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궁리
행복일기
샘터시조
 

 

Home > 월간샘터 > 이달의샘터
할아버지의 부엌수업
시아버지는 요리하면 안 되나요? 2014년 2월호
 
시아버지는 요리하면 안 되나요?



할아버지의 부엌수업 |
조용옥 할아버지의 연근조림


시아버지는 요리하면 안 되나요?

 

일 년 사이에 며느리 둘을 맞은 시아버지는 걱정이 많았다. 분가한 아이들이 밥을 제대로 챙겨 먹을까 싶었던 그는 고민 끝에 직접 요리를 배워 아이들을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다. 열무김치, 미역국, 달걀찜, 두부조림… 심지어 감자와 옥수수를 삶고 김을 굽는 법까지, 평범하지만 밥상에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반찬들을 배우고 조리법을 정리했다. 그렇게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일러준 착한 요리>라는 희귀한 요리책이 세상에 나왔다.

평생 요리와는 인연이 없는 회계사였던 조용옥 할아버지(68세)는 올해 3년 만의 개정판을 낸 이 책에 전업주부보다도 꼼꼼한 조언들을 담았다. “시금치는 밑동을 남겨서 십자로 갈라야 돼요. 잎만 똑똑 떼내면 살림할 줄 모르는 거라고.” 2006년에야 요리를 시작했는데도 할아버지는 좋은 재료가 나는 철에서부터 재료를 다듬는 법까지 방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고향인 경기도 양평의 동네 할머니들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손맛 좋은 할머니들을 만날 때마다 노하우를 캐묻고는 문서로 정리해온 덕분이다. 

할아버지가 ‘낙엽깻잎’을 아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낙엽깻잎은 들깨를 수확하기 직전에 따는 깻잎으로 보통 시장에 나오는 것보다 두께가 얇고 노란색이 돈다. 그 낙엽깻잎을 소금물에 3일간 절인 다음 깨끗이 씻고 쪄서 맛간장과 고춧가루, 다진 마늘과 다진 파로 양념한 것이 할아버지의 깻잎 김치이다. 이번 김치는 너무 잘됐다며 자랑하던 할아버지는 기어이 더운 밥을 식탁에 올렸다. 그냥 먹어도 짜지 않아 괜찮았지만, 뜨거운 찰밥에 얹으니 풋내 없이 은은한 깻잎의 향과 고소하고 달콤하게 숙성된 맛간장의 감칠맛이 입맛을 확 당겼다.

이 맛간장은 할아버지가 하는 거의 모든 요리에 들어간다. 마늘과 대파, 말린 표고버섯, 양파, 다시마를 우린 육수에 진간장을 넣고 끓이는데 짠맛은 희석되고 야채의 단맛이 더해져 조미료를 넣지 않아도 감칠맛을 끌어낸다. 할아버지는 이 간장으로 나물도 무치고 찌개도 끓이고 조림도 한다.

 




연근은 버섯이나 마늘과 함께 조리면 맛있다.
다만 버섯을 넣으면 마늘연근조림보다는 빨리 먹어야 한다.






볏짚을 넣어 직접 띄운 청국장은 2주 안에 먹어야 맛이 좋다.






낙엽깻잎으로 만든 깻잎김치는 파란 깻잎보다 두께가 얇고 향이 깊다.


 
할아버지가 5년에 걸쳐 완성한 연근조림도 맛간장만 있으면 뚝딱이다. 연근은 수놈보다 짧고 넓적한 암놈으로 골라야 진액이 풍부해 맛있다. 그렇게 고른 연근을 씻어 흙을 제거한 다음 껍질을 벗기고 0.5㎝ 두께로 썰어 물에 씻는다. 표고버섯도 같은 두께로 써는데, 버섯 대신 마늘을 넣으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 “연근조림이 정말 쉬운 것 같으면서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음식이거든. 타거나 설익거나 했는데 발연점이 높은 카놀라유를 쓰면서 해결책을 찾았어요.”

할아버지는 연근을 데치지 않는다. 대신 아린 맛이 적은 제철 연근을 쓰고, 기름을 충분히 두르고 익혀 아삭한 맛이 살아나도록 한다. 처음 연근을 넣고는 식용유가 타지 않도록 불을 줄이고 2분을 볶다가, 조림장을 넣으면 다시 불을 높였다가 줄인다. 이 과정을 반복하는데, 조림장은 맛간장에 물을 섞은 것으로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버섯을 넣고 2분간 볶은 다음 불을 줄이고 올리고당과 참기름을 넣으면 비장의 연근조림이 완성된다.

그런 식으로 몇 년에 걸쳐 조리법을 수정하여 완성한 음식이 여럿이다. 물엿 없이 엿기름만으로 단맛을 낸 고추장을 담그기 위해 할아버지는 온갖 방법을 써보다가 엿기름을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면 단맛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동치미도 여러 번 담갔다. 할아버지는 마침 오늘이 새로 담근 동치미를 여는 날이라며 이건 7년에 걸쳐 완성한 동치미라고 했다. 쪽파와 미나리, 홍갓 등을 쓰지 않는 할아버지의 동치미는 대신 껍질째 반으로 쪼개고 씨를 뺀 배가 들어간다. 이 배는 쉽게 무르기 때문에 빨리 먹어야 하는데, 나박나박 썰어 먹으면 짜릿하게 톡 쏘면서도 달콤한 맛이 끝도 없이 들어갈 것만 같다.

그렇다면 할아버지가 책을 쓴 원래 목적, 며느리에게 음식을 가르친다는 것은 어떻게 되었을까? “큰며느리가 애가 셋인데, 어떻게 이런 걸 하겠어요. 내가 해서 싸주는 거지.” 그날도 할아버지는 직접 띄운 청국장에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천일염을 넣어 양념한 다음 찧고 있었다. 저녁에 찾아올 큰아들네 식구들 들려 보낼 것이었다. “그래도 애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절로 배우더라고. 얼마 전엔 미역국을 끓였는데 자기 스스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맛이었어요, 아주 잘 끓였어.”

그 품평을 들으며 나직하게 한숨 쉬는 이가 있었으니, 늘그막에 느닷없이 시집살이를 하게 된 할머니였다. “저 양반이 예전엔 뭐든 잘 먹었는데, 요리 시작하면서부터 잔소리가 늘었어요.” 게다가 귀찮은 일도 늘었다. 제철 음식과 활용 방법, 온갖 조리법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는 할아버지지만 오랜 세월 갈고 닦아야 하는 칼질이 서툴러 잔손질이나 뒷정리는 언제나 할머니 몫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아버지 혼자 신 난 것만은 아니다. “대신 몸에 좋은 음식을 많이 먹게 되고, 항상 바쁘니까 지루할 틈이 없고.” 서로 무덤덤해지고도 남을 세월을 보낸 60대의 노부부는 그렇게 다시 다정하게 머리를 맞대고 저녁 상차림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글 김현정 기자 | 사진 한영희



* 조용옥 할아버지의 연근조림 조리법은 샘터 2월호 100쪽에 실려 있습니다.



 
다음글이 없습니다.
이전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