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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보낸 메일 ‘읽지않음’ 2019년 12월호
 
그에게 보낸 메일 ‘읽지않음’

이메일에 접속해 수신 여부를 확인해 보니 ‘읽지 않음’이란 파란 글씨가 선명했다. 그 메일은 벌써 3개월째 ‘읽지않음’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분명히 내가 보낸 메일인데 이제 나조차 어떤 내용이었는지 가물가물했다. 문득 메일 내용을 다시 확인해보고 싶다가도 이제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하는 생각이 손을 붙들었다. ‘그래, 이쯤에서 끝내야지!’


혼잣말과 함께 메일 발송을 취소하기 위해 선택 박스에 체크를 하고 삭제 버튼으로 커서를 이동시키는 내 목에서 꼴깍 하고 침이 넘어갔다. 이제 마우스를 쥔 오른손 검지에 살짝 힘을 주어 누르기만 하면 끝이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검지 끝에 가벼운 경련이 일었다. 그 바람에 삭제 메뉴 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커서가 옆으로 슬쩍 빗나가고 말았다. 어쩌면 손가락의 떨림을 핑계 삼아 나는 커서의 조준을 일부러 비켜갔는지도 몰랐다. 3개월째 그래왔듯이 그에 대한 미련이 오늘도 나를 망설이게 했다.



메일의 수신인은 나와 동갑내기인 외사촌이었다. 또 한 명의 이종사촌이 우리와 나이가 같아 외가 쪽 동갑내기가 모두 셋이나 됐지만 외사촌과 나는 매일 아웅다웅하며 자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던 외사촌은 툭하면 내 얼굴을 이상하게 그려 놀려댔고 그때마다 나는 주먹다짐까지 불사하며 그와 다투곤 했다. 당시 외사촌이 그린 내 얼굴은 짙은 눈썹과 두툼한 입술을 빼면 아무것도 없었다. 얼굴선도 명확하지 않아 하얀 종이에 눈썹과 입술만 둥둥 떠다니는 기형적인 그림이 기분 좋을 리 없었다.

 


상대적으로 이종사촌의 얼굴은 단정하고 곱상한데다 바탕까지도 색을 칠해 사진처럼 명료했기에 자존심이 상한 나는 종주먹을 쥐고 외사촌에 맞섰다. 어릴 때부터 글쓰기에 소질이 있던 나 역시 그대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를 깎아 내리는 글을 써 보여주는 게 내 나름의 저항 방식이었는데 내가 그와 다른 것이 있다면 이종사촌의 환심을 살만한 글까지 써주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당연히 나는 그와 이종사촌으로부터 알게 모르게 따돌림을 당했다. 그게 더 억울했던 나는 분노에 차서 어린아이가 구사할 수 있는 온갖 어휘를 다 동원해 외사촌을 저주했다. ‘저 자식,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어떤 날 미움이 최고조에 달해 썼던 그를 향한 문장이 결국은 큰 화를 불러오고야 말았다. 호랑이처럼 엄하시던 외할아버지에게 발각되어 눈물 콧물이 쏙 빠지도록 크게 야단을 맞은 것이다. 그때의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나는 작가가 되어 이 십 여년 넘게 글 쓰는 것을 업으로 하면서도 그와 비슷한 문장을 단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아니 일부러라도 그런 저주의 말은 머릿속에서 깨끗이 지워야 했다.



몇 년 동안 암 투병을 하던 외사촌의 부음을 전해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그 문장이었다. ‘저 자식,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그것은 번개가 머릿속을 긋고 가는듯한 섬찟한 충격으로 나를 엄습했다. 혼미한 정신을 차리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가 차디찬 물을 얼굴에 마구 끼얹자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머리를 들자 세면대 바로 앞에 거울이 있었다. 거울에는 짙은 눈썹과 두툼한 입술을 가진 얼굴이 둥둥 떠 있었다. 아주 오래전 그가 그렸던 내 얼굴이 거기서 그렇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럴 수가!”


나도 모르게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는 몇 십 년 전에 저쪽에서 이미 이 나이의 내 모습을 정확하게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몇십 년 전 저쪽 의 내가 이미 이 나이에 이른 그의 죽음을 불러온 것은 아닐까. 억지라면 억지겠지만 현실적으로 나타난 결과가 그러했다. 순간 그의 죽음이 어쩌면 내 잘못 일지도 모른다는 후회가 눈물이 되어 터져 나왔다.



그는 짧은 생을 통째로 바쳐 그림만 그리다 외롭게 세상을 떠난 화가였다. 글 작가에게도 마찬가지지만 이 세상은 화가에게 너무나 각박한 곳이었다. 그는 살기 위해 억지로 애니메이션도 그렸고, 거리에 나가 초상화를 그려 파는 버스킹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랬음에도 그는 혼자 살기도 바빠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고, 몹쓸 병이 든 뒤에는 가족들의 돌봄도 받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언젠가 그가 내 동화책의 일러스트를 꼭 한 번 그려보고 싶다고 말했지만 이미 병세가 완연한 그의 말을 나는 그냥 흘려듣고 말았다.


그가 죽고 나서 현실적으로 그를 저 세상으로 보내는 일은 쉬웠다. 일가친척들이 모여 정해진 절차에 의해 장례 준비를 하고 손님을 맞았다. 몇몇 문상객들이 그에 대한 몇 개의 회고담을 망자에 대한 예의인 양 나누다 돌아갔다. 그의 장례식은 내가 본 여느 장례의식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렇게 그를 떠나보내고 나는 또 현실에 묻혀 동동 거리며 살았다. 그러나 그의 흔적은 도처에 깔려 있었다. 전화번호, 메일, 문자 메시지, 카톡, SNS…. 거기에는 죽음으로 인한 부재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일부러 거부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그의 족적들을 마음대로 찾아볼 수 있었다. 생각날 때마다 하나하나 그의 흔적을 지워나가다 보니 마침내 주인 없는 메일 주소만 덩그러니 남았다. 사실 메일도 곧 삭제할 생각이었는데, 문득 살아있는 동안 그에게 아름답고 예쁘고 좋은 말들을 한 번도 글로 써주지 않았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지금이라도 작정을 하고 글을 쓰는 작가, 그것도 동화를 쓰는 작가로서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말로 그에게 장문의 작별인사를 쓰고 싶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기존에 그와 주고받았던 메일까지 남김없이 삭제해 버렸다. 지금껏 수십 편의 동화를 써온 입장이지만 이렇게 글 앞에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온 정신을 집중한 적이 없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처음 메일 주소를 받고 설레는 마음으로 첫 메일을 쓰는 기분이었다.


그에게 보내는 뒤늦은 작별의 메일은 며칠 만에 끝을 맺었다. 장례를 마친 열흘 뒤였다. 마음이 변할까 싶어 나는 마침표를 찍자마자 보내기 버튼을 눌러 메일을 발송했다. 그 뒤 내겐 매일 메일함에 들어가 수신 상태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겨 버렸다. 당연한 일이지만 메일은 오늘까지도 ‘읽지 않음’ 상태로 남아 있는 중이었다.



눈을 질끈 감고 마우스를 쥔 오른손 검지를 꾹 눌렀다. 잠시 후 눈을 떠 확인 해 보니 수신확인 메뉴에 있던 ‘읽지 않음’이 보이지 않았다. 내친 김에 보낸 편지함으로 이동해 선택박스에 체크를 하고 삭제 버튼을 누르자 그에게 보냈던 내 마지막 메일은 영원히 ‘읽지 않음’ 상태로 사라져버렸다.


읽어줄 사람을 잃은 메일은 이제 어떻게 될까? 읽지 않음이란 글씨를 확인할 때마다 쿨렁하던 눈물도, 철렁하던 가슴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잠잠해질 수 있겠지?


죽음이란 우리가 사는 동안 수시로 목격해야 하는 삶의 일부분이지만 정녕 익숙해질 수는 없는 것인가 보다. 죽음 또한 어차피 산 자의 몫이라지만, 어린 시절을 함께 공유하며 살았던 동갑내기 사촌의 허망한 죽음은 지금도 내 가슴에 그렇게 먹먹한 아픔으로 남아 있다.


홍종의


1996년 대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동화작가로 등단했습니다. 계몽아동문학상, 윤석중문학상, 방정환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떴다 벼락이》《초록말 벼리》 《영혼의 소리 젬베》 등 80여 권의 창작동화책을 펴냈습니다. 신나는 젬베 연주자로, 행복한 동화작가로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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