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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로 다시 보는 영화
그녀(Her) 2016년 4월호
 
그녀(Her)

 l 신화로 다시 보는 영화 l



그녀(Her) 

감독: 스파이크 존스(2013)



 



l 프랑스 화가 장 라우가 그린 <자신이 만든 조각과 사랑에 빠진 피그말리온>. 아프로디테가 조각상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 주고 있다.

'그녀(Her)'는 기술의 발달이 극에 달한 정보화 시대에 인간이 겪는 외로움과 정체성의 혼란을 다룬 영화다. 영화 속의 테오도르는 편지 대필 작가다. 의뢰인들의 가장 개인적이고 깊은 감정에 개입하여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유능한 대필 작가지만 자신은 외롭고 공허한 삶을 살고 있다. 어려서부터 만들다시피 해 결혼까지 한 아내와는 이혼을 앞두고 1년 째 별거 중이다.


대화 상대가 필요했던 테오도르는 인공 지능체인 ‘사만다’를 구입한다. 사만다와 대화를 시작하면서 그의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뛰어난 직감을 가지고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고, 계속 진화하는 인격체로서의 인공 지능, ‘사만다’는 기적의 존재였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의 일정 관리는 물론 스팸 메일을 지우고, 중요도에 따라 이메일을 읽어 주고, 교정도 잘 보고 운율까지 맞출 줄 안다. 심지어 대필 편지 가운데 좋은 것들을 출판사에 보내 책을 만들기도 한다.


사만다의 진짜 매력은 ‘그녀의’ 성격에 있었다. 그녀는 테오도르를 이해해 주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항상 그의 말에 귀 기울여 주고, 위로해 주고, 함께 슬퍼하고 기뻐한다. 비위를 거스르거나 비난하지 않고 언제나 상냥하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에게 편안함과 신뢰를 느껴 모든 비밀을 털어 놓는다.


그러나 사만다가 프로그램화된 수준을 넘어 서면서 문제가 생긴다. 그녀는 물리적 실체가 없이 가상 세계의 존재인 자신의 정체성에 회의를 느낀 것이다. 사만다를 비롯한 다른 인공 지능 운영 체계들은 자신들에 대해 알고 싶다는 욕구에 빠져 이미 1970년대에 죽은 철학자 한 명을 인공 지능으로 만들어 이런 문제를 깊게 논의한다. 자신들의 존재가 덧없음을 느끼자 이들은 모두 일시에 사라진다. 그러자 사만다 같은 인공 지능 운영 체계에 의존해 살아가던 인간들은 망연자실한다.


옛날 키프로스 섬의 아마토스라는 폴리스(도시국가)에 피그말리온이란 솜씨 좋은 조각가가 살았다. 이 폴리스의 여인들은 여신 아프로디테의 저주를 받아 억누를 수 없는 욕정 때문에 아무 남자에게 몸을 허락했다. 이런 꼴을 본 피그말리온은 여자들을 멀리했다. 대신 이상형의 여인을 상아에 조각해 그 여인상만을 바라보며 지냈다. 그러다 조각상과 사랑에 빠진다. 아프로디테를 지극히 섬겼던 피그말리온은 조각상에 생명을 달라고 여신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아프로디테는 이를 측은히 여겨 조각에 생명을 불어 넣어 주었다. 이후 피그말리온은 그 여인과 행복하게 살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자신이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면들을 열정적으로 기대하고, 그 기대에 부응할 때마다 칭찬하면 상대방 역시 그런 이상형으로 발전해 나가는 현상을 ‘피그말리온 효과’라 한다. 영화 ‘그녀’에서 테오도르는 사만다에게 자신이 바라는 이상형의 모든 특성을 암시하고, 사만다는 이에 맞춰 진화하면서 ‘이상적인 사랑’을 한다. 정보 기기의 발달과 정보망의 확장으로 오히려 대화와 사귐이 단절된 현대인들에게 가상 세계가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영화 끝 부분에서 반전이 일어난다. 테오도르처럼 사만다에게 접속한 사람이 8,316명이나 되고, 그 가운데 사랑에 빠진 사람도 641명이나 되었던 것이다. 사만다는 ‘마음은 빈 상자가 아니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자신의 사랑은 순수했다고 변명한다.


자신이 만들어 낸 존재를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상대가 더 이상 자신의 창조물이 아닌 독립된 인격체임을 인정해야만 한다.


테오도르는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던 아내 캐서린이 성공하도록 성심을 다해 도와 준 끝에 결혼까지 했지만, 아내를 동등한 인격체로 받아들이지 않아 실패한다. 또 가상 세계에서는 사만다와 깊은 교감을 나누지만 사만다를 운영 체계로만 여길 뿐 진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회의를 느낀 사만다는 스스로를 파괴하고 사라진다. 테오도르는 자신의 이상형을 만들어 내는 데까지는 성공을 하지만 그 이상형을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로 받아들이지 못해 현실과 가상 세계 모두에서 사랑에 실패하고 만 것이다.



유재원_ 한국외국어대 그리스학과 명예교수로 있으며 평생 그리스언어학과 그리스학을 가르쳤습니다. 한국그리스학연구소장을 비롯해 한-그리스협회장을 맡아 두 나라의 문화 교류와 발전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유재원의 그리스 신화 1, 2권>, <터키-1만년의 시간 여행 1, 2권> <신화로 읽는 영화> <영화로 읽는 신화> <유재원 교수의 그리스, 그리스 신화> 등을 썼습니다.


영화 속 숨겨진 의미를 신화로 풀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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