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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부엌 수업
박방님 할머니의 갈치호박조림과 무생채겉절이 2019년 2월호
 
박방님 할머니의 갈치호박조림과 무생채겉절이

 


열 가구 남짓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전남 화순 산골짝 어시랑마을에서 박방님(72) 할머니는 부지런하기로 제일이다. 놀리는 땅 하나 없이 논둑에는 호박과콩을 심고, 기어 올라갈 자리만 생겨도 오이, 수세미,동부 등을 심는다.


조그만 자투리땅이라도 할머니는 무언가를 심고 탐스럽게 길러낸다. 가을걷이가 끝난 뒤라지만 마을 뒤꼍에 있는 할머니네 텃밭에는 지금도 시금치, 배추, 마늘 등 먹거리가 풍성하다.


“여는 장이 멀어서 다 요로코롬 밭에서 나는 걸로 상을 차린당께. 시방은 시금치가 맛있을 때여. 죽순은 요 뒤꼍 대숲에서 뜯어온 거시고.”


자동차로도 20분 가까이 좁은 산길을 힘겹게 달려와야 하는 깊은 산골짜기에서 읍내까지 장을 보러 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버스도 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한평생 어시랑마을에서 살아온 할머니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눈치다. 사시사철 먹거리를 품어주고 또 내어주는 산과 들이 온갖 식재료를 보관해놓는 냉장고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다만 할머니의 천연 냉장고에는 다때가 있어서 미적거리지 않고 민첩해야 챙겨 먹을 수가 있다. 조금만 굼떠도 때를 놓치기 십상이다. 제철 식재료를 알뜰하게 먹으려면 부지런하게 계절을 살피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자연의 선물이자 노동의 대가로 차려진 끼니만큼 귀하고 감사한 게 어디 있으랴. 여기에 할머니의 야무진 손맛까지 더해져 소박하지만 먹음직스러운 밥상이 완성된다. 바지런한 성격은 부엌일에도 예외일 수 없다. 농사일로 바쁜 와중에도 여러 나물로 장아찌를 만들고, 민들레 김치, 상추꽃대 김치 등 철마다 각종 김치를 담근다. 자연이 내어주는 보배로운 재료들을 허투루 버리지 않기 위해서다. 여기저기 넣어보며 더 맛있는 궁합도 찾아냈다.


“갈치 조릴 적에 호박을 넣었더니 부드럽고 달짝지근한 게 맛나더라구. 내 그래가지고 호박을 냄겨뒀구먼.”


끝물이라 마지막 하나 남은 둥근호박도, 막내아들이 제주도에서 잡아왔다는 자연산 갈치도 손님 상차림을 위해 기꺼이 내놓는다. 냄비 안에 납작하게 썬 호박을 깔고 그 위에 토막 낸 은빛 갈치를 얹어 불 위에 올린다. 갈치조림이 익어가는 사이에도 부엌은 분주하다. 시금치, 죽순, 무생채를 무치느라 할머니는 굽은 등을 펼 겨를이 없다. 할머니의 구부정한 등에는 한평생 바삐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삶의 무게가 내려앉아 있다.



시집오기 전만 해도 무남독녀 외동딸로 애지중지 자라온 그녀였다. 몸이 약했던 어머니는 딸 하나 낳고 난 뒤 더 이상 아이를 갖지 못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라꼬 아버지가 얼매나 구여워했는지 몰러. 시장 댕겨오시면 나 줄라고 엿을 한 보따리 사와가꾸 이 다 버려부렸제. 일도 잘 안 시켰당께.”


하지만 달디단 엿을 입에 물고 들판을 뛰어다니던 어린 소녀는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8남매의 엄마가 되어 억척스럽고 쓰디쓴 세상과 마주해야 했다.



l 벼농사 자식농사에 바친 한평생


“우리 영감이 인정은 많았지. 혼자 된 장모님을 모시고 살았으니께. 근디 한량이었당께. 허구헌 날 술 먹고 노름하느라 농사는 뒷전이었지. 긍께 일은 거진 다 내가 했제.” 30마지기 벼농사는 다 그녀 몫이었다. 게다가 손이 야무지다고 동네 아낙들은 일이 생겼다 하면 너도나도 그녀를 부르기 일쑤였다. 아이를 업고 김을 매고 못자리 만들고 보리 베고…. 그때부터 삶의 무게가 등에 내려앉기 시작한 것일까. 허리 한번 펴기 힘들었을 할머니의 지난 세월이 애잔하게 그려진다.


할머니는 슬하에 여덟 명의 자식을 두었다. 아들이 제일이던 시절, 딸만 여섯을 내리 낳고 일곱 번째에 어렵사리 아들을 얻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사내 혼자는 외롭다며 남자 형제가 있어야 된다고 다그쳤다. 또 한 번 무거운 몸으로 농사일과 집안일 가리지 않으며 열 달을 지냈다. 아들 한 명 더 낳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의 짐을 벗을 수 있었다. “친정 엄마가 많이 기뻐하셨제. 당신 몫까지 내가 자식을 다 놓아서 좋다고 하셨당께.”


벼농사에 자식농사까지 더욱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아이들이 순해서 어느 한 명 속썩이지 않고 컸다는 것이다. 특히 공부 잘하고 반장을 도맡아 하던 큰아들은 집안의 자랑이었다. “옛날에는 반장이 소풍날 선상님 도시락까정 싸가지고 갔당께. 성가시긴 해도 기분은 좋았제.”


어디 소풍 도시락뿐이랴. 논으로 밭으로 들밥을 실어 나르는 것도 그녀의 일이었다. 밥심으로 짓는 농사이기에 정성을 꾹꾹 눌러 담아 식사를 준비했다. 투박하지만 제철 식재료로 알차게 차린 끼니와 새참을 이고 산길을 얼마나 오르내렸던가. 지금도 여전히 할머니는 도시락을 싼다. 들일하러 가는 막내아들을 위해서다.


 



찬장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찬합이 바로 막내아들의 도시락이다. 다른 자식들은 도시에 나가 살고 막내아들이 어시랑마을에서 할머니와 함께 벼농사를 짓고 있다. 할머니도 이제 일흔이 넘고 허리도 많이 굽어 예전처럼 힘을 쓰지는 못하지만 야무진 손끝과 부지런한 성격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높고 후미진 산밭에도 고추를 키우고, 대숲 가장자리에도 돼지감자를 심어 몸도, 땅도 놀리지 않는다.


“워따, 옛날에 고생한 거 비하믄 시방은 호강이여. 그때는 뼈빠지게 일해서 노름빚 갚기 바빴어. 놀믄 뭐하나. 벌어서 손주들 용돈 줘야제.” 농한기인 요즘에도 할머니는 장에 내다 팔 콩을 골라내느라 심심할 틈이 없다. 20여 명이나 되는 손주들 모두에게 용돈 한 푼이라도 쥐어주려면 바쁠 수밖에…. 상 위에 펼쳐놓은 콩 중에 깨지고 썩은 것들을 골라내다 보면 긴긴 겨울밤 시간은 잘도 간다.


침침한 눈, 뻐근한 목에도 손주들 얼굴을 떠올리며 할머니는 손을 멈추지 않는다. 사랑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다고 했던가. 박방님 할머니의 몸에 밴 부지런함이야말로 쉽사리 감출 수 없다.



글 김윤미 기자 | 사진 최순호






갈치호박조림(4인분)


조리법

1. 비늘을 제거한 갈치를 토막 낸다.

2. 호박은 납작하게 썰어 간장 3큰술, 다진마늘 1큰술, 고춧가루 2큰술을 넣고 버무린다.

3. 버무린 호박을 냄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토막 낸 갈치를 올린다.

4. 물 300L를 붓고 소금을 넣어 간을 한다.

5. 당근, 파, 양파 등을 썰어 올린다.

6. 중간 불에 20분 정도 푹 익혀준다.


재료

갈치 2마리, 둥근호박 1/2개, 당근, 파, 양파, 간장, 다진마늘, 고춧가루, 소금

 

l 산골 동네로 귀농한 이웃집 부부네 아이를 할머니는 손주처럼 예뻐하며 살뜰히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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