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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밀가루 줄이기
속 편하게 사는 비결, 밀가루 단식 2021년 10월호
 
속 편하게 사는 비결, 밀가루 단식

 

친할머니가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내게 대대로 물려준 유산 중 달갑지 않은 것이 딱 하나 있다. 호밀, 통밀, 보리 등 주로 곡물에 포함된 식물성 단백질을 몸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글루텐 불내증’이다. 글루텐만 섭취하면 할머니는 소화제로도 해결되지 않는 답답함을 호소하시고 아버지는 몸 여기저기가 붉어지면서 눈앞이 깜깜해져 그 자리에 몸져 누우셨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배가 심하게 부풀어 오르면서 앉아있기조차 불편할 정도로 속이 아프다. 가장 고통스러운 증상은 다한증인데 손에 쥔 볼펜의 로고가 지워지거나 들고 있던 종이가 젖을 정도로 증상이 심하다. 중병은 아니지만 일상생활에 적잖은 지장을 주는 질병이기에 나는 밀, 특히 정제된 흰색 밀가루를 마치 독처럼 여기며 지내왔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간편하게 먹기 좋은 토스트 하나가 내게는 평생 한 번이라도 먹어봤으면 하고 소원하던 음식이었다.


그러다 20대 초쯤인가, 난생 처음으로 다이어트란 고행의 길로 들어선 무렵이었다. 배고픔을 달래려고 ‘먹방’을 즐겨보다가 새로운 증상을 겪게 되었다. 빵을 먹고 싶다는 욕구였다. 좋아하지도 않던 생크림 케이크부터 만인의 간식 단팥빵, 유행하는 해외 디저트들까지 먹방에 등장하는 화려한 빵들이 어찌나 먹음직스러워 보이던지…. 불행하게도 빵에 반한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다이어트를 하겠다며 무리하게 절식을 시도하다가 폭식증이 생긴 시점이었다.

 

 

 

 

글루텐 불내증에 폭식증까지 앓고 있었지만 나는 그만 빵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밀가루를 먹기 시작했다. 밀가루를 먹고 나면 무기력하게 잠이 몰려왔고 일어나면 뱃속을 찌르는 듯한 고통이 종일 지속됐다. 그럼에도 폭식을 멈추지 못했다. 대학교 과 수업을 듣는 것마저 어려워졌고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이 식욕처럼 주체할 수 없이 일어났다. 불행 중 다행은 그렇게 힘들어하다가 겨우 탈출구를 찾았다는 것이다. 그 탈출구는 글루텐프리, 쉽게 말해 밀가루를 사용하지 않는 베이킹이었다.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으로 미니오븐을 샀다. 인터넷으로 글루텐프리 베이킹 레시피를 찾아 하나 둘 만들어봤다. 당연히 일반 빵보다는 맛도, 식감도 부족했지만 마음껏 빵을 먹어도 아프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새 인생을 얻은 기분이었다.

기존에 알려진 레시피가 많지 않아 나름대로 응용해보고 블로그에 기록했다. 그러자 글루텐 불내증이 아니더라도 아토피, 당뇨, 다이어트 등 여러 이유로 나처럼 밀가루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의 댓글이 셀 수 없이 많이 달렸다.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 무료 빵 나눔 이벤트도 열었는데 그때 처음 베이킹의 보람을 느꼈다.


글루텐프리 베이킹을 즐기며 다행히 밀가루 빵에 대한 욕구는 조금씩 사라졌다. 밀가루가 없어도 충분히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섭취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우며 밀가루에 대한 집착이 없어졌다. 미세먼지가 잔뜩 낀 것처럼 뿌옇던 머릿속이 맑아지고 두통이 사라진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이제는 내가 먼저 사람들에게 악수를 청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줄 수 있어 행복했다.


밀가루 단식으로 인한 긍정적인 변화는 일상 속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내게 맞는 음식의 종류를 찾고 나자 내 몸에 보다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생겼다. 원래 위와 장이 약해 조금만 과식해도 속이 아프고 급체를 자주 하던 나는 음식만큼 운동이 중요하단 걸 깨닫고 헬스를 등록했다. 지금은 일주일에 하루도 빼놓지 않고 거의 매일 트레이닝을 하며 스트레스를 헬스장에서 푸는 사람이 되었다.


요즘에는 되도록 건강한 루틴을 지키며 일상을 보낸다. 아침에 일어나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마시고 유산균을 섭취한 다음 아침 식사를 한다. 출근해서 직접 싸가지고 간 점심도시락을 먹고 열심히 일을 한 뒤 집에 가기 전 바로 헬스장에 들러 운동을 하고 귀가한다. 집에 돌아와서는 반려묘 ‘토르’를 쓰다듬어주고 난 후 저녁식사를 하고, 해야 할 일을 조금 하다가 소파에 앉아 간단한 후식을 먹으며 넷플릭스를 보다 잠자리에 눕는다. 이 루틴 속에서 난 어느 때보다 커다란 안정감을 느낀다.

 


내가 매일 나가는 직장은 4년 전, 식이에 대한 차별이 없는 곳을 꿈꾸며 문을 연 글루텐프리 전문 베이커리 카페다. ‘써니브레드’라 이름 붙인 내 가게는 밀가루를 먹지 못하는 사람도, 밀가루 없으면 못사는 빵순이들도 누구나 달콤한 맛에 푹 빠질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나는 나쁜 요소를 흡수하지 않고 남겨둔 빈자리에 얼마나 큰 기쁨이 채워지는지 실감한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쉬워졌어요.” “짜증이 줄고 매사가 즐거워졌어요.” “피부가 깨끗해진 거 있죠!” 손님들의 밀가루 단식 후기를 접할 때마다 내 일처럼 기쁘다.


속을 비운다는 말은 속편하게 산다는 말과 똑같다고 생각한다. 내 속을 불편하게 만드는 음식과 상황이 무엇인지 찾아 하나씩 줄여나가는 일은 편안한 하루를 위한 지름길이다.

 

 

송성례

좀도둑이 들어와 돈은 안 훔치고 빵만 먹고 간 가게로 유명한 ‘써니브레드’의 주인입니다. ‘써니 글루텐프리 식품회사’로 성장해 더 많은 이들에게 건강한 음식을 제공할 수 있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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