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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에 만난 사람
지게꾼 임기종 2019년 11월호
 
지게꾼 임기종

 

한창때엔 하루에도 수없이 오가던 길이련만 등산로 초입에 들어선 뒤에도 지게꾼 임기종(62) 씨의 얼굴엔 좀처럼 흥이 비치지 않는다. 외설악 입구인 신흥사 절 마당 앞에 보관 중인 지게를 살피러 간 사이 운무에 가려 있던 봉우리 하나가 대신 반갑게 얼굴을 내민다. 깎아지른 저 산등성 기암괴석에도 그의 추억과 온기가 남아있을까.


“어디 권금성뿐인가요. 저기 말고도 설악산 구석구석 안 가본 데가 없지요. 열여섯 살 때부터 예순두 살이 된 지금까지 지게질을 하고 있으니 지금도 설악산 골짜기며 봉우리가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해요. 여기서 제일 가까운 비선대 (600미터)까지는 열다섯 번, 그보다 훨씬 먼 흔들바위(3.7킬로미터)까지도 하루 대 여섯 번을 왕복하며 짐을 져 나른 걸요.


우연히 마주친 어느 암자 스님에게 며칠 후 짐 나르는 일을 도와달라는 예약까지 받아놓고도 임 씨의 얼굴엔 여간해 수심이 가시질 않는다. 그게 다 일이 없는 걱정이다. 한때 삼사십 명을 헤아리던 지게꾼들이 가뭇없이 사라진 지금, 설악산엔 요즘 마지막 남은 지게꾼 하나 건사할 정도의 일거리도 찾기 힘들다. 손 때 묻은 임씨의 지게도 하릴 없이 개점 휴업하는 날이 더 많아졌다. 몇 년 전 설악산 주요 등산로에 자리 잡고 있던 매점, 휴게소, 산장이 모두 철거된 후 50여년 경력의 이 나이 지긋한 지게꾼을 고정적으로 불러주는 데는 매달 초하루, 초사흘 제(祭)를 지내는 울산바위 계조암(繼祖菴) 한 곳뿐이다.


“그래봐야 한 달 수입이 70만 원도 안 되지만 잊지 않고 찾아주는 곳이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하게 생각해야지요. 80킬로 넘는 짐을 지고 계조암까지 2킬로미터 남짓한 산길을 오르는 데 1시간 20분 정도가 걸려요. 짐삯은 예나 지금이나 40킬로 기준 2만원으로 정해져 있어 따로 흥정할 것도 없습니다. 그마저도 지게 일이 없으니 평소엔 건물 철거 현장에 막일을 나가기도 하는데 일거리가 많지 않아 집에서 노는 날이 부지기수에요.”


모처럼 외설악까지 함께 온 아내(58, 최순덕)가 앉을자리를 가늠하는 동안 설악산의 마지막 남은 지게꾼 임기종씨는 지게를 꺼내와 아이 어르듯 구석구석 손으로 어루만진다. 지게 일이 끊겨도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냐고 말하지만, 그 역시 이 일마저 그만두고 나면 별다른 수입이 없으니 재산목록 1호인 지게를 애지중지 여긴다.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는데 집안도 어렵고 부모님도 일찍 돌아가셔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안 해 본 일이 없어요. 남의 집 머슴살이부터 시작해 목공소, 자전거포, 철공소 점원, 목욕탕 때밀이…. 배운 게 없으니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그러다 몸만 성하면 할 수 있는 지게꾼 일을 소개받은 덕에 늦게나마 장가도 가고 상용이도 낳고 그랬죠. 상용이한테 장애만 없었어도 더 좋았겠지만 그것도 다 타고난 팔자인데 누굴 원망하겠어요.”


설악산은 한 해 약300만 명의 등산객이 찾는 유명 관광지라 지게꾼이 많던 곳이다. 단풍철이 되어 비선대, 비룡폭포, 권금성, 토왕폭포, 금강굴, 흔들바위, 대청봉 등 설악산 구석구석을 실핏줄처럼 타고 오르는 등산객들로 온 산이 붉게 물들면 지게꾼들도 이른 새벽부터 산을 오르내려야 할 정도로 일이 많았다. 휴게소에서 등산객들에게 파는 생수, 막걸리, 얼음, 간식거리를 비롯해 120킬로그램이 넘는 업소용 냉장고나 40킬로그램들이 가스통, 수행자들이 먹을 쌀가마니까지 인력으로 져 날라야 했던 그때를 임 씨 역시 다시 오지 않을 호시절로 기억할 뿐이다. 숱하게 넘어지고 깨져가며 배운 지게질이었다.

 

 

“등에 짐을 지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리는 게 쉽지는 않아도 일이 많을 때가 행복했지요. 길도 험한 데다 짐이 자꾸 기우뚱하니까 지게가 금방 부러져 일 년에 두세 개를 새로 사야 할 정도였지만 열심히 일하면 한 달 200만원 벌이는 됐으니 그 돈으로 장애인 보호시설에 맡겨 놓은 우리 아들도 보러 가고, 장애인 치료시설들 찾아다니며 생필품이며 먹을 것도 사다 줄 수 있었고요.


임기종 씨는 현재 보증금 180만원, 월 임대료 8만 원짜리 허름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정신지체에 언어장애, 거동까지 불편한 아내와 단 둘이 산다. 160센티미터의 키에 몸무게 58킬로그램에 불과한 단구의 지게꾼에겐 정신연령이 예닐곱 살 정도인 아내와 그보다 더 심각한 중증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들 상용 씨가 세상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들은 오래 전에 장애인시설로 거처를 옮겼다. 올해 서른여섯 살인 아들은 성인이 된 지금도 겨우 혼자 대소 변을 가릴 수 있고 혼자선 제대로 몸도 가누기 어려워 하루 종일 누군가 옆에서 보살피지 않으면 안 되는 중증 장애인이다.


“집에서 데리고 살 때는 제가 나간 사이에 두 모자가 집에 불이라도 내지 않 을까 전전긍긍하던 집주인이 이사한 지 며칠 만에 셋방에서 쫓아낸 적도 많아 요. 그래도 달리 변명할 말이 있어야 버텨보지요. 살 데가 없어 돼지 키우던 축 사 같은 곳에서 지내보기도 했는데 그때가 마음은 제일 편했어요.


다 자란 10대 아들을 열악한 환경에서 더 이상 혼자 돌볼 수 없게 된 그는 결국 강릉에 있는 장애인보호시설에 아들을 맡기고 지금껏 하루도 마음 편한 날 없이 살았다. 아니 어쩌면 아들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걸 깨우치게 됐으니 전화위복이었을지도 모른다. 25년 넘게 숙제처럼 꼬박꼬박 거르지 않고 있는 그만의 ‘특별한 자선활동’이 아들을 떠나보내면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상용이를 그곳에 데려다 주고 나오는데 나만 편하게 살려고 그랬다는 죄책감이 들어 그냥은 못 오겠더라고요. 미안한 마음에 음료수와 과자를 잔뜩 사서 트럭에 싣고 시설로 되돌아갔더니 같이 있는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어요. 그때 처음 알게 된 것 같아요. 내 것을 나누면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진다는 걸 말입니다.”


아들 앞에서 지게꾼 아버지는 늘 죄인이었다. 자식을 돌보지 못하는 죄를 갚는다는 마음으로 수입의 90퍼센트를 자기보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결코 저버릴 수가 없었다. 아들 덕분에 인연을 맺은 강릉 ‘늘사랑의 집’을 시작으로 현재 상용 씨가 머물고 있는 양양 ‘정다운 마을’, 강릉 ‘오성학교’, 속초 ‘청해학교’ 등이 그가 매년 네다섯 번씩 과자와 음료수를 잔뜩 사서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장애인재활치료 시설들이다. 지역의 독거노인들에게 한 달에 한 번 쌀과 라면을 가져다드리는 일도 거르지 않고 해왔다. 그렇게 지금껏 자선활동에 쓴 비용이 쌓이고 쌓여 1억여 원을 넘었지만 아들을 향한 속죄의 마음은 가슴속에 묵은 빚으로 쌓여만 간다.


“상용이 때문에 시작했지만 워낙 가진 게 없는 형편이라 남들만큼 자랑할 일도 못 됩니다. 오히려 그것 때문에 욕만 많이 먹는 걸요. 제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왜 남한테 돈을 쓰느냐며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거의 전부에요. 하도 삐딱하게 보는 사람이 많아 그만해 봤더니 내가 먼저 미치겠더라고요. 수중에 돈이 생기면 마음이 불안해서 잠이 안와요. 안 갖고 있어야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한평생 어깨를 짓누르던 죄책감을 이겨내려고 얼마나 이를 악물고 살아왔던지 이제 그에겐 치아 한 개가 남았을 뿐이다. 지인들은 우선 몇달 간 지게 일로 조금씩 모은 전 재산 400만 원으로 치과 치료부터 받으라고 성화지만 임 씨는 그 중 350만 원을 또 동네 노인정 어르신들의 효도관광을 위해 내놓았다. 화창한 10월의 어느 날, 제천 청풍호는 ‘죽기 전에 꼭 모노레일 한번 타보고 싶어 하시던’ 속초 조양동 노인들의 웃음소리로 행복해질 것이다.


“있는 사람은 손에 움켜쥐고 내놓을 줄을 모르고, 없는 사람은 하고 싶어도 물질이 안 따라줘서 못하는 게 봉사인 것 같아요. 하루 세 끼 굶지 않고 살면 되지, 필요 이상 쌓아둬서 뭐에 쓰겠어요? 남들은 이해 못한다지만 나는 힘이 닿는 한 죽을 때까지 남을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아들에게 죄 갚을 돈을 벌어야 하니 지게꾼 일을 계속할 수 있으면 바랄 게 없겠어요.


오랜 세월 말없이 그를 지켜본 설악산은 뭐라고 위로해주었을까. 가슴 한편에 옹이처럼 박힌 저 못난 아버지의 눈물겨운 사랑을….


글 이종원 편집장 | 사진 최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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