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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에게
: 노현철 : 2011-08-25 :  

푸른 제복을 입고 행복하게 살아 보자고 만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20년이란 세월이 지났구려.

그 때는 인쇄 분야의 1인자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눈에 뵈는 것 없이 살아 왔는데 언제 부터인가 내 인생은 브레이크 고장 난 자동차 마냥 제어하기 힘든 내리막길로 달리고 있었소.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가고 내 능력은 바닥을 드러내 갈 때 너무도 불안하고 초조하게 하루하루 살얼음판 위를 걸으며 살아왔소.

그런 내 모습이 싫었고 그런 나를 잊기 위해 술을 입에 댄 것이 가정의 부도 상태 까지 이르렀을 때는 그대로 죽는 게 낫겠다 싶었소. 술 취한 그대로 모든 것을 잊고 죽으면 편할 것 같았소. 그것이 현실 도피의 수단이요, 책임을 피하고자 하는 가장 유치한 방법 이었지만 내게는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았소. 간이라도 빼 줄듯 알랑 거리던 사람들도, 부모도, 형제도 모두 등 돌리고 달랑 혼자만 남았음을 느꼈을 때 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만 같았소.

대한민국 남자 중 이혼 대상 1위라고 말 했듯이 내가 지금까지 이 가정에 소속 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요. 애초에 만나지 말았으면 당신에게 좋았을 것을...

그런 수많은 고난 속에서도 두 아이 반듯하게 키워줘서 정말 고맙소. 지면을 빌어 감사를 표하오. 아비로써, 가장으로써의 자격을 잃은 지 오래지만 나이 마흔셋이 되어서야 돌이키려 발버둥 치는 자신이 너무도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오. 무엇 하나 이루어 놓은 것이 없기에 아이들 보기도 부끄럽고 민망하오. 당신의 오래 참음의 열매가 어떤 것으로 맺힐지 아직은 알 수 없으나 내가 바로서면, 아니 하나님 마음에 합하면 금방 일어설 것이라는 믿음이 내게는 있지만 그것도 사치인가 보오. 성경 필사한다며 집에만 들어앉아 밥값도 못 하면서 밥 차려 먹는 것도 눈치가 보일만큼 마음은 위축 되었고 가족은 물론 모든 사람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느껴 만나고 싶은 사람들마저 없어 졌소.

혼자 새벽이고 저녁이고 교회에 가서 앉으면 말문이 막히고 앞이 캄캄하여 아무 생각도 안 날 때가 많았소. 남은 인생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겠다고 약속 했기에 교회 일은 열심을 내고 있으나 집에만 들어오면 싸울 거리가 기다리고 있으니 집에 있는 것도 내겐 곤욕이요. 작은말 한마디로 시작해서 인신공격에, 양쪽 집안사람들까지 씹어야 마무리 되는 것도 참기 힘든 부분이요. 그동안 막 살아온 잘못이 있기에 어떤 말을 들어도 참으려 하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구려.

아직도 내 안의 내가 죽지 않았다는 증거요. 눈칫밥 이란 말은 남의 집에 갔을 때나 사용 되는 줄 알았는데 가족 공동체 안에서도 혼자임을 느낄 때는 이 말이 집에서도 적용이 된다는 사실에 많이 슬펐소. 지금 당장 경제적 능력도 없는데다 밥이나 축내고 있으니 내 자신이 한심하기도하고 이런 현실이 천근만근 마음을 짓눌러 온다오. 아이들 에게도 미안하고. 아버지 학교를 통해 많은 아픔들을 접하지만 내가 변한다고 가족 구성원이나 주위 사람들이 변한다는 것에는 다소 회의적이오. 변하려고 노력 할수록 싸우게 만드는 요소는 더 많아 지는 것 같아 그렇소. 차라리 돌이키기 전이 편했던 것 같소. 가정 내에 떠도는 사탄을 대적하고 이겨 내기엔 내 영이 아직 덜 익었나 보오.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함을 당하여도 낙심치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는 것이(고후4:8~9) 은혜와 긍휼을 입은 사람이라 했는데 나는 싸이고, 낙심하고, 버린바 된 것 같고, 망한 것 같으니 하루하루가 참으로 힘겹게 지나가는구려. 스스로는 반드시 일어서서 복을 받으리라 다짐하고 확신 하지만 주위 공기는 싸늘하기만 하니 왜 이런 생각이 안 들겠소. 명퇴 당하고 밖으로 떠도는 사람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되는 날들의 연속이요. 내가 살아온 방식에 대한 댓가라면 달게 받으리다. 기도하며 도움 준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아버지 학교에서 배운대로 실천해야 겠지만 지금 상태로는 마음처럼 잘되지 않는구려. 지난 삶들을 정리하고 마음을 열어 보려 애를 쓰고있으나 살아 숨 쉬는 자체가 싫을 만큼 현실에 적용이 어렵다오. 집에서 서로 쳐다보는 것 자체가 곤욕이고 무슨 말을 들어도 가장 구실도 못하는 게 무슨 할 말이 있겠냐는 소리로 들리니 내가 잘못된 것이요? 답답하여 터질 것 같은 가슴으로 지금의 내 마음을 글로 옮겨 보았소.

모든 것이 부족한 남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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