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궁리
행복일기
샘터시조
 

 

Home > 월간샘터 > 이달의샘터
이 달에 만난 사람
나만의 미술 시간 2020년 7월호
 
나만의 미술 시간

길에서 넘어져 허리를 크게 다친 엄마의 병간호를 위해 시작한 ‘집순이 생활’이 1년이 다 돼간다. 대학 졸업 후 20년 넘게 직장생활만 해오다 집에 틀어박혀 사는 생활이 엄두가 나지 않더니 살림이나 간병에 여유가 생긴 덕분에 얼마 전부터 새로운 취미생활을 시작했다.


요즘 나를 가장 즐겁게 하는 건 그림그리기다. 재미 삼아 시청하던 유튜브에서 기초미술 동영상을 보고 용기를 내 문구점에서 스케치북 몇 권을 사온 뒤로 날마다 그리고 싶은 게 늘어난다. 학창시절 미술 시간을 떠올리며 바나나, 사과, 신발 같은 정물화로 시작했던 내 그림 수업은 가벼운 데생을 거쳐 점점 실력이 늘어 요즘은 한창 수채화에 빠져 있다.


엄마 옆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지루한 것도 잊어버리게 된다. 몇 날 며칠 열심히 그린 ‘작품’을 눈앞에 펼쳐놓으면 엄마는 그 옛날처럼 “야야, 너가 진짜 그림에 소질이 있나보다. 진즉에 화가 시킬 걸 그랬어” 하며 웃으신다. 마흔이 넘도록 결혼을 마다하는 딸을 못마땅해 하던 엄마는 더 이상 결혼하라는 잔소리도 안 하시게 됐다. 오히려 당신 병구완 때문에 연애도 못하게 됐다며 미안해하는 엄마에게 나는 일부러 더 밝게 웃으며 “그러게 말이유. 엄마 다 낫는 거 보고나면 늦게라도 노총각 화가한테 시집갈 거야”라는 말로 웃음을 드릴 수 있어 좋다.


엄마의 건강도 조금씩 차도를 보이고 있다. 아직은 누군가 곁에 붙어 앉아 수발을 들어드려야 하지만 조만간 다시 일어설 엄마를 생각하면 이 생활이 그리 힘들지 않다. 그림을 통해 나는 자식 된 도리와 세상사는 재미를 즐겁게 배우고 있다.


최연희


아들 둘, 딸 셋을 여자 몸으로 혼자 키워낸 엄마의 ‘마지막 걱정거리’로 남아 있는 40대 중반의 막내딸입니다. 대학 졸업 후 오랫동안 광고기획사에 재직하다 병구완을 위해 잠시 일을 쉬고 있습니다. 현실은 힘들어도 늘 밝은 웃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다음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절망의 끝에서 부르는 우리 희망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