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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에 만난 사람
방탄소년단이 데미안을 만났을 때 2019년 1월호
 
방탄소년단이 데미안을 만났을 때

 

“나를 부드럽게 죽여줘, 너의 손길로 눈 감겨줘

어차피 거부할 수조차 없어, 더는 도망갈 수조차 없어

니가 너무 달콤해, 너무 달콤해, 너무 달콤해서”


몇 년 전 출판사에 재직하던 시절의 일이다. 어느 회사나 매출의 압박은 있는 법. 게다가 문자보단 영상에 익숙한 사람들이 늘면서 책을 알리고 파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시대다. 나도 출판사의 책들을 바깥에 알리는 일에 골몰하면서 하루하루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그때 인터넷 뉴스에서 한 K-POP 아이돌 그룹의 앨범 발표 소식이 눈에 띄었다. 2013년 데뷔한 ‘방탄소년단’이란 그룹이 자신들의 정규 앨범 《WINGS》(2016년 발매)와 타이틀곡 <피 땀 눈물>의 콘셉트를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따 왔다는 기사들이 그것이었다. 이들의 인터뷰엔, 일곱 명의 멤버 모두 이 소설을 몇 번씩이나 읽으면서 자기네 나름의 진정성을 표현하고자 노력했다는 이야기도 담겨 있었다.


‘아이돌 그룹이 고전문학을? 그것도 직접 작사와 작곡에 참여하면서 자신들의 내면을 진솔하게 담아내려 애를 썼다고?’ 이것만으로도 내겐 무척이나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내가 다니던 직장의 세계문학 시리즈에도 고전 중의 고전인 헤세의 《데미안》이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나는 더욱 주의 깊게 이들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워낙 유명한 그룹이라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들에 대한 내 첫 이미지는 여느 기성세대와 다르지 않았다. 분명 음악성보다는 외모나 춤을 내세우는 많은 아이돌과 다르지 않을 거라는 것. 가끔 TV나 인터넷에서 그들의 곡이 들려올 때면 무슨 가사인지도 잘 모르겠고 요란하게만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그동안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은 채 그들의 음악성이나 노래를 영 시원치 않게 여기며 귀를 닫고 살아왔다.


이들에게 주목했던 계기는 《데미안》의 판매 증진을 위한 다분히 실용적인 접근이었다. 나는 세대 차이에서 오는 생경함과 불편함을 꾹 누르고 《WINGS》에 삽입된 노래들과 그 이전에 발표한 노래들을 반복해서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의 앨범을 찬찬히 들으면 들을수록, 그들의 초기 활동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그들의 진정성과 음악적인 열정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분명 그들에겐 무언가 ‘다른 것’이 있었다. 한두 마디 말로 설명할 순 없겠지만, 마치 비틀즈와 엘비스 프레슬리가 ‘팝 아이돌’이라고 비난을 받던 초기 시절, 그들 안에 꿈틀거리던 시대 감성이나 날것 그대로의 에너지가 방탄소년단에게도 동일하게 느껴졌다. 그 뒤 나는 ‘아이돌’이라는 단어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과 고정관념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왜 ‘아미(Army)’라 불리는 전 세계의 열성 팬들이 그들에게 푹 빠진 채 환호하고 있는지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뒤늦은 ‘방탄 덕질’을 시작하며, 나는 방탄소년단의 음악 세계를 《데미안》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고전문학을 연결지어 시리즈로 연재했다. 반응은 굉장했다. 수많은 ‘아미’와 학부모, 교사, 또 도서관 사서 분들이 이 시리즈에 뜨거운 반응을 보여주었다. 이런 글을 써주어서 고맙다고, 또 왜 자신의 아이들이 이들에게 그토록 열광하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겠다고….


이것이 《아이돌을 인문하다》라는 600여 페이지의 책 한 권을 쓰게 된 결정적인 동기다. 방탄소년단의 <피 땀 눈물>은 나도 모르게 아이돌에 대해 품고 있던 편견이 때로는 얼마나 게으르고 안이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다. 케이팝은 시대를 표현하는 창이다. 자세하고 꼼꼼히 들여다보면, 모든 것엔

그 나름의 특별함과 보석 같은 면모가 숨겨져 있다.


올해 빌보드를 비롯한 세계 음악 시장을 휩쓸고 우리 사회를 깜짝 놀라게 했던 방탄소년단의 행보를 보면, 무슨 말을 덧붙일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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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후 기자와 서점 MD, 출판사 에디터 등을 거쳤고, 지금은 1인 출판사인 도서출판 사이드웨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7년 여러 학교와 기관들에서 ‘인문학으로 읽는 K-POP’ 특강을 진행했고,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아이돌을 인문하다》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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