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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에게 배우다
광절이의 쓰나미 2014년 3월호
 
광절이의 쓰나미



기생충에게 배우다

광절이의 쓰나미



지진에 의해 생기는 큰 파도를 일컫는 ‘쓰나미’가 국내에 알려진 건 23만 명의 사망자를 낳았던 2004년 인도네시아의 참극이 계기였다. 그로부터 7년 후 이웃 나라 일본에서 발생한 쓰나미는 이게 꼭 남의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 해야 할 행동수칙은 ‘무조건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지만, 최대 높이 30미터에 달하는 파도가 건물을 덮치는데 그게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최근 더 잦아지는 쓰나미는 발달된 문명의 힘을 빌려 지구의 주인 행세를 하는 인간이 지구의 진짜 주인인 자연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잘 보여준다.

‘광절열두조충’이라는 기생충이 있다. 조충이란 ‘촌충’, 즉 여러 개의 마디로 이루어진 벌레란 뜻인데, 각 마디가 세로보다 가로가 넓어서 ‘광절’이고, 머리에 갈라진 틈이 있어서 ‘열두(裂頭)’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여기서는 편의상 ‘광절이’라고 부르자. 이 기생충은 송어나 연어 같은 민물고기를 회로 먹어서 걸린다. 물고기 안에서는 1~2센티미터 크기인 광절이의 유충이 사람 몸에 들어오면 머리의 갈라진 틈으로 사람의 창자를 물고 몸을 만들기 시작한다. 몸을 만든다면 보통 근육을 키운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광절이가 몸을 만드는 건 끊임없이 마디를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3개월쯤 지나면 그 마디는 수백 개를 헤아리고, 광절이의 전체 길이는 5미터를 훌쩍 넘는다.

그 기다란 벌레가 기껏해야 7미터가 고작인 사람의 창자 속에 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암수한몸이니 짝짓기에 대한 걱정은 없다 해도, 행여 증상이 있으면 숙주가 눈치를 채니 되도록 얌전하게 있어야 하고, 대장내시경에 발각되지 않으려면 몸을 여러 번 접은 채 최대한 부피를 줄여야 한다. 하지만 광절이에게 가장 힘든 건, 1센티미터도 안 되는 작은 머리로 5미터가 넘는 몸 전체를 지탱해야 한다는 것이다. 갈라진 틈으로 창자의 일부를 붙잡고 매달려 있는 광절이의 모습, 상상만으로도 위태로워 보인다. 게다가 우리 창자는 시시때때로 연동운동을 하는데, 그 와중에 창자를 놓치지 않고 수년 이상 사는 광절이의 능력은 실로 놀랍다.

그 환자의 몸속에 있던 광절이 역시 자신이 오래도록 발각되지 않은 채 수년간 살 거라고 생각했으리라. ‘내가 있는 걸 숙주는 꿈에도 모르겠지’라며 혼자 웃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쓰나미가 몰려왔다. 배가 고프거나 음식물이 있을 때만 요동을 치던 창자가 생전 처음 보는 엄청난 힘으로 자신을 아래쪽으로 밀어내기 시작한 것. 한번 창자를 놓치면 다시 잡는 건 불가능한 노릇인지라 광절이는 머리에 더 힘을 줬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머리에 너무 힘을 줬는지 머리가 너무 아팠지만, 창자의 요동은 계속됐다. 연약한 머리가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광절이는 결국 창자를 놓쳤다. 잠시 실신했던 광절이가 다시금 정신을 차려보니 밝은 빛이 보였고, 무엇보다도 안 좋은 냄새가 진동했다. “으악! 이게 무슨 냄새지?” 그게 이 세상에서 광절이가 한 마지막 말이었다.

“한 열흘가량 설사를 했어요.” 광절이에 걸렸던 환자는 그날의 악몽을 이렇게 회상했다. “또 변이 나오려고 하는 거예요. 냉큼 화장실에 달려갔는데, 변은 안 나오고 항문에 뭔가가 걸려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혹시나 해서 손으로 만져보니 아니나 다를까, 항문에 축축한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때부터 그것을 뽑기 시작했죠. 끊어질까 봐 아주 천천히요. 다 뽑고 나니까 아주 기다란 벌레더라고요. 길이가 6미터쯤 됐고요. 처음 겪는 일이라 무서워서 선생님한테 연락했죠.”

광절이를 병에 담아 연구실로 오면서 생각했다. 쓰나미 앞에서 인간이 무력한 것처럼, 열흘 동안의 설사에 6미터짜리 광절이도 한낱 미물에 불과했다고. 그러니 겸손해질지어다. 기생충이나 인간이나.



서민_ 기생충을 연구하는 학자입니다. 단국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기생충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릴 적 못생긴 외모로 인해 고생했던 자신처럼 외모로 인해 탄압(?)받고 있는 기생충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기생충의 변명> <서민의 기생충 열전> 등의 책을 썼습니다. ‘기생충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꿈꿉니다.

‘기생충에게 배우다’에서는 그동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싫어하기만 했던 기생충의 생태와 특징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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