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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 박물관
꿈속의 발레리나 2014년 2월호
 
꿈속의 발레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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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의 발레리나


 


플로라 역의 마리 탈리오니
(Marie Taglioni as Flora in Didelot’s Zephire et Flore,
Alfred Edward Chalon & Richard James Lane, 1831)

 

분홍빛 타이츠에 나풀나풀한 망사 치마, 화관과 리본과 반짝이와 무엇보다도 토슈즈. 어린 소녀는 누구나 발레리나를 꿈꾼다.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떤가. 손에 닿지 않기에 더 아름답고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를 완성한 것은 한때 못난이로 불리던 소녀였다.

마리 탈리오니는 19세기 낭만주의 발레의 최고 스타이자 역사상 가장 유명한 발레리나다. 아버지 필리포도 유명한 무용수이자 안무가였는데 일자리를 찾아 떠돌이 생활을 하는 바람에 가족은 종종 갈라져 살았다. 드디어 비엔나 궁정에 자리 잡은 필리포는 가족을 부르면서 딸을 멋지게 데뷔시킬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마리는 실력이 별로인데다가 비쩍 마른 다리와 구부정한 등으로 친구들에게 기형이라고 놀림받을 정도였다. 필리포는 딸을 보자마자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렸다. 이대로는 도저히 무대에 세울 수 없었다.

때는 토 댄싱, 즉 발가락 끝으로 서서 춤추는 방식이 개발되어 선풍을 일으킨 시기였다. 마리는 날마다 여섯 시간씩 연습에 몰두한 끝에 아무리 어려운 동작도 힘든 기색 없이 해치우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아버지가 아무리 애원해도 딸은 등을 꼿꼿이 펼 수 없었다. 대신 그녀는 구부정한 자세를 자신의 테크닉에 통합했다. 균형을 살짝 앞으로 이동시켜 팔다리를 재정렬한 것이다. 완벽하지 않은 불안정함은 오히려 그녀만의 매력이 되었다.

대중의 반응은 엄청났다. 특히 발레의 본고장인 파리 시민들이 그녀를 사랑했는데, 가장 열렬한 팬은 여자들이었다. 프랑스 혁명은 여성들에게 새로운 자유를 주었지만 혁명이 마무리되며 다시 부르주아적 도덕이 자리 잡았다. 남녀의 역할이 확고하게 분리되어 남자들은 사업과 공무를 돌보는 반면 여자들은 가정과 아이를 돌보았다. 언론은 마리의 공연뿐 아니라 그림이나 바느질 같은 여성적 자기 계발에 몰두하는 일상을 앞다퉈 보도했다. 그녀는 스타 무용수뿐 아니라 모범적 아내이자 헌신적 어머니로 칭송받았다. 

하지만 여자들이 마리를 동경한 것은 그녀가 완벽한 부르주아 여성이어서가 아니었다. 그 반대로 그녀의 춤은 그들의 억제된 열정을 대변했다. 당시 여자들은 공공장소에서 남자를 동반해야 했고, 특히 극장에 여자끼리 가는 것은 남부끄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팬들은 꽃다발로 무장하고 남성 전용인 아래층 좌석을 차지했다. 그들은 마리와 비슷한 옷을 입고 머리 스타일도 따라 했다. 마리를 본뜬 종이 인형이 나오고 동판화도 널리 퍼졌는데 ‘플로라’는 그런 동판화들 중 하나다.

가냘프고 요정 같은 마리는 비루한 현실과 동떨어진 아름다운 삶의 표상이었다. 하지만 그 이미지 뒤의 삶은 달랐다. 마리는 가난한 귀족과 결혼했다. 사랑한 사람은 따로 있었지만 신분 상승을 노린 부모의 뜻을 따른 것이었다. 남편은 술고래에 도박꾼이었고 아내의 벌이로 흥청망청하며 툭하면 말썽이나 일으켰다. 4년 후 부부는 별거했고 결국 이혼했지만, 그 후로도 그녀는 그를 계속 부양했다. 헌신적인 팬과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기도 했지만 애인은 돌연 죽었다. 두 번째로 낳은 사생아의 아버지는 러시아의 왕자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진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녀는 회고록을 썼지만 사생활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회고록은 결국 출간되지 않았다. 그녀는 1837년 33세로 파리를 떠났고 이후 10년간 유럽 대륙 전역에서 순회공연을 하다 은퇴했다. 발레도 그녀와 함께 쇠퇴해 사람들은 대신 캉캉이나 마법쇼, 인형극, 가장무도회에 열중했다. 한번은 이런 가장무도회들 중 하나에서 초로의 마리 탈리오니가 “입을 오므린 채 꽤나 새침한 모습으로”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있는 장면이 목격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대변하던 낭만적인 발레리나의 이미지만은 남아서, 21세기의 우리에게까지 가장 아름답고 환상적인 모습으로 기억된다.

정은지_ 문학과 음식에 관한 에세이 <내 식탁 위의 책들>을 썼고, <블루 아라베스크> <어쩌면 그림 같은 이야기> 등을 번역했습니다. ‘초상화 박물관’에서는 그림과 사람, 역사가 한데 어우러진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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