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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왔습니다 2016년 4월호
 
희망이 왔습니다

 

희망이 왔습니다


그림. 박정인

 

시인이자 수필가였던 고(故) 피천득 선생님은 살아계실 때 성당에 자주 가시질 않았습니다. 프란치스코라는 영세명도 갖고 계셨지만, 신(神)과 관련해선 조금은 애매한 말씀을 하셨지요.


“솔직히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느님의 존재를 믿기도 했다가 안 믿기도 해요. 갓난아기를 바라볼 때나, 이른 봄 나뭇가지에 파릇한 새순이 돋는 것을 볼 때는 ‘아, 이게 신의 사랑이구나!’ 싶다가도, 악(惡)한 것을 보면 신의 존재에 회의를 느끼게 되지요.”


그런데 제가 요즘 똑같습니다. 제 영세명도 우연히(?) 피 선생님과 같은 프란치스코입니다. 세상이 너무나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부모가 자신이 낳은 자식을 처참히 죽이고, 종교라는 이름으로 보복과 살생을 거듭합니다. 길거리에선 사람에 대한 따듯한 눈길 대신 무관심과 두려움이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신은 지금의 인간을 어떻게 바라볼까. 과연 신이 있다면 어떤 대안을 갖고 있는걸까.

매일매일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찾는 게 종교라고 했지요. 인생에 아무 의미가 없다고 판단된다면 ‘종교는 없다’고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큰 의미는 접어두고라도, 우리 주변에서 아주 사소한 변화를 관찰하다 보면 거기에서 종교의 작은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기합니다. 온갖 세상사로 골머리가 아프다가도 혼자 앞산의 계곡을 따라 조용히 산길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존재(存在)’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살아 있는 생명의 소리와 빛깔, 봄의 숨소리! 죽은 듯 얼었던 대지(大地)에는 벌써 촉촉한 물기가 느껴집니다. 녹색의 이끼가 낀 바위와 산벚나무는 물기운을 절반쯤 머금었고요.


‘잔인한 4월’은 저만치 멀어졌고, 가슴 달뜨는 봄, 봄, 봄입니다. 희망이 왔습니다. 신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질 않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내 곁에 아주 가까이 있다는 것을….



발행인 김성구 song@isamto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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