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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가 사는 법
바이올리스트 박지혜 2018년 6월호
 
바이올리스트 박지혜


 

 

팔색조 바이올리니스트의 이유 있는 변주

 

 

17세기 독일 현악기 제작의 명문가 과르네리에 의해 만들어진 바이올린 ‘페트루스 과르네리.’ 그중에서도1735년산 과르네리는 유독 음색이 깊어 세계 3대 명기 중 하나로 꼽힌다.


인터뷰를 앞두고 사진 촬영에 임하는 모습만 보면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34)의 손에 들린 악기가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1735년산 과르네리라는 사실을 알아채기 어려웠을 것이다. 천으로 만들어진 낡은 케이스에서 바이올린을 꺼내 포즈를 취하고는 다음 포즈를 위해 풀밭이나 바위 위에 아무렇지 않게 내려놓는 그녀에게서 악기를 특별 대우하는 자세는 보이지 않았다.


촬영 후 자리를 옮긴 그녀의 연습실에서는 실례를 무릅쓰고 짧은 연주를 부탁하자 흔쾌히 응하고는 울림이 좋은 공간에서 들려주고 싶다며 건물 복도로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공간임에도 거리낌 없이 연주에 심취하는 모습에서 ‘바이올린 신동’이라 불리던 세계적인 클래식 연주자답지 않은 소탈한 매력이 느껴졌다.


“자리를 가려가면서 연주하고 싶진 않아요. 아무리 위대한 악기도, 음악가도 듣는 사람이 있을 때 소용이 있는 거니까요.”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는 열네 살에 독일의 명문 음대 마인츠에 최연소로 합격, 독일 총연방 청소년 콩쿠르에서 2회 연속 우승하는 등 유년 시절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무엇보다 그녀는 열아홉에 독일 정부가 주최하는 콩쿠르에서 우승해 과르네리를 무상으로 대여 받는 영광을 안으며 천부적인 재능을 세계에 입증한 주인공이었다. 대여 기간을 연장하려면 1년마다 콩쿠르에서 우승해야 하는데 11년간이나 과르네리를 사용했을 만큼 뛰어난 연주력을 높이 산 한 음악 교수의 지원으로 그녀는 4년 전, 1735년산 과르네리의 진짜 주인이 되었다.


정통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의 길을 걸어온 그녀가 대중에게 들려주는 음악은 의외로 무척 색다르다. 세계적인 강연 무대에서 핸델의 <사라방드>를 록 버전으로 연주해 클래식을 듣는 또다른 즐거움도 안겨주었다.


“클래식에 관심 없는 사람도 제 음악을 친숙하게 느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분위기로 클래식을 편곡하거나 대중가요를 연주하죠.”


실제로 비발디의 사계, J.파헬벨의 캐논 등 클래식을 록 버전으로 편곡한 앨범 《바로크 인 록》은 미국에서 골든디스크로 인정받으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녀의 연주는 클래식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트로트 <무조건>을 재치 있는 안무까지 곁들여 연주하는가 하면 단독 콘서트에서 <강원도 아리랑>을 록밴드와 협연하며 청중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었던 그녀는 음악 활동에 있어서만큼은 언제나새로운 시도를 즐기는 모험가다.


“클래식에 관심 없는 사람도 제 음악을 친숙하게 느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분위기로 클래식을 편곡하거나 대중가요를 연주하죠. 곡의 의미를 알면 더 친근하게 느낄 것 같아 공연 중간에 토크 시간을 가져 곡의 탄생 배경이나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전하기도 해요. 무대에서 클래식 연주자도 됐다가 록밴드도 됐다가 강연자도 되는 거죠.”


명성 높은 클래식 연주자가 쉽고 재미있는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변신을 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바탕에는 음악이 가진 힘을 가슴 깊이 느꼈던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 마인츠 음대에 합격해 열네 살에 독일로 유학을 떠난 그녀는 오로지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하루 16시간씩 활을 잡던 노력파였다.


 
l 2년 전 미국 LA의 디즈니콘서트홀 공연. 세계적인 무대에 서면 자신만의 연주로 한국을 알리고 싶다는 바람이 생긴다.



그녀는 당시에 목표했던 1등이 ‘남보다 앞서는 1등’이었다고 회상한다.


“정상에 오른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이력만 뒤쫓다 보니 아무리 각종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도 제 자신의 연주에 만족하지 못했어요.” 남보다 뒤처지고 있다는 조급함과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압박감은 수년 동안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마음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그녀는 마음속 어두운 방에 주저앉아 한동안 바이올린을 잡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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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운 노래

그렇게 일상에서 음악을 모두 지우고 지내던 어느 날, 방 안에 웅크려 있던 그녀의 귓가에 어디선가 희미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가만히 귀 기울여보니 어린 시절, 엄마가 자장가로 불러주었던 <고향의 봄>이었다.


어떤 음악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그때 거실에서 나지막이 흥얼거리는 엄마의 목소리가 그녀의 마음 안으로 천천히 흘러들어왔다. 어린 시절 머리를 기대고 잠을 청하던 엄마의 등처럼 포근한 멜로디는 어두운 마음에 하나둘 빛을 밝혀주었다.


“그때 다시 음악을 할 이유가 생겼어요. 내가 받은 위로를 사람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었죠. 화려한 음악도 좋지만 편안한 음악을 들려줘야겠다 결심하고 다시 바이올린을 잡았어요.”


음악가라면 누구나 위안이 되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인지 가끔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음악의 의미가 그녀에게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기에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열망이 누구보다 강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연주하고픈 음악이 생기자 그녀가 서는 무대에 변화가 생겼다.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에 그치지 않고 음악과 멀어 보이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녔다.


소록도나 병원에서 <섬집 아기> <고향의 봄> 같은 동요로 마음을 달래주는가 하면 <모스크바의 추억> <희망의 나라로>처럼 귀에 익숙한 클래식으로 교도소 수감자들의 메마른 가슴에 희망의 선율을 불어넣었다.


그녀의 활동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병원이나 교회 등으로부터 공연 요청을 받기도 하지만 해외 투어나 콘서트의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응하지 못할 때도 있다. 미처 찾지 못한 곳들을 비시즌에 찾아가 연주하는 공연 프로젝트인 <사랑 쌓기>를 시작한 그녀의 최근 행보에서 그동안 독주회를 펼쳐온 뉴욕 카네기홀, 워싱턴 케네디센터 같은 대형 무대만큼 작은 무대 또한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이 엿보인다.




그녀의 폭넓은 음악 활동을 많은 매체에서 ‘연주봉사’ ‘음악 치료사’ 같은 단어로 포장하지만 남을 위해 좋은 일하는 사람처럼 비춰지는 것이 그녀는 부끄럽기만 하다.


“연주하면서 가장 힘을 얻는 건 바로 제 자신이거든요. 제가 느끼는 감동이 200, 300퍼센트가 되어야 그 감정이 흘러넘쳐서 관객에게 가닿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바이올린의 음색에 완전히 빠져들어 연주하죠. 그러면 마음이 평온해져요. 음악은 저에게 수단일 뿐이에요. 누구든지 바이올린 소리를 듣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기분이 좋아진다면 어떤 음악적 도전도 마다하지 않을 거예요.”


그녀가 요즘 매일 듣는 음악은 <베토벤 심포니 7번 2악장>이다. 유튜브에서 정기적으로 여러 버전의 클래식을 선보이는 프로젝트를 준비하느라 듣게 된 곡이다. 열렬한 팬인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노래에서 영감을 받아 편곡 중이라는 <불타는 베토벤>부터 <마초적인 베토벤> <희망찬 베토벤> 등 하나의 원곡을 여러 버전으로 재탄생시키는 이유도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듣도록 하기 위해서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바이올린 소리가 유난히 살갑게 마음속을 파고든다면 어제보다 한 뼘 더 행복해진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라는 생각이 들 것 같다. 다른 이의 기쁨일 뿐인데 신기하게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글 한재원 기자 | 사진 최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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