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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나는 집, 게스트하우스
이야기가 한가득 익어가는 곳 2014년 3월호
 
이야기가 한가득 익어가는 곳



사람을 만나는 집, 게스트하우스 전주 경원동 전주게스트하우스


이야기가 한가득 익어가는 곳





카페테리아를 장식한 색색의 후기들.
그 종이를 읽으며 그들의 인생 한 조각을 여행하다 보면 시간이 절로 간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면서
그 옛날 익혔던 영어를 떠올리느라 고생한다는 이호성 씨







그래도 그 덕분에 외국인 여행객이 자주 찾아
전주게스트하우스에서는 국경을 넘나든 교류가 빈번하게 이뤄진다


 

전주에서 택시를 타고 “게스트하우스 가주세요” 하면 기사 대부분이 못 알아듣거나 시내 객사에 내려주던 때가 있었다. 과거 외국 사신 등이 머물던 객사가 영어로 게스트하우스로 번역돼 벌어진 촌극이다. 그런데 단 몇 년 사이 전주에는 수많은 게스트하우스가 들어섰다. 그중 ‘전주게스트하우스’는 가장 먼저 도미토리 형식으로 문을 연 곳이다.
“젊은 시절에 덴마크에서 치즈를 공부한 적이 있어요. 주말에는 배낭 짊어지고 여행했는데 이때 게스트하우스를 경험했죠.” 주인장 이호성 씨(51세)는 그때부터 막연히 게스트하우스를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에 품은 생각과는 다른 직업들을 수없이 경험했다. 건설폐기물 종합처리, 인테리어, 비디오 유통업, 축산업… 그의 이름이 새겨진 서로 다른 직종의 명함만 해도 20개가 넘는다. 정당한 대금을 받는 데에도 소송을 해야 하는 일이 많아 법 공부에도 매달려야만 했다.

결국 송사에 지친 이 씨는 하던 일에서 손을 떼고 전북 진안 마이산 입구에 있는 폐교를 사서 고시원을 열었다. 후학도 양성할 겸 택한 도피 아닌 도피였다. 그런데 어느 날 이대로 시골에 은둔하게 될까 걱정이 들었단다. 청년 시절 묻어둔 꿈도 생각났던 터였다. 그래서 2009년 말, 아내와 함께 전주 경기전 근처에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 요즘은 딸 현진 씨(21세)도 일을 돕고 있다.

이곳의 백미는 단연 1층의 카페테리아. 간단하게 음식을 조리하거나 먹을 수 있는 공간인데 분홍 파랑 노랑 색색의 종이가 빼곡하게 붙어 있다. 이곳을 다녀간 이들이 남긴 후기다. 아기자기 예쁜 그림부터 최악의 한 해를 보낸 자신에게 띄우는 절절한 편지까지 내용도 가지각색. “운 좋으면 먹는 거”라며 주인장이 그때그때 쏘는 맥주 한 병과 간식도 있으니 1층에서 행운을 노려봄 직하다. 종종 아침에 사람을 모아 콩나물국밥을 먹으러 가는데, 짤막한 전주 투어가 곁들여지는 알짜배기 시간이다.

저녁 아홉 시 무렵, 슬며시 1층의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선 수다의 기회를 엿봤다. 맥주 한 병씩 들고 다음 날 0시가 되도록 이야기를 나눈 이연옥 씨(36세)는 휴대용 난방장치까지 챙겨 온 여행 고수. 삭막한 게스트하우스가 느는 세태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꼭 저렴해서 게스트하우스에 가는 것만은 아니잖아요.” 운을 띄우니 그녀가 바로 말을 받는다. “낭만, 사람과 어울리는 낭만이죠. 많이 생겨난 것만도 고마운 일이지만요.”

그 말처럼 늘어난 숙소는 고마운 존재이자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길고양이들도 즐겨 찾는 곳, 대학가요제 출신 사장님이 가끔 노래 한 소절을 들려주는 곳… 전주 시내 사연 있는 숙소를 고르는 재미도 쏠쏠하리라. 하지만 어느 곳에서 묵든 기억하시길, 진정한 게스트하우스의 맛은 낭만이라는 사실을. 그 낭만은 여행지에서 뭉근히 피어나, 입과 입을 오갈 때 구수하게 발효할 것이다.


글·사진 박초롱 기자


전북 전주시 완산구 경원동 2가 62번지, 063-286-8886, cafe.daum.net/chonjukorea
평일 1박 19,000~28,000원, 주말 23,000~30,000원(가족실 등은 별도 문의) | 조식 미포함


조금 불편하고 어색해도 사람이, 이야기가 있어 좋은 곳.
전국의 특색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격월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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