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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종이 잡지의 시간 2019년 9월호
 
다시, 종이 잡지의 시간

 

모두들 잡지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한다. SNS, 유튜브, 넷플릭스를 보기에도 자란 시간에 누가 잡지를 읽겠냐고. 하지만 종이 잡지를 읽는 시간엔 풍요로우면서도 호젓하며 생의 감각이 사방으로 확장된다. 그 시간에는 분명 인터넷에서는 만져지지 않는 또 다른 결이 있다.


종이 잡지에 담긴 글과 사진은 한 주, 한 달, 길게는 한 계절, 한 해에 걸친 생명력을 지닌다. 잡지 안 콘텐츠에는 관점을 만들어가는 에디터, 디자이너, 포토그래퍼의 시각과 해석이 오롯이 담긴다. 그 정제된 콘텐츠들은 또다시 누군가의 심상을 자극하며 영감의 대상, 새로운 화두의 실마리가 되는 것이다.


대만의 첫 회원제 잡지 라이브러리 ‘보븐(Boven 雜誌圖書館)’은 ‘종이 잡지 읽는 시간’을 공간 위에 펼쳐놓은 곳이다. ‘공유야말로 멋진 가치관’이라는 슬로건 아래 유럽과 미국 및 아시아 등의 약 300여 종, 2만 여 권의 잡지를 모았다.


일간 회원, 연간 회원 등 회원제 방식을 도입했는데 회원이 아니어도 일일 NT$ 300(한화 약 11,300원)이면 자유롭게 잡지 열람이 가능하다. 슬리퍼로 갈아 신은뒤 읽고 싶은 잡지를 골라 들고는 푹신한 소파 위에 몸을 밀어 넣으면 준비 끝.


주인장에게 관심사를 이야기하면 취향에 딱 맞는 잡지 목록을 큐레이션 해주는 것도 포인트다. 동시 입장 인원수를 20명 이하로 제한하거나, 가구 디자이너들과 컬래버레이션한 독서 의자 등 독서를 위한 배려 역시 돋보인다.


보븐은 단순한 잡지 라이브러리가 아닌, 종이 잡지와 그 안에 담긴 콘텐츠를 믿고 지지하는 일종의 태도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태도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며 다양한 형태로 전이된다. 서울 마포구 합정역 인근에 자리 잡은 ‘종이잡지클럽’은 보븐과 유사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국내 최초 회원제 잡지 클럽이다. 이곳을 방문하는 고객들의 평균 체류 시간은 4~5시간. 온전히 잡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와이파이까지 제한한 이곳에서 사람들은 컴퓨터 앞에서는 얻지 못하는 사유와 통찰을 경험한다. 잡지의 시대가 과연 끝난 걸까? 2019년 8월, 아늑한 소파에 몸을 기대고 다시 잡지를 편다.


김선미


한양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ttl 매거진》 에디터, 현대기아자동차 재중국 매거진 편집장, 한겨레신문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활동했습니다. 《친절한 뉴욕》, 《친절한 북유럽》을 썼으며 최근작으로 《베이징 도큐멘트》가 있습니다. 현재 기획및 디자인 회사 ‘포니테일 크리에이티브’를 이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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