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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벽돌, 담쟁이덩굴
위대한 유산 2014년 3월호
 
위대한 유산



붉은 벽돌, 담쟁이덩굴

위대한 유산


 
“어머니가 계신 그곳은 따뜻하십니까?”

할머니 산소에서, 정종 한 잔을 올리며 아버지께서 하신 첫마디가 며칠째 귀에 맴돌고 있습니다. 이곳은 이렇게 추운데, 생전에 몸에 열이 많아 속옷조차 거추장스러워하셨던 할머니가 ‘그곳’에선 매일 편하게 수영복만 입고 계실까? 돌아가신 지 16년이 지났건만 할머니의 쉰 목소리와 따뜻한 젖의 촉감은 그대로 제 귀에, 손에 남아 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학교 문턱도 밟지 못했던 평안도 할머니는 가끔 이런저런 ‘훈수’를 두셨지요.

‘별퉁스럽게 살지 말라우(남들과 티 나게 달리 살지 마라).’
‘누가 거저 주는 줄 아니?(세상에 공짜는 없다.)’

스무 살에 아들 하나 낳고, 남편 없이 공장 일, 시장 일을 마다 않고 오로지 자식 잘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75년을 살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언 중 제 기억에 남은 것은 그 두 마디입니다. 아니 그 아들이 아들을 넷이나 낳고, 그 아들들이 또 자손을 낳아 지금은 증손자를 안고 흐뭇해하는 우리 가족 모두가 할머니의 훌륭한 유산이겠지요.

얼마 전 소설가 故 박완서 선생님의 3주기 미사가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사셨던 경기도 구리의 집에 가족과 지인들이 모였습니다. 처음엔 고인을 기리며 다소 엄숙한 얘기들이 오갔지만 그것도 잠시, 농담을 나누며 한바탕 웃는 자리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를 환한 미소로 내려다보시는 박 선생님의 영정도 이런 말씀을 하실 것 같았습니다. “내가 참 고운 죽음을 가졌구나. 죽어서도 이렇게 웃으니 축복이지.”

삶의 흔적은 자기 스스로 남기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거창한 유산이나 유언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히 드러나는 것 아닐까요. 우리는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씨앗 하나를 잘 심고 가꾸면 될 것입니다. 후손들이 좋게 기억해주면 덤으로 고마운 것이겠지요.                


발행인  김성구 (song@isamto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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