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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시간
순금처럼, 에누리가 없었다 2014년 2월호
 
순금처럼, 에누리가 없었다



사물의 시간

순금처럼, 에누리가 없었다

금은방 표창복 사장의 ‘세공 망치’






큰 것부터 꼭두망치, 중도리, 소도리. 꼭두망치로는 금괴를 납작하게 펴거나 바닥을 다지고, 중도리로 모양을 잡고, 소도리로 섬세하게 조각한다. 금은방 ‘정보장’의 표창복 사장은 꼭두망치와 중도리를 삼사십 년, “나랑 같이 가는 물건”인 소도리는 오십 년을 두들겼다. 가느다란 정을 때려 금에 조각을 새기는 소도리는 정을 내려치는 부분이 옴폭 들어갔다.
 

 


부천 인천 지역 금은방 업계의 원로, 표창복 사장.

그가 이 계통에 종사한 것은 열여섯 살부터 예순여섯인 지금까지, 50년이다.



금은방 ‘정보장’은 경기 부천시 원종동 중앙시장 목 좋은 곳에 있었다. 가로로 긴 직사각형 점포 안에 놓인 가로로 긴 유리 진열장과 그 안의 금붙이들, 벽에 매달린 벽시계들은 여느 금은방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그러나 점포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가로세로 50센티미터 남짓한 작업대가 이곳에 다른 색깔을 불어넣는다. 작업대는 낡았다. 작업대 상판 나무부터가 낡았고, 그 위에 널린 연장들도 낡았다. 금괴를 녹이는 데 쓴다는 사발과 무게를 다는 접시저울, 망치며 바이스며 금붙이를 세공하고 수리하는 갖은 연장들도 세월의 때가 묻었다. 온통 번쩍거리고 매끈거리는 귀금속들 사이에서 그 투박하면서도 온화하게 빛이 바랜 작업대는 무척이나 이질적인 느낌을 주었다. 거기에만 다른 시대의 공기가 고였다.  

“부천 인천 지역 금은방 주인 중에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아요. 동네니까 장사하는 거지, 시내 점포에 나 같은 늙다리가 지키고 섰으면 아무도 안 들어오죠. 금은방 연 지는 28년 넘었나? 아들이 여섯 살, 딸이 네 살 때 열었으니까. 그전에 세공 공장에서 일했던 것까지 하면 이 계통에 있은 지 50년 정도 돼요.”

‘정보장’의 표창복 사장(66세)은 금은방을 열기 전에 서울 명동에 있던 세공 공장에서 일했다. 중학교를 다니다 일찍이 직업전선에 뛰어든 것. 1964년 동경 올림픽이 열린 해였다. 먹고살기 힘들던 당시, 귀금속 세공 기술이 있던 매형 주변으로 그를 비롯해 밥벌이 방편을 마련하고자 하는 친지들이 모여들었다. 금은방 한쪽에 세공과 수리를 위한 작업대가 자리하게 된 연유다. “내가 기술 있는 걸 아는 사람들은 우리 집에 일부러 찾아오기도 해요. 지금은 거의 기계화돼서 주물을 뜨거나 컴퓨터 커팅으로 모양을 내는데,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일일이 손으로 조각을 새겼어요. 여기 작업대랑 연장들이랑, 이거 한 세트만 있으면 지금도 웬만한 건 다 할 수 있어요.”

오랜 경력과 신용을 인정받아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행사의 감정사로 위촉된 것이 그에게는 뿌듯한 기억이다. “당시 주택은행에서 이 지역 사람들이 가지고 온 금을 감정하는 일을 한 달 반 넘게 했어요. 많이들 가지고 왔죠. 사실 이 동네가 그렇게 넉넉한 동네가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다들 가진 것 다 내놓고 그랬죠.”  

금은 딱 보면 안다고 한다. 색깔만 보면 품질이 좋은지, 함량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그런데 알다가도 모를 것은 사람 속이라고. 그간 숱하게 도둑을 당했어도, 얼굴만 봐서는 그럴 위인인지 아닌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하는 일의 매력과 애로점에 대해서는 뜨뜻미지근하게 대답하던 표창복 사장은 ‘원칙’을 묻자 “원칙은, 있다!”며 전에 없이 단호한 말투로 목소리를 높였다. “손님에게 값을 지나치게 받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었다. 어떤 손님에게든 공평하게 정해진 값을 받지, 누구에겐 싸게 누구에겐 비싸게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주 소문났어요, 대꼬챙이 할아버지라고.” 곁에 있던 표 사장의 아내가 한마디 거든다. 표 사장이 평소 자주 듣는 타박은 이렇다. “어수룩해 보이는 사람한테는 비싸게 부르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좀 깎아주기도 해야지, 장사하는 사람이 저렇게 융통성이 없어서야, 쯔쯧.”      

너나없이 어려웠던 시절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진로를 결정해버린 것은 아닐까? 그사이 다른 일을 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을까? 책 읽기를 좋아해서 점포를 지키면서도 몇 권씩 읽어 내리고, 그 바람에 출판사에 다니는 아들 내외가 아버지께 책 대드리기 바쁘다는데, 무라카미 하루키도 전부 읽었다는데. “다른 일?”이라고 되묻는 그의 얼굴엔 ‘내가 지금 제대로 들었나?’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다른 일… 하고 싶었던 적도 있긴 있었죠. 젊었을 때. 그다음엔 뭐 그런 생각을 할 정신이 있나. 결혼하고 애들 키우고, 먹고살기 바빴으니까. 괜히 딴짓했다가 내가 잘못되면 가족들은 어쩌나 하는 생각이 컸지요. 그땐 노모도 모시고 살았었고….”

조그마한 작업대 앞에서 세공에 열중하고 있는 소년의 모습을 상상한다. 금괴를 꼭두망치로 두들겨 펴고 가느다란 정을 소도리로 신중하게 두들겨가며 섬세한 조각을 아로새기는 아직은 앳된 이마와 덜 여문 팔목을. 여느 젊은이들처럼 그 역시 다른 꿈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열여섯 소년은 예순여섯이 되도록 작업대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정말 남달리 융통성이 없었던 것일까.

그런 그가 얼마 전 점포를 부동산에 내놓았다. 마침내 작업대를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물론 장사가 점점 안 됐기 때문이다. 정든 세공 망치를 손에서 놓고 낡은 작업대에서 일어난 그는, 이제 인생의 두 번째 문을 연다. 


사진 한영희 | 글 박혜란 편집장



당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은 무엇인가요?
새롭게 연재하는 ‘사물의 시간’에서는 우리 이웃이 살아온 이야기와
그 삶 속에 함께 머문 오래된 물건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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