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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한 사람
작지만 위대한 그녀의 사랑 2019년 2월호
 
작지만 위대한 그녀의 사랑

 

세상에는 평범한 일들이 참 많다. 따뜻한 모닝커피, 가족과의 저녁식사, 반복되는 업무…. ‘소확행’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지면서 소소한 것의 가치가 중요시되고 있지만 난 여전히 많은 것들을 사소하다는 이유만으로 무심히 지나쳐 보낸다.


김모아 작가는 다르다. 그녀는 내가 쉽게 지나치는 일들을 놓치지 않고 소중히 여긴다. 12년간 연애하고 부부가 된 지 4년 차에 접어드는 나의 배우자. 오랜 시간 서로에게 익숙해졌으니 상대로 인해 감정이 동요될 일은 어지간해서는 없을 듯한데 난 지금도 그녀의 사소한 습관 하나에도 감명을 받곤 한다.


그녀에게 가장 많이 배우는 부분이 작은 일을 감사히 해내는 성실함이다. 그녀의 성실함에 깜짝 놀라는 순간은 대부분 일하러 가거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생긴다.


어제도 그랬다. 점심 약속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걸어가던 그녀는 빨개진 코를 감싸며 말했다. “와, 날씨가 진짜 춥다. 부모님들한테 전화해야지!” 영하 10도를 웃도는 추운 날씨에 내 머릿속은 빨리 차 안으로 들어가 히터를 틀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그녀는 아니었다. 추워서 전화 드리고, 더워서 전화 드리고, 하늘이 예뻐 전화 드리고, 배불러서 전화 드리는 그녀의 부모님 사랑은 결혼 생활 내내 변함없이 이어졌다. 그녀는 조수석에 앉아 잠깐 손을 녹였다.


코끝은 여전히 빨갰다. 잠시 후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 보니 고맙게도 매번 내 어머니가 제일 먼저다.


주제는 늘 거기서 거기다. 날씨, 건강, 점심 메뉴, 저녁 메뉴 등 평범한 화두 이건만 두 여자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연신 깔깔깔 웃는다. 유쾌한 첫 통화를 마치고 나면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도 전화를 건다. 역시나 다정다감한 말투와 밝은 웃음소리가 옆에 있는 나까지 미소 짓게 만든다.


통화를 모두 끝낸 그녀는 어김없이 내게 한마디 말을 건네는데 그 내용 역시 매번 똑같다. “난 세상에서 제일 쉽게 할 수 있는 최고의 효도가 전화인 것 같아. 매일 얼굴을 보여드릴 수 없으니까 목소리라도 들려드리면 얼마나 좋아하시겠어” 하며 끝에는 “그렇지 않아?”라고 내게 묻지만 그건 동조를 구하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전하는 다짐의 말이라는 것을 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귀찮게 여기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녀가 기특하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 거의 매일 듣는 다짐의 말을 곱씹어보면 그 속에 담긴 마음이 읽힌다. ‘해드릴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잖아. 할 수 있을 때 해드리고 싶어. 그들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그녀가 부모님에게 건네는 건 사실 ‘이것밖에’ 안 되는 전화 한 통이 아니라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바쁘고 복잡한 세상살이에 치여 놓치고 있는 것이 사랑이 아닐지 아내를 보며 깨닫는다.


매일, 매 시간 일어나는 일들을 사랑하는 그녀이기에 이별이 유독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걸까. 그녀는 눈물이 많다. 여행하듯 살고, 살듯이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살던 집을 처분하고 2017년 3월부터 1년간 캠핑카에서 지내며 전국을 누볐던 ‘밴라이프’와 이별할 때도 그녀는 많이 슬퍼했다.


캠핑카에서의 일상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록하며 가장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일기 쓰기 역시 거뜬히 해냈고, 관광 명소보다 시골 장터에서 뻥튀기 장수와 잡담을 나누거나 경운기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는 소소한 시간을 더 좋아할 정도로 깊이 사랑한 일상이었기에 이별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순간순간 감정을 가득 싣는 그녀에게 물들어 나 역시 많은 것을 느끼며 1년을 10년처럼 알차게 보냈다.


도타운 애정으로 평범한 순간들을 모아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나의 아내, 김모아. 언제 어디서나 사랑을 전하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의 중요성을 아내가 없었다면 나는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가만, 여전히 부모님에게 전화를 드리는 사람은 아내이니 난 아직 갈 길이 먼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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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훈

남태현의 <더러운 집>,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어쩌다>, 어반자카파의 <둘하나둘> 등을 연출한 뮤직비디오 감독입니다. 뮤지컬배우에서 프리랜서 작가가 된 아내와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 《여행하는 집, 밴라이프》를 집필했습니다.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하며 현재 밴라이프 경험을 담은 다큐를 제작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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