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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가 필요한 당신에게 시 한 편을
하루를 사는 일이 사람의 일이라서 2019년 2월호
 
하루를 사는 일이 사람의 일이라서


 

고독 때문에 뼈아프게 살더라도

사랑하는 일은 사람의 일입니다.

고통 때문에 속 아프게 살더라도

이별하는 일은 사람의 일입니다.

사람의 일이 사람을 다칩니다.

사람과 헤어지면 우린 늘 허기지고

사람과 만나면 우린 또 허기집니다.

언제까지 우린 사람의 일과

싸워야 하는 것일까요.

사람 때문에 하루는 살 만하고

사람 때문에 하루는 막막합니다.

하루를 사는 일이 사람의 일이라서

우린 또 사람을 기다립니다.

사람과 만나는 일 그것 또한

사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_ 천양희의 <사람의 일>



사랑하는 진 수녀님, 우리가 만나서 이야기 나눈 지도 참 오래되었지요? 수녀님과 함께 차 한잔 마시며 오늘은 이 시를 낭송해드리고 싶네요. ‘언제까지 우린 사람의 일과 싸워야 하는 것일까요’ 하는 구절에 제 눈길이 머뭅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 이 싸움은 끝이 나지 않는 것일 테지요. 사랑과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이 선한 싸움이 있어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는 오늘, ‘함께 사는 삶이란 힘들어도 서로의 다름을 견디면서 서로를 적셔주는 기쁨’이라고 비 오는 날의 단상을 쓴 적이 있고 이 구절을 글방 창문에 붙여두었더니 많은 이들이 공감하며 사진 찍어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수녀님처럼 40명이 넘는 공동체의 책임자로서 매일을 살다 보면 각자의 개성이 다른 이들, 대부분 노년의 수녀들을 섬기고 돌보아야 하는 일이 힘들 때도 많지요? 그 소임에는 누구보다 많은 인내와 겸손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도 거기서 행복하다고 고백하는 우리 수녀님들을 보면 저까지 덩달아 행복해지고 수녀님의 숨은 노고가 헤아려져 슬며시 미소 짓곤 하였지요. 작은 분원에 살아본 일이 거의 없는 저는 백 명이 넘는 큰 공동체에 살면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만큼 관계의 폭을 넓히는 계기도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서로 많이 부대끼는 그만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조금씩 모가 깎이고 둥글어짐을 믿으니까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도 결국은 사람을 사랑하기 위한 일, 많은 이들을 골고루 사랑하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먼저 위하는 모범을 보여주셨지요.


그분을 제대로 닮고 싶고 따르고 싶어 수도 생활을 선택한 제가 사람들을 좀 더 따뜻하고 깊이 있게 헤아리지 못하고 그냥저냥 살아가는 것 같아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약속을 미리 하고 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여기저기서 불쑥 찾아오는 이들도 많다 보니 요즘은 (오전엔 침방에서 조용한 시간을 갖고) 오후에 주로 글방에 나와 사람을 만나는 일에 시간을 할애할 적이 많습니다. 맘씨 고운 중간 안내실 수녀님들이 제 눈치를 보아가며 연결해준 갑작스런 만남을 통해 잠시나마 아름답고 따뜻한 힐링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도 여러 번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 오후엔 오래전부터 어느 교우 분의 부탁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간담회가 있는데 그 대상이 다 몸과 맘이 아픈 분들이라 조금은 긴장이 되기도 하지만 그분들 안에 계신 예수님께 인사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려고 합니다.


함께 시를 읽으며 대화하다 보면 낯선 얼굴도 금방 가깝게 여겨지리라 믿습니다. 오후엔 바닷가에 나가서 그분들이 좋아할 만한 맛있는 단팥빵을 사고 솔뫼 수녀님들이 보내준 허브차도 미리 준비해두었답니다.


‘하루를 사는 일이 사람의 일이라서 우린 또 그 사람을 기다립니다. 사람과 만나는 일 그것 또한 사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직이 이 구절을 되뇌며 오늘도 제게 오는 사람을 기다립니다. 넓은 들판을 바라보며 들판의 영성을 살아가실 수녀님께 존경과 사랑을 드리며 제가 좋아하는 이 짧은 시를 기도처럼 낭송해봅니다.


올라 갈 길이 없고/ 내려갈 길도 없는 들

그래서/ 넓이를 가지는 들

가진 것이 그것 밖에 없어/ 더 넓은 들


_ 천양희의 <들>


벌써 십 년이 넘었지만 제가 많이 아플 때 보여준 수녀님의 진정 어린 사랑과 배려를 늘 잊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을 더 많이 더 깊이 사랑하기 위해 스스로를 낮추며 겸손하게 열려 있는 사랑의 들판이 되기로 해요. 우리 함께 지금 여기서부터, 그리고 영원히!




이해인

부산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수녀회에서 몸담으며 수도자의 삶과 작가의 길 속에서 기쁨을 찾는 수녀 시인입니다. 1976년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출간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다수의 시집과 산문집 《꽃이 지고나면 잎이 보이듯이》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기다리는 행복》 등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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