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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으로 읽는 세상
세상의 모든 출발을 응원하는 워너원 2019년 2월호
 
세상의 모든 출발을 응원하는 워너원


이게 뭐야 두근거리는 감정이 느껴져

한순간도 쉴 틈 없이 너만 생각해

말로 다 설명 못 해 자꾸만 웃게 돼

이 감정 어디서 왔는지 알수록 더 미소 짓게 돼

_ 워너원, <Wanna Be (My Baby)> 중에서


작년 봄,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 준비에 착수했다. 그동안 책과 관련된 일에 오랫동안 종사해오며, 출판업이 나와 잘 맞는다는 확신으로 꽤 용감하게 1인 출판사를 시작했다.


역시, 사업은 돈이었다. 그해 여름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오랜 심사를 거쳐 창업 대출을 받았다. 어쩌다 보니 나는 변변한 자본금도 없이 대출금을 잔뜩 낀 ‘사장님’이 되어 있었다. 허울은 좋았지만 당장 책을 내줄 유명 저자나 판매를 맡아줄 매출처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불안감에 시달리며 대출금을 까먹는 나날이 몇 달이나 이어졌다.


그러던 와중에 강원도 철원의 한 교육도서관 사서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이전 출판사에서 연재했던 K-POP 관련 글들을 인상 깊게 보았다며,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케이팝을 인문학과 연결해서 쉽게 풀이해주는 강의를 부탁하는 전화였다.


앞날은 확실치 않고 사업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상황에서 나는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강의를 시작했다. 대여섯 번이나 기나긴 거리를 왕복하며 철원의 학생들과 케이팝과 인문학에 대해 대화하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2017년 결성된 11인조 남성 그룹 워너원의 <Wanna Be (My Baby)>는 파주와 철원을 오가며 수도 없이 반복해 들었던 노래다. 나는 이 곡을 통해 워너원과 사랑에 빠져버렸다. 이미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굉장한 인기를 끌었던 아이돌 그룹이었고, 나 또한 이 프로그램을 몰입해서 보긴 했지만, 이 노래에는 내 마음을 울리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


<Wanna Be (My Baby)>는 워너원의 열한 명 멤버들이 성공적으로 데뷔한 이후 팬들에게 바치는 ‘팬송’이다. 그래서인지 자신들을 데뷔시켜 준 팬들을 향해 무한한 고마움을 전하는 솔직하고 풋풋한 감성이 잘 녹아들어 있다. 상큼하고 청량한 멜로디에 실린 노랫말에서 그들은 ‘받은 게 많아서 줄 것도 많아, 흐르는 땀만큼 추억도 많아’라며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해줄게, 미리 약속할게’라고 다짐한다.


철원으로 가는 차 안, 팬들과 함께 이 곡을 부르며 활짝 웃는 워너원의 콘서트 영상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돌곤 했다. 아니, 사실 눈물이 줄줄 흐른 적도 있었다. 무엇 때문에 내 감정이 그토록 흔들리는지도 잘 알지 못한 채….


나는 왜 그렇게 그 노래에 빠져들었을까? 돌이켜보면, 나는 그들의 힘찬 출발에 나 자신의 처지를 힘껏 이입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갓 스물 내외의 젊은이들이 팬들을 향해 고마움과 앞으로의 다짐을 전하는 모습은 그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겪어온 내게 반짝이고 진정성 있는 에너지를 전해주고 있었다.


그 덕에 나도 자못 순수하게 나 자신을 노래 안에 투영할수 있던 것 같다. 마치 영화 <머니볼>의 브래드 피트가 삶의 분기점 앞에 선 순간 딸이 부른 <The Show>를 듣고 눈물을 멈추지 못했던 것처럼.


창업 후 두 번째 해가 저물었다.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아등바등 버텨오며, 내 길도 조금씩 안정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철원을 오가며 워너원의 노래를 듣던 순간을 오래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프로젝트 그룹 활동을 마치고 이제 각자의 길을 걸어갈 워너원의 열한 명 멤버들도 이 노래를 잊지 못하리라.


처지도 직업도 나이도 달랐지만, 우린 그때 어딘가로 ‘출발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들의 노래는 ‘비록 아무도 과거로 돌아가 새 출발을 할 순 없지만, 누구나 지금 시작해 새로운 엔딩을 만들 수 있다’는 칼 바드의 말처럼 세상의 모든 출발을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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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후 기자와 서점 MD, 출판사 에디터 등을 거쳤고, 지금은 1인 출판사인 도서출판 사이드웨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7년 여러 학교와 기관들에서 ‘인문학으로 읽는 K-POP’ 특강을 진행했고,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아이돌을 인문하다》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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