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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에 만난 사람
오늘의 나를 만든 건 열여덟 번의 실패입니다 2016년 4월호
 
오늘의 나를 만든 건 열여덟 번의 실패입니다

이달에 만난 사람 | 엄홍길


오늘의 나를 만든 건

열여덟 번의 실패입니다


가까이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천m 16좌 완등에 성공한

엄홍길 대장도 이제야 조금씩 산이,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종원 기자 | 사진 한영희



엄홍길휴먼재단 사무실이 자리한 서울 장충동 언덕바지엔 여태 꽃샘추위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눈 덮인 히말라야 산봉우리를 제집처럼 오르내리던 엄홍길(56) 대장의 의 얼굴이 생각보다 수척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목소리에서도 엷은 감기기운이 묻어났다.


‘탱크’라는 별명답게 8천m 고봉들을 차례로 정복해온 베테랑 산악인도 쉴 틈 없이 계속되는 일정과 스산한 날씨 탓에 어지간히 피로가 쌓인 듯했다. “재단 일에 신경 쓸 게 많은데다 강연이나 모임 등 스케줄이 계속 잡혀 있어 하루도 집에서 편히 쉴 수가 없어요. 오늘도 인터뷰 끝난 뒤에 대전에 내려가야 해요. 며칠 후에는 또 네팔에도 갔다 와야 하고.”


그렇게까지 몸을 혹사할 필요가 있느냐는 우문(愚問)에 굳어 있던 엄 대장의 얼굴에 미소가 비쳤다. “신(神)과의 약속을 이행해야 하기 때문이죠. 8천m가 넘는 높은 산을 수십 번이나 오르면서 얼마나 많은 고비를 넘겼겠어요.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마다 신 앞에 무릎을 꿇고 ‘살아서 내려가게만 해주시면 그 은혜를 잊지 않고 남을 위해 봉사하겠습니다’ 하고 빌었어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재단을 만들어놓고 쉬엄쉬엄 할 수는 없잖아요.” 한평생 아슬아슬한 생사의 경계를 건너온 한 사내의 진심이 담긴 대답이었다.


생각해보면 언젠가부터 엄홍길이라는 이름은 인간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히말라야와 이음동의어였다. 지난 2000년 세계에서 여덟 번째, 아시아 최초로 8천m 14좌를 모두 완등하고, 2004년 카첸중가 위성봉인 알룽캉(8,505m), 2007년 로체 위성봉인 로체샤르(8,382m)까지 올라 ‘세계 최초 히말라야 8천m 16좌 완등’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것도 ‘엄 대장’이란 호칭으로 더 친숙한 엄홍길이었다.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하며 고산 정복에 나서기 시작한 뒤 20년 동안 엄 대장은 서른여덟 번이나 히말라야 정상에 올랐다.


“모두들 내가 스무 번이나 8천m 정상을 밟았다는 사실만 기억하지, 열여덟 번 실패했다는 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오늘의 나를 만든 건 그 열여덟 번의 실패예요. 실패를 통해 목표에 대한 간절함을 확인하고 다음의 성공을 준비할 수 있었거든요. 산에서 내려올 때마다 세상을 새로 배웠던 것 같아요.” 최악의 순간은 비켜왔지만 그 역시 산에서 숱한 죽음을 만났다.


등반 중 목숨을 잃은 여섯 명의 동료들과 네 명의 세르파들, 가족의 죽음 앞에 망연자실하던 유가족들의 모습은 많은 시간이 지났어도 엄 대장의 뇌리에 아픔으로 남아 있다. 산을 오르다 생긴 영광의 상처들은 그의 몸에도 고스란히 남앗다. 대표적인 게 98년 안나푸르나(8,091m)에 네 번째 도전할 때 빙벽에서 미끄러져 오른발이 180° 돌아가고 정강이뼈가 산산조각 난 사고였다. 2박3일 동안 사경을 헤매며 절벽을 기어내려 왔다. 모두들 살아 돌아온 게 기적이라 했다.


사고 후유증으로 엄 대장은 발바닥 전체에 힘이 전해지지 않는다. 발목이 구부러지지 않아 발끝으로만 땅을 디디니 정상인 보다 몇 배 힘이 드는 게 당연하다. 그 몸으로도 기어이 다음 해 안나푸르나 정상을 밟을 수 있었던 건 그 때의 실패를 거울삼아 산에 순응하는 법을 배운 덕분이었다.


“성공만 계속됐다면 자만심이 들어 언젠가 큰 화를 자초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난 다행히 일찍 실패했기 때문에 나를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된 거였죠. 실패를 두려할 필요는 없어요. 성공보다 실패를 통해 얻는 게 더 많거든요. 그걸 미리 알았다면 산에서 목숨을 잃는 목숨을 잃는 일도 없을 테고요.”


문득 히말라야에서 목숨을 잃은 동료, 후배들 생각이 나는지 그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하지만 엄 대장을 아는 산악인 후배들은 그가 얼마나 대원들을 아끼고 사랑했는지를 생생히 증언한다.


그는 산악인 후배들이 누구보다 믿고 따르던 든든한 선배였다. 산에서만은 누구보다 냉철하고 엄격하게 변하는 ‘엄 대장님’ 덕분에 후배들은 빙벽 앞에서도, 눈보라 속에서도 두려움 없이 정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엄 대장은 산이 감춰둔 또 하나의 얼굴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욕심을 부리는 순간, 인자하게만 보이던 산은 순식간에 무서운 사신(死神)으로 돌변한다는 걸….


 더 이상의 인명 피해 없이 돌아올 수 있었던 것만 해도 ‘오르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었던’ 겸손과 조심성이 낳은 최선의 결과였다. “그래도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그때는 몰랐던 것들, 다 안다고 자만했던 것들이 자꾸 마음에 걸리는 거죠. 산 앞에서는 겸손해야 해요. 그런데도 올라갈 때는 앞만 보고 가느라 내 위치가 어디인지, 내 앞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지 못할 때가 많았던 것 같아요. 우리 삶도 그렇잖아요. 지나고 나서 뒤늦게 후회하는 거 말예요.”

필생의 목표였던 16좌 완등을 끝낸 뒤 그는 더 이상 고산 등반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산에 대한 갈망이 완전히 사그라진 것일까?


“원하던 바를 다 이뤘잖아요. 애초에 세웠던 목표가 16좌였으니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죠. 신이 허락해 준 한계를 알고, 거기에서 욕심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해요. 그러지 않았다면 나도 진즉에 눈 속에 잠들어 있겠죠.”


산에서의 성찰은 자연스레 엄 대장을 산 아래 사람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끌었다. 산에 오르기를 멈춘 그는 대신 2008년부터 ‘엄홍길 휴먼재단(www.uhf.or.kr)’을 통해 세상의 낮은 곳으로 나눔의 마중물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그 노력은 ‘마음의 고향’ 네팔에 열여섯 개의 학교를 지어주는 ‘휴먼스쿨 프로젝트’로 구체화됐다.


현재 엄 대장과 휴먼재단은 네팔에 열한 번째 학교를 선물했다. 지난해 네팔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 대한적십자 긴급구호대장으로 가장 먼저 현장에 달려간 것도 ‘엄 대장’이었다. 그런가하면 국내에서도 엄 대장은 ‘청소년 희망원정대’를 운영하며 청소년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자신이 얻은 경험과 지혜를 아낌없이 나누고 있다.


“이를테면 문제아와 모범생이 산을 함께 오르며 도전하는 삶의 가치에 대해 깨우치도록 하는 거죠. 등산을 하면서 동료애, 약속의 소중함, 희생정신, 자존감을 기르는 법 등을 길렀으면 해요. 산을 통해 청소년들의 정서함양과 자기존재에 대한 깨우침을 돕고 싶어요. 그것 또한 히말라야 산이 내게 맡긴 역할이니까요.” 


어느새 희끗희끗하게 변해버린 반 백발 머리가 그와 제법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그에게서 히말라야가 보였다. 그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위에서 본 것에 대한 기억을 가슴에 안고 아래에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등산’이라는 것을!


 

 


엄홍길 대장이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실패를 기회로 만드는 등산과 하산의 기술’

아우름10 <산도 인생도 내려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에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025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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