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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르블랑


모리스 르블랑 (Maurice LeBlanc)은 1864년 프랑스 서북부 루앙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선장이었다. 1868년, 그의 나이 4살 때 집에 화재가 발생,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다. 1870년, 보불전쟁이 발발하자, 선장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배에 태워 안전한 스코트랜드로 피신시킨다.

1871년. 그러니까 스코틀랜드로 피신한 지 1년이 흐른 뒤에 고향으로 돌아온 모리스는 꼬르네이유 고등학교에서 수학하며 우등생으로 학업에 열중한다. 후일, 모리스는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학교에서 주는 상이란 상은 모두 휩쓸었지만 정말 한심한 시절이었다.

주말이면 모리스는 쌍두마차를 타고 코(Caux) 지방의 들판을 달리곤 했다. 후일 그가 쓴 소설 <기암성의 비밀>의 배경이 되기도 한 지방이다.

때로 그는 부모와 함께 <결합>이라는 이름의 배를 타고 크롸제로 유람을 떠나기도 했다. 그의 나이 17세가 될 때까지 모리스 르블랑은 어머니가 태어날 때 돌보아 주었던 외과의사의 아들,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들려주는 신비스러운 얘기들을 듣기도 했다.

그처럼, 그가 어린 시절에 정기적으로 방문을 하고 얘기를 나누던 두 명의 노르망디 출신의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와 기 드 모파상은 이후 그의 창작열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된다. 하지만 학업을 마친 모리스 르블랑은 소면기를 생산하는 미로드 피샤르 공장에 취업하게 된다. 하지만 모리스는 그 소면기라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채로 일터를 떠나게 된다. 공장에서 그가 했던 일은 창고 화장실에 숨어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글을 썼지만, 정작 작가가 되겠다는 열망은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깨닫게 된다.

솔페리노 광장에서 있었던 플로베르의 동상 제막식에 참가했던 그는 거기서 에드몽 공꾸르, 에밀 졸라, 기 드 모파상, 미리보 등의 쟁쟁한 작가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 작가들 틈에 섞인 모리스는 그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한 뒤, 무턱대고 파리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작가들은 이 무명의 젊은이가 당대 최고의 작가 플로베르와 안면이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더구나 플로베르의 소설 <마담 보바리>의 모델이 되었던 인물도 알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모리스가 알고 지내던 약사의 아내가 바로 이 유명한 소설의 여주인공의 딸이었던 것이다)

당대 최고의 작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용기를 얻은 모리스는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에드몽 공쿠르는 쌩 까뜨린느 터널을 지날 때 쯤 이렇게 말한다.

<이보게, 친구들! 파리에 도착할 때까지 이렇게 수다나 떨고 있을 텐가? 난 피곤해 죽겠어. 그 동상 제막식인지, 뭔지 사람을 아주 녹초로 만드는 구먼……. 난 잠이나 좀 자야겠어. 누가 차창에 커튼 좀 쳐줄 수 없겠나?> 결국 공쿠르에게 커튼을 쳐주었던 것은 모리스였고, 그렇게 그의 계획도 막을 내렸다.

하지만, 루앙으로 돌아온 모리스는 아버지에게 소면기 공장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하고 파리로 가겠다고 말한다. 결국 그는 파리로 가서 법대에 등록을 하고, 그의 누나를 만난다. 그의 누나 죠르제뜨 르블랑은 배우로 활약하고 있었으며 당시 명사이며 작가였던 모리스 메테르링크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이자 친밀한 애인으로 세간에 염문을 뿌리고 있었다. 후일, 죠르제뜨 르블랑은 그녀의 회고록에서 모리스를 “1900년대에 1835년식 유행을 전파시킨 멋쟁이”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타고난 글재주를 가지고 있었던 모리스는 지극히 ‘파리 사람다운’ 기자가 되었다.

<질블라>나 <피가로>, <꼬메디아> 등의 잡지에 글을 썼고, <부부들>이란 제목의 단편소설집을 내기도 했다. 이 작품에 대해서 레옹 블로아는 ‘모파상을 쏙 빼닮았다’고 평했고, 또 쥴 르나르는 ‘플로베르를 쏙 빼닮았다’고 평했다. 하지만, 일반 대중으로부터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한 여자>, <죽음의 행적>, <마주친 입술>>등 그가 펴낸 소설들도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또한, <열정>이란 제목의 희곡을 써서 앙뜨완느 극단이 공연을 하기도 했으나 대중적인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유명한 편집자들 중의 하나였던 피에르 라피트는 <나는 모든 걸 알고 있다 :Je sais tout>라는 새로운 월간지를 발간하면서 모리스 르블랑에게, 영국의 셜록 홈즈나 라플스에 대적할 만한 탐정소설을 연재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아르센 뤼팽’이라는 인물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가 쓴 소설의 주인공의 이름이 처음부터 아르센 뤼팽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그의 소설의 주인공을 아르센 로펭(Arsene Lopin)이라고 불렀고, 공교롭게도 그 이름은 당시 파리 시의회의 한 의원이 이름과 동일했던 것이다. 시의원 로펭은 모리스에게 강력히 항의했고 그는 즉시 주인공의 이름을 뤼팽으로 바꾸었다.

그가 만들어 낸 뤼팽이라는 인물은 셜록 홈즈나 라플즈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잡지가 월간지였으므로 모리스는 매번 새로운 모험을 소개했지만, 아르센 뤼팽은 영국 탐정과는 달리, 담배꽁초나 발자국에서 범인을 추리해 내지 않는다. 그리고 그가 관련된 사건들은 음침한 범죄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지도 않는다.

아르센 루팽은 언제나 명쾌하고, 가볍고 낙천적인 인물이다. 도난사건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즉시 그 범인이 아르센 뤼팽임을 간파한다. 활기에 넘치고, 대담하고 엉뚱하며 경찰들을 우롱하고 부자들을 조롱하며, 약자들을 돕는 괴도 신사 루팽은 세기 초의 로빈훗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리고 그는 특히 프랑스적인 로빈훗이다. 그는 무정부주의적인 귀족이 아니라, 귀족과 같은 무정부주의자이다. 단 한번도 엄숙한 모습을 보이는 법이 없이 늘 장난기가 가득한 모험가이다. 그리고 그는 단 한 사람의 여자만을 사랑할 수 없는 남자이다. 수많은 삶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여자들을 사랑한 남자이다.

모리스 르블랑은 1941년 뻬르삐냥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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