.

 


“이틀에 한 번 두 갱지미 가득 먹을 걸 챙겨주는데 쟈들도 사람하고 똑같데이. 눈치도 빠르고 사람 맴도 다 안다.”


적적해하는 자신의 처지를 알기에 녀석들이 찾아와 준다고 믿는 할머니, 그런 할머니에게 고양이들은 외로움을 달래주는 친구가 되어준다. 철길 옆 카페 ‘청사포와봄’의 주인장 윤승찬(48) 씨에게도 가게 앞 급식소를 찾는 세 마리의 고양이가 좋은 친구다.


“뚱뚱해서 뚱자, 식빵을 굽는 자세로 앉아 있어 호빵이, 털이 노래서 노랑이에요. 가게 공사할 때부터 1년 넘게 같이 지내면서 정이 많이 들었지요. 손님이 뜸할 때 문을 열어놓으면 안에 들어와서 같이 음악도 들어요.”


그 역시 아침, 저녁 하루 두번 고양이밥을 챙겨주는 게 빼놓을 수 없는 일과가 되었다.


 

 

“저는 밥만 줄 뿐인 걸요. 고양이 애호가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그분들이 대단하죠. 서울에서 고양이 보러 와서 1박 2일 머물다 가신 분도 있어요.”


주말이면 특히 고양이 마을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많아진다. 그들은 이렇게 온 마을이 함께, 또 당당하게 고양이 밥을 주는 광경에 놀라고 감격스러워한다. 아마 고양이 마을 프로젝트에 선뜻 동참해준 주민들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캣할매와 청사포와봄 외에도 금오횟집, 카페 청사포역, 모리구이 같은 가게도 유용우 씨의 청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식당이나 카페 앞 급식소를 찾는 고양이들은 어느새 마스코트가 되어 손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가게 단골들은 고양이가 안 보이면 찾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몸에 노란 줄무늬가 있는 고양이 한 마리는 청사포역과 모리구이를 오가며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한옥을 개조해 만든 청사포역에서는 ‘한옥이’, 모리구이에서는 숲이라는 뜻의 가게 이름을 따서 ‘모리’라는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누구의 소유가 아닌 길고양이들이다 보니 각자 부르는 이름도 다른 것이다. 윤승찬 씨가 뚱자라 부르는 호빵이의 엄마도 유용우 대표는 ‘야채호빵’이라고 부른다. 물론 처음에는 고양이 마을 조성에 반대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길고양이들을 보살피면 개체수가 늘어나고 밭을 파헤쳐 농사를 망친다는 이유였다. 이 같은 염려는 최대한 대화로 풀어나가는 중이다. “고양이 대부분 중성화가 된 상태고, 고양이가 밭을 파헤쳐 싫다는 할머니는 같이 흙을 덮어드렸어요. 고양이들이 밭을 종종 파헤치는 건 습성이라고 설명 드렸더니 파종시기에 밭에 덮개를 해놓는 분도 생겼더라고요. 고양이들이 원래부터 우리와 함께 살던 녀석들 이라는 것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유용우 씨의 바람대로 닫혀있던 마음이 하나둘 열려 청사포 고양이 마을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배려와 이해를 필요로 한다. 때로는 약간의 불편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다. 말 못하는 동물과도 마찬가지다. 배려하고, 이해하고, 인내하는 마음. 이 땅의 주인이 우리가 아니라는 사실만 기억한다면 전국 어디든지 행복한 고양이 마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글 김윤미 기자 | 사진 최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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