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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가 사는 법
국악인 송소희 2018년 10월호
 
국악인 송소희

 


소릿길에서 발견한 ‘나만의 색깔’

국악인 송소희




“저는 사실 인터뷰를 많이 하진 않아요. 국악에 대한 주관이 계속 바뀌는 편이라 확신 있게 답할 수가 없더라고요. 15년 넘게 민요를 불러오고 있지만 아직 제가 어떤 국악인인지 알아가는 중이거든요. 그런데 그 과정이 재밌어요. 국악을 다양한 방법으로 즐길 수 있으니까요.”


경기민요 소리꾼 송소희(22)의 솔직한 대답에 국악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모름지기 국악인은 대중 가수보다 뚜렷한 음악관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많은 사람의 생각일 것이다. 모든 게 급속도로 변해가는 시대에서 확고한 철학 없이는 지키기 어려운 가치가 전통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다섯 살 어린 나이부터 전통문화 계승자의 길을 걸어온 송소희라면 음악 철학부터 사소한 습관까지 어느 것 하나 쉽게 바꾸지 않는 완고한 사람일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생각의 변화를 인정하고 즐기는 젊은 국악인이었다.


항상 자신이 지금 무엇을 원하는 지 살핀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현재만큼 의미 있는 시간은 없어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쌓아온 이력이나 앞으로의 목표보다 근황에 먼저 관심이 간다. 그녀가 얼마 전 뉴에이지 밴드 ‘두번째달’과 경기민요를 현대적인 감성으로 편곡해 만든 앨범 《모던 민요》는 ‘국악이 맞나?’ 싶게 감미로운 선율로 듣는 이의 감성을 자극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괄괄하면서 구성진 민요 대신 부드러우면서도 각각의 곡 분위기에 맞게 자유자재로 변하는 송소희의 목소리는 듣는 재미를 더한다. <매화타령>에서는 청아한 음색이 시골의 목가적인 봄 풍경을 연상시키고, 흥겨운 곡조의 <군밤타령>에서는 짧게 끊어 부르는 창법이 귀엽게 들린다.


“색다른 민요를 불러보고 싶어서 두번째달에게 제가 먼저 컬래버레이션을 제안했어요. 제 목소리를 다양한 분위기로 바꿔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이번 앨범에서는 전통 창법을 고집하기보다 각각의 곡에 어울리는 소리를 찾으려고 했죠.”


모던민요 외에 새로운 음악 프로젝트도 기획한 그녀는 다른 장르와의 협업으로 음악 영역을 넓혀나가는 중이다. 피아니스트나 인디밴드 같은 다양한 분야의 뮤지션들과 경기민요를 편곡하고 함께 무대를 꾸며 유튜브에 공개하는 ‘기진맥진’ 프로젝트도 이러한 열정의 산물이다. 공연의상도 현대 음악으로 재탄생한 민요와 어울리도록 편한 일상복차림으로 변화를 주었다.



“전에는 한복을 입지 않으면 소리가 잘 안 나오는 것 같아 엄청 불안했어요. 한복이 집에 250벌 정도 있을만큼 공연할 때 한복만 즐겨 입었죠. 그런데 지금은 평상복이 한복만큼 좋아졌어요. 제가 부르는 민요도 전과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개성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 흥미롭고요.”


국악기가 반주를 담당하는 전형적인 국악 무대에 주로 섰던 그녀는 어째서 생소한 무대로 자리를 옮긴 것

일까. 민요에 새로운 감성을 불어넣으려는 일련의 시도들은 모두 그녀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 시작되었다.


단국대학교 국악과 3학년인 그녀는 학교를 평생 다니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대학 생활을 재밌게 이어가고 있다. 친구들과 함께 국악을 공부하며 자신의 실력을 가늠해볼 수 있어 좋다고 말하는 그녀. 누구나 남들과 비교되면 자신의 장점보다 단점이 눈에 잘 띄어 의기소침해지기 마련이다.


‘국악 신동’이라 불리며 자란 실력자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기가 더 어려웠을 법한데 그녀는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즐겁기만 하다. 눈만 마주쳐도 웃게 되는 마음 맞는 친구들을 만난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진로에 대해 혼자 고민한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소리를 탐구하는 젊은 명창 일곱 살 때 한 노래자랑 방송 프로에 출연한 후로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머릿속은 물음표로 가득했다. 국악을 처음 시작한 계기도 엄마 손에 이끌려 학원에 간 것이었기에 무작정 사람들이 박수쳐주는 길로만 가는 건 아닌지, 자신이 원하는 길이 맞는지 늘 불안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느라 예비 국악인들과 가창 실력을 견줘볼 기회도 없어 자신에게 전문 소리꾼이 될 정도의 소질이 있는지도 판단하기 어려웠다. 꿈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흥미도 떨어져 기계적으로 민요를 부르게 되었다. 국악이 점점 지루해지던 무렵, 전환점이 찾아왔다.


“국악관현악단과 주로 공연하다가 고2 땐가 클래식 오케스트라와 공연할 기회가 있었어요. 서양 악기와 접목되니까 민요가 확실히 화려해져서 다르게 들리더라고요. 그러다 어느 날 방에서 혼자 연습하는데 제 목소리가 너무 멋있게 들리는 거예요. 악기들이 없는데도 불구하고요. 목소리 만으로도 아름다운 음악이 한국 민요라는 걸 그때 느꼈죠.”


걸어오던 길에서 조금 방향을 틀어야 가야 할 길이 보일 때가 있다. 그녀에게는 민요에 대한 자부심이 솟아오른 그때가 소릿길을 인생길로 받아들인 순간이었다. 망설이지 않고 국악을 전공하기로 결정한 후부터 민요는 ‘부르는 음악’에서 ‘탐구하는 음악’으로 바뀌었다.


학업에 열중할수록 중·고등학교때부터 체계적으로 국악을 공부해온 다른 친구들에 비해 자신은 이론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그러나 창피하기는커녕 몰랐던 사실을 발견하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국악 관련 서적을 탐독하고, 교수님에게 적극적으로 질문하며 이론을 배워가는 즐거움 속에서 그녀에게는 또다시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어떤 소리를 내는 국악인이 될 것인가.’


민요란 본래 당대를 살아가는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노래였다. 열심히 공부하며 민요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 갈수록 그녀는 오늘을 살고 있는 자신의 개성을 담아 불러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야 민요가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는 음악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는 앳된 이미지를 벗고 옛 창법만 따르기보다 자신만의 소리를 찾아 나서는 당찬 소리꾼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기진맥진 프로젝트’와 ‘모던민요’를 기획한 이유도 어떤 분위기의 민요와 자신의 목소리가 제일 잘 어울리는지 찾기 위해서였다.


“민요는 끊임없이 제게 질문을 던져요. 앞으로 어떤 민요를 부르고 싶은지, 내 목소리의 매력은 무엇인지…. 계속 답을 못 찾게 될까 봐 걱정되기도 하지만 멈추지 않으려고요. 한국인이라는 것만으로도 우리 음악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자질이 충분하지 않을까요? 민요를 부르면 제 자신이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젊은 국악인의 끊임없는 자아 탐구 덕에 대중이 색다른 민요를 즐길 기회는 더욱 늘고 있다. 《모던민요》는발매된 지 6개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한 유명 음악 사이트에 꾸준히 댓글이 올라올 정도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서로 다른 장르의 영화 일곱 편을 감상하는 것 같아요’ ‘100년 전 노래가 이렇게 세련되다니 놀라워요’ 등 국악의 참맛을 느낀 듯한 댓글 반응들을 보자 자신만의 음색을 찾는 그녀의 여정이 오래 이어져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녀가 새로운 시도를 할 때마다 민요를 즐겨 듣는 사람이 점점 더 늘어날 것이므로. 그때는 ‘어느 장르에나 어울리는 카멜레온 같은 목소리’가 송소희의 색깔이 되어 있지 않을까.



글 한재원 기자 | 사진 최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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