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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부엌 수업
양재순 할머니의 쥐엄떡 2014년 3월호
 
양재순 할머니의 쥐엄떡



할머니의 부엌수업 ㅣ  양재순 할머니의 쥐엄떡


우리 사이, 쫄깃쫄깃

 

경기도 포천의 교동마을은 옛터가 수몰되어 근처 고지대에 새로 자리를 잡은 마을이다. 그곳에서 양재순 할머니(68세)는 한때 100마리가 넘는 젖소를 키웠다. 수몰과 함께 그 많은 젖소들을 보내고 나니 널찍한 새집이 허전하여 강아지 여섯 마리를 들였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분주하다. 스포츠 댄스를 배우고, 성당에 나가고, 야트막한 산을 골라 할아버지와 함께 등산도 다닌다. 그 꽉 짜인 스케줄을 뚫고 딱 하루 한가하다는 월요일에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의 부엌에선 벌써 한참 감자와 고구마, 밤과 강낭콩이 김을 뿜으며 삶아지고 있었다. “옛날엔 먹을 게 없어서 우리 밀만 넣었는데도 구수하고 맛있었어.”

반죽을 되는 대로 쥐어 일꾼들 새참으로 내놨다고 하여 쥐엄떡. 감자와 고구마 등을 물이 자작해지도록 삶아 밀가루와 감잣가루를 반씩 섞어 익반죽한 것을 뚝뚝 떼어 넣은 다음 팥가루를 겹겹이 뿌린다. 반죽이 익기를 기다렸다 주걱으로 속을 으깨가며 잘 섞으면 고소하고 달콤하고 쫄깃한 맛이 간식으로 그만이다.

할머니가 새댁 시절 만들곤 했던 쥐엄떡은 그렇게 반가운 음식만은 아니었다. 일찍 부모를 잃고 큰집에서 자란 할아버지에게 시집온 할머니는 처녀 시절 오빠 셋과 남동생 하나 사이에 태어난 고명딸로 곱게만 자랐다. 하지만 시집오자마자 농사를 크게 짓는 큰집 때문에 물 한 방울 묻혀본 적 없던 손으로 하루 다섯 끼를 해대기 시작했다. 밥 짓다 보면 하루가 갔다.

옛이야기를 들려주며 쥐엄떡을 섞는 할머니 옆에서 할아버지가 “덕분에 오랜만에 쥐엄떡 먹겠네” 하면서 지나갔다. 서러운 더부살이와 고된 시집살이에서 배운 떡이지만 이제는 쥐엄떡을 좋아하는 조카딸이 조르기나 하면 가끔 하는 별식이 된 것이다. 넉넉하게 퍼 담은 쥐엄떡은 팥가루가 섞여 있어 시루떡 비슷한 맛이 나기도 하지만, 시장에선 보기 드문 울타리 강낭콩과 샛노란 고구마가 씹히는 것이 달랐다. 무엇보다 감잣가루를 섞은 반죽이 말랑하고 탱글하여 질리지가 않았다.

할머니는 덜어두었던 그 반죽으로 또 다른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육수도 내지 않고 맹물로 끓인 들깨 수제비였다. 보통 수제비 반죽보다 약간 질다 싶은 쥐엄떡 반죽을 넓게 펴서 끓는 물에 찢어 넣고 들깻가루를 풀어 끓이는 것이 전부이다. 그런데도 정말 진한 맛이다. 맹물에 소금으로 간을 했을 뿐인데 정말 진하고 고소해서 몸이 따뜻해진다.쥐엄떡은 속을 따로 넣지 않고 반죽과 함께 버무리기 때문에 만들기 쉽다.




쥐엄떡은 속을 따로 넣지 않고 반죽과 함께 버무리기 때문에 만들기 쉽다.






감잣가루를 섞은 밀가루 반죽과 들깻가루만으로 완성한 수제비는
백김치와 궁합이 좋다







감자와 고구마, 강낭콩, 은행 등 갖가지 속 재료가 들어가는 쥐엄떡은
맛도 있지만 영양도 풍부하다.



맛있는 음식을 뚝딱 만들어내는 할머니지만 뜻밖에 전업주부로 살지는 않았다. 품삯도 제대로 주지 않는 큰집에 지쳐 고향을 떠난 부부는 가진 것이 없었다. 보퉁이와 가방만 챙겨 버스를 타고 이사할 정도였다. 그렇게 고향과 타지를 오가다 인천에 정착해 살면서 부부는 나란히 공장과 회사에 나가 돈을 벌었다. 10년을 일하는 주부로 바쁘게 살다가 고향에 돌아왔지만 젖소를 키우느라 할머니는 여전히 바쁘기만 했다.

그처럼 고생이 많았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찌든 흔적 없이 밝기만 했고 금슬이 너무 좋았다. “우린 어딜 가든 함께 다녀요.” 할머니의 말처럼 할아버지는 차마 스포츠 댄스만은 함께할 수 없었을 뿐, 할머니를 데리러 가고 오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기사 노릇을 한다.

수몰과 함께 젖소를 처분하면서 할머니는 이젠 일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우리는 진짜 앞만 보고 살았어요. 지금 소원은 남은 인생 후회 없이 살자, 서로 아끼면서, 그것밖에 없어요.” 하지만 건강하고 부지런한 노부부가 진짜 놀기만 할 리가 없다. 할머니는 절대 두부를 사지 않고 직접 만든다. 정월이면 장을 담가 친지와 이웃들에게 퍼주고, 복분자도 심어 나눠주다가 맛있다는 성화에 못 이겨 조금은 팔기도 한다. 걷어낸 고춧대에 남아 시들어가는 고추마저 아까워 모아다가, 간장 양념에 볶아 장아찌처럼 밥맛 돋우는 반찬을 만든다.

밭에는 도라지와 고추, 마늘, 엄나무, 두릅…. “그냥 우리 먹을 것만, 쪼끔” 한다는데 종류와 양이 어마어마해 텃밭이 대형 마트 수준이다. 밥하다가 필요한 재료가 생기면 그냥 뒷마당에 나가면 된다.

그런데 할머니에겐 그게 모두 일이 아니다. 다진 김치와 두부를 맷돌로 눌러 물기를 뺀 다음 당면과 숙주, 다진 돼지고기를 섞어 만두를 빚는 것도 예사로운 일상일 뿐이다. “두부를 맷돌로 하면 그게 일이지, 요샌 힘든 일은 안 한다니까.”

행복한 순간은 많지만 행복한 삶은 그리 많지 않다. 할머니는 이제 고생도 하지 않고 누굴 미워하는 마음도 없어 행복하다고 했다. 지면에 옮기지 못한, 눈물 나는 사연이 많지만, 부부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눈밭을 밟고 배웅 나와 다정하게 선 부부는 정말, 그래 보였다.       
 

글 김현정 기자 | 사진 한영희

 

* 양재순 할머니의 쥐엄떡 조리법은 샘터 3월호 100쪽에 실려 있습니다.

 
송승하 로그인 후 작성해주세요. [2014-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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