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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부치는 이삿짐 2014년 2월호
 
하늘로 부치는 이삿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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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찾는 여자 흔적 지우는 남자


하늘로 부치는 이삿짐

앞으로 1년, 여섯 번의 짝수 달에 이어질 대화를 어떤 이야기로 시작할까 고민했다. 다양한 죽음, 다양한 현장, 그곳에서 내가 지운 수없는 흔적들…. 곰곰이 되짚어보다가 문득 버려지는, 그리고 종종 살아남는 흔적에 생각이 미쳤다. 언론에서 점잖게 소개하는 이름에 따르면 ‘유품 정리’. 내게는 하늘로 떠난 망자의 마지막 이삿짐 정리이고 적지 않은 이에게는 쓰레기 처분으로 불리는 일에 대해 가장 먼저 이야기해보려 한다.

2012년 겨울이었다. 한 남자의 전화를 받고 찾은 곳은 다세대 주택 밀집지역, 그중에서도 골목 끝의 모퉁이 집이었다. 고인은 돌아가시고 보름이 지나 발견됐다고 했다. 10평 남짓한 반지하 주택 입구에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돌아가신 고인의 잔해물이 남아 있었다. 묵념하고 방 안을 돌아보니 수북한 약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견한 병원 기록지에 간암 말기라는 판정이 적혀 있었다. 날짜를 보니 불과 5~6개월 전이다.

유품이 내게 알려준 것은 고인에게 독일에서 유학 중인 외동 따님이 있다는 것. 대신 의뢰 전화를 준 사람은 따님의 남자친구였다. 따님은 종종 편지를 보냈던 것 같았다. 아버지가 보고 싶다, 이곳 생활은 편안하니 걱정하지 마라, 식사는 잘 하시냐…. 아버지의 병은 전혀 모르는 채 다정하게 근황을 전하는 편지를 보니 부녀가 이별할 시간도 갖지 못하고 헤어졌겠구나 싶어 마음이 아팠다.

이어 손바닥만 한 크기의 얄팍한 노트가 나왔다. 고인은 여기에 ‘내 눈에 담아가고 싶은 것’이라는 이름까지 붙여놓았다. 소위 버킷리스트라는,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열 가지를 적어둔 것이었다. 행동으로 옮긴 항목은 줄을 그어두셨는데, 세어보니 여섯 가지는 실행하셨던 모양이다. 대단하고 거창한 소원이 아니라 ‘TV에 나온 맛집 가보기’처럼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다. 맛집 정보 밑에는 ‘가까운 곳에 있는데도 살면서 한 번도 가지 못했다’는 간단한 소회나 다녀온 후의 감상이 적혀 있기도 했다. 한 장씩 종이를 넘겼다. ‘여행’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목소리 듣기’ 가장 마지막은 ‘시집가는 딸아이 눈에 담기’. 이렇게 따님을 사랑하면서도 병세를 숨기고 홀로 죽음을 준비했던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져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하지만 이 노트는 유족의 뜻에 따라 폐기되었다.

그해 겨울, 사후 10일 만에 발견됐다는 한 할아버지의 집에서도 비슷한 흔적이 발견됐다. 포장도 뜯지 않은 새 물건들이 가득한 집이었다. 처음엔 선물로 받은 것을 아까워서 안 쓰신 줄 알았다. 나중에 아드님께 물어보니 망자에게 도벽이 있었다고 했다. “남들이 볼 땐 불효자겠죠” 하며 시작된 탄식에는 아버지의 도벽을 고치려 노력했던 20여 년의 세월이, 그럼에도 고쳐지지 않아 실망하고 분노하고 고스란히 피해금액을 떠안아야 했던 고통의 기억이 스며 있었다. 결국 아들은 아버지와 따로 사는 길을 선택했다.

고인은 천장을 온통 가족사진으로 채워놓으셨다. 모든 게 도벽 때문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자괴감, 그리워도 자식에게 더는 후회할 짓 하지 않겠다는 절절한 고백이 일기장에 남아 있었다. 부패물로 반 이상이 젖은 그 일기장을, 스스로 불효자라 말한 아드님은 고이 챙겨 가셨다. 잔뜩 훼손된 ‘기억이 어린 유품’을 선택한 사람은 이 아드님이 유일했다.

이해는 한다. 오랜 시간 죽음과 함께한 유품은 많이 훼손되거나 시취가 밴다. 그래서 대부분 고인을 기억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현금이나 귀금속처럼 경제적 가치가 있는 물건만 선택하곤 한다. 가슴 아픈 죽음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외려 제일 씁쓸한 건 이웃의 반응이다. 우리 작업차까지 발로 차며 욕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혐오스럽고 부정 타니 빨리 빼라는 거다.

하지만 생각해보시라. 아주 소중히 했던 물건부터 벽지나 장판까지 싹 다 제거하는 일이다. 유족이 유품을 인수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남지 않는다. 하늘로 이사한 망자의 모든 흔적을 삭제하는 일인 것이다. 홀로 떠나 어떤 것도 남기지 못하는 쓸쓸한 이삿길, 잘 가라 인사하진 않더라도 더럽다 욕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식으로든, 모두 겪게 될 이사가 아닌가.

김석훈_ 흔적 지우는 남자입니다. 범죄 현장, 고독사, 자살 등 특수 현장 전문 청소업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남들은 외면하는 현장에서 눈총까지 받아가며 일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고요. 몸에 냄새가 배 식당에서 밥 먹는 일조차 포기한 지 오래입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하기에, 시취가 뭔지도 모르고 와락 안기는 딸이 있기에 오늘도 마음을 담아 흔적을 지웁니다.

죽음의 흔적은 삶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흔적 찾는 여자 진주현 님과 흔적 지우는 남자 김석훈 님이 지켜본 흔적을 격월로 만나면서 우리 삶을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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