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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 근대건축
구룡포 일본인 마을 2019년 2월호
 
구룡포 일본인 마을


 

그 집에 가면 얼마만큼 진실을 알 수 있을까? 십여 년 전 포항 구룡포 장안마을을 찾은 적 있다. 사진동호회가 찍은 몇 장의 사진과 장안마을이라는 단서만 가지고 무작정 구룡포로 향했다. 해안가를 따라 내려가는데, 횟집들이 늘어선 평범한 어항(漁港) 뒤쪽으로 골목이 거미줄처럼 펼쳐진 마을이 하나 나타났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시간이 거꾸로 흐른 것 같았다.


일본식 목조 가옥들이 골목 양편으로 빽빽했다. 낡은 집에선 오래되었으리라 짐작되는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왔다. 거리는 조용했지만 빈집은 아니었다. 초입에 있는 커다란 일본식 가옥은 떵떵거리며 살았던 거부의 집이 틀림없었다. 하시모토 젠키치 저택은 군데군데 녹슬고 힘겹게 지탱하는 듯 보였지만 위엄과 비밀스러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옥상에 낡은 물탱크가 있는 시커먼 건물은 통조림 가공공장이었을 테고, 이층으로 창문이 길게 난 큰 집은 연회실이 딸린 음식점이었을 것이다. 능소화가 활짝 핀 옛 여관도 남아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살림집으로 쓰게 된 모양이었다.


몇 년 후 다시 마을을 찾았을 때 기억 속의 집들은 모습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근대거리를 조성해서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포항시의 발상은 마을을 어중간한 관광지로 바꾸어버렸다. 하시모토 젠키치 주택이 말끔하게 정돈된 것까지는 좋았으나 당시 화려했던 일본인들의 삶을 박제한 채로 공개되었다.


옛날여관은 번잡한 식당이 되었고, 카페로 영업하다가 ‘임대’라는 푯말이 붙은 모퉁이 집은 쓸쓸해 보였다. 구룡포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자본과 과욕이 주민의 삶과 역사마저 훼손하는 것 같아 들여다보기가 민망했다.


최근 구룡포를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우뭇가사리 때문이었다. 부산에서 흔히 먹는 우뭇가사리가 든 냉콩국을 다른 지역에서는 전혀 먹지 않는다는 사실이 의아해서 찾아보다가, 우뭇가사리는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학 재료와 산업용으로 수출하던 품목이었고 이들을 채취하기 위해 제주해녀들이 원정 물질까지 왔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제주 해안은 잠수 장비를 갖춘 일본 잠수사들에게 접수된 상태여서 해녀들은 부산, 동해,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원정 물질을 떠났다. 채취해서 팔다가 먹게 되었을 우뭇가사리는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의 흔적이자 물 따라 오가던 사람들이 남긴 이야기의 잔해다.


‘물 따라 오가는 사람들의 역사’라면 구룡포다. 일제강점기 동해안의 대표적인 어항이었던 구룡포는 일본인들이 집단으로 이주해 정착한 곳이다. 가가와현과 오카야마현에서 온 어민들은 기동 선박과 각종 기술 장비를 이끌고 한갓진 어촌에 들어왔다. 경쟁적인 남획으로 살길이 막막했다가 고등어가 풍어를 이루는 구룡포를 만난 것이다.


일본인들은 해안가를 정비해서 도시를 만들고 고등어 황금시대를 열었다. 구룡포 앞바다에는 배들이 가득 찼다. 선주가 어부들을 고용하는 방식으로 조업했는데, 600여 척의 어선 중 500여 척이 일본인 소유였고, 만여 명에 달하는 어부들 중 90퍼센트는 외지에서 온 한국인이었다. 한번 조업을 시작하면 몇 달을 머무르는 일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관이며 유흥가도 형성되었지만, 근대식으로 치장하고 큰 규모로 영업했던 곳은 모두 일본인의 소유였다.


 

일본 어민들은 장생포, 통영, 거문도, 나로도 등지에도 정착했다. 경상 해안의 수확물들은 일본 유통사를 거쳐 부산으로 옮겨져 일본인들이 주축이 된 어업조합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한국인 선박주도 분명 있었고 어부, 해녀들도 적극적으로 생업에 종사했으며 일본인 어부나 해녀와 공생관계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일제 패망 후 일본인들이 한국인들과 눈물의 작별을 했다는 이야기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촌에서 자행된 내재적 차별과 제도적인 제한도 사실이며 어업자원들이 수탈의 대상이었다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작금의 구룡포가 아쉬운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 구룡포를 발견했을 때는 거기에 무엇이 있었다. 두루마리처럼 말려 있는 시대의 비밀이라고 할까? 분명 그때는 있었다. 복잡하고 슬프고 희망 차고 풍부한 무엇이 있었다. 그래서 마을을 기웃거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들로부터 이야기를 청해 듣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라졌다. 원형을 잃기 전에 거리와 집을 실측하고 마을 사람들의 구술 자료를 기록해두었기를 바란다. 기록되지 않은 삶은 쉽게 사라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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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선

문화유산, 건축, 예술 등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에 대해 글을 씁니다. 오래된 공간의 아름다움, 그 속에 깃든 사람 이야기, 그리고 장소와 인간을 매개하는 흥미로운 사물을 사랑합니다. 《밤의 화가들》 《청춘남녀, 백년 전 세상을 탐하다》 《달콤한 작업실》 《오후 세 시, 그곳으로부터》 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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